한국인에게는 사회주의적 기질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자학적인 표현도 비슷한 상황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아시아에는 두 가지 미스터리가 있는데 하나는 태생 사회주의자들인 한국인이 자본주의를 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타고난 장사꾼인 중국인이 사회주의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농담도 있다.오죽했으면 월드컵 격려금조차 그라운드를 뛰고 골을 넣은 1진 선수나 벤치를 지킨 2진이나 동일하게 줘야 한다는 여론이 그렇듯 비등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지극히 반시장적 법률이 양산되기도 하고 결국에는 모두가 하향평준화되고 손해를 보게 되는 기이한 상황들도 항용 일어난다.최근 국회를 통과한 임대차보호법이나 대부업법 같은 것들도 바로 그런 경우다. 임대차보호법은 상가임대료가 폭등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만들어진 법률. “영세 상인을 악덕 임대인으로부터 보호하자”는 구호만 내세우면 어떤 일이라도 감행할 수 있다는 듯이 임대차보호법은 ‘5년 계약’을 의무화하고 연도별 임대료 상승률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법으로 보호할 임대료 수준을 정하느라 때 아닌 부산을 떨어야 했고….결국 정부는 전국 임대료 수준을 조사한 끝에 전체 임대계약의 80%까지 보호하기로 하고 이들 계약의 평균임대료인 1억6,000만원(서울 기준)을 법이 보장하는 기준으로 제시하기에 이르렀다.또 인상률 상한선은 12%로 제안했다. 이 숫자들이 어떤 근거로 나왔는지도 알 수 없다. 정부의 이 방침이 발표되자 벌떼처럼 들고 일어난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완벽주의자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완벽주의자들은 서울의 강남과 강북이 임대료가 다르니 강북은 그렇다 하더라도 강남은 2억5,000만원으로 보호기준을 올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항의하고 나섰다.완벽주의를 조금만 더 밀고나가 보면 사태가 어떻게 될지 명백해진다. 같은 임대료를 주고 있다고 해도 의류상과 목욕탕이 다르고, 더욱이 룸살롱이 다를 테니 이도 역시 감안하자고 달려들면 할말이 없다.위치에 따라 영업권이 다르고, 같은 업태라도 길거리 코너가 다르고 골목길이 다르고, 장사수완에 따라 수익구조가 달라진다. 이 모든 것을 따져 ‘법으로 보호하는 임대료 수준’을 정하기로 달려들면 임대차보호법이 어떤 누더기가 될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시장에 맡겨두면 그만인 것을 굳이 법으로 규제하려 들다 보니 임대차계약의 숫자, 다시 말해 가게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규칙들이 만들어지고, 규칙보다 많은 예외들이 또 필요해진다. 마치 교육부가 교사체벌에 간섭하려다 보니 매의 굵기는 지름이 몇 ㎝, 길이는 몇 ㎝, 교사와 학생 몇 사람 이상이 입회한 장소에서, 어떤 방법으로 때려야 하는지를 세세한 규정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과 같다.임대료를 규제하겠다는 발상은 지대론의 원조 데이비드 리카도가 무덤 속에서 배꼽을 쥐고 웃을 일이다.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명분론자들이 만들어내는 결론들은 언제나 사회주의적 색채를 띠게 마련이다. 도저히 시장과 자율에 맡겨 두지를 못하니 온갖 명분을 만들어 규제와 간섭의 그물망을 짜 맞추게 돼 있다.금리상한을 70%로 정한 대부업법도 마찬가지다. 일견 서민을 보호하는 것 같지만 수십 %의 금리로 돈을 빌려야 하는 사람에게는 금리가 문제가 아니라 돈을 빌릴 수 있느냐 자체가 더욱 중요하다.금리를 규제해 놓으면 진짜 급전이 필요한 사람은 돈을 구할 수 없게 된다. 임대차보호가 완벽할수록 임대공급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임대료는 올라갈 것이다. 어리석음이 만들어내는 함정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