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예외 없이 1, 2, 3위를 차지한 중국, 한국, 일본. 2위와 3위 자리가 가끔 뒤바뀔 뿐 아시안게임에서 상위 세 자리를 차지하는 국가의 면면은 언제나 그대로다.체력이 국력이라는 금언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세 나라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세 얼굴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스포츠를 잘하는 것말고도 세 나라는 여러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식문화에서도 공통점은 얼마든지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한다거나 면을 잘 먹는다거나 하는 점은 대표적인 공통점이다. 구베 로쿠로가 그림을 그리고 가와이 단이 글을 쓴 <라면 요리왕 designtimesp=22994>은 일본의 식문화를 대표할 만한 음식, 라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요리만화다.일본의 라면(라멘)은 맛이 다양하기로 유명하다. 된장을 국물에 풀어먹는 삿포로의 미소 라멘, 간장을 국물에 푸는 도쿄의 쇼유 라멘, 돼지뼈를 우려 국물을 만드는 하카타 지방의 돈코쓰 라멘은 특히 유명해서 일본의 3대 라면으로 꼽힌다.그밖에 맛 좋기로 이름난 라면으로는 소금으로 국물을 만들어 담백한 맛이 일품인 하코다테의 시오 라멘, 중국식으로 국물을 만든 요코하마의 추카 라멘, 기본적으로는 돼지뼈를 우려 국물을 만들지만 여기에 마늘을 듬뿍 집어넣는다는 점에서 하카타 라멘과 차별되는 구마모토의 닌니쿠 라멘 등이 손꼽힌다.<라면 요리왕 designtimesp=23001>의 주인공 후지모토 고헤이는 낮에는 상사에게 구박받는 무능한 샐러리맨이지만 밤에는 라면가게 창업을 꿈꾸며 포장마차에서 라면요리 실력을 연마하는 라면 마니아. 그의 이 같은 ‘이중생활’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며 같은 회사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직원 쇼코와 함께 맛있는 라면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후지모토 고헤이를 두고 그저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단순하게 단정할 수 없는 것은 전문가 뺨치는 그의 미각과 라면 만드는 실력 때문이다. 국물을 맛보고 어떤 재료가 얼마만큼 들어갔음을 눈치 채는 것은 기본. 결코 남들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 라면 요리집의 ‘요리의 비결’조차 그의 끈질긴 연구 앞에서는 베일을 벗고 만다. 후지모토에게 라면은 평생을 두고 도전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일본에서 처음 사귄 친구의 직업이 라면요리사다.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아버지가 그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지만 요즘은 옳고 그르고를 떠나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맹목적이다시피 전통을 좇는 그들의 사고방식이 무서운 것이다. 바로 그런 그들의 자세가 오늘날의 거품경제를 잉태한 장본인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어찌됐건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전문가를 대우하는 일본사회의 분위기만은 본받아도 괜찮을 성싶다.으슥한 밤, 배가 출출해 라면이 먹고 싶을 때 밥상에 라면과 함께 <라면 요리왕 designtimesp=23010>을 올려놓기를 권한다. 라면맛이 배가될 게 틀림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