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라는 것은 어찌 보면 아슬아슬한 정치제도다. 어리석은 자들이 일순간의 들뜬 열정과 기분으로 국정을 결정하는, 그러고 나서 서로가 서로를 어리석다고 비난하도록 만드는 제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상황을 ‘어리석은 자들의 떼거지 정치’(衆愚政治)라고 말했다. 새겨볼수록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시장경제가 충분한 시장정보를 갖고 있는 이기적 인간을 전제로 하듯 정치는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민주적 사고를 전제로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만일 충분한 시장정보를 갖고 있는 이기적 인간들로만 구성돼 있는 시장이 있다면 그런 시장에서 초과이윤을 획득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늘 약간의 속임수와 정보의 선취, 독점과 그에 따른 초과이윤이 존재하고서야 현실에서의 시장은 성립할 터이다. 평균적이고도 균일한 이윤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차익기회는 결코 생겨나지 않을 것이고, 그리되면 시장은 서서히 활기를 잃고 말 것이 분명하다.시장의 비극은 아니겠지만 경제학의 비극임은 틀림없다. 소비자들이 모두 세상물정 아는 중늙은이들로만 구성돼 있다면 신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으로서는 최악의 구도가 된다. 속지도 않고 신기해하지도 않는다면 기업들은 전부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현명한 소비자가 아니라 어리석은 대중, 다시 말해 그럴듯한 TV광고 몇 편이면 정신을 잃고 따라오는 소비자들이 있고서야 기업은 신제품을 팔 수 있다.정치는 어떨 것인가. 아마 더욱 그럴 것이다. 대중을 속임으로써 초과권력을 얻을 수 없다면 그 누가 저렇게 기를 쓰고 정치를 해보겠다고 달려들 것인가. 열광적인 추종자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도 모르고 추종자들도 모르는 주장을 그럴듯하게 신념화해서 주장하지 않고서는 결코 유능한 정치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해야 할 정도다.대통령후보들의 경제 분야 공약에 이르면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경제의 논리구조를 모르다 보니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헤아려 보지도 않고 그저 듣기 좋은 말만 골라 적당히 짜 맞추기 바쁘다.이회창 후보가 “영세민에 대해 부가세와 특소세 면제”를 주장하는 것이나 노무현 후보가 “잠재성장률을 ‘훨씬’ 뛰어넘는 7%의 경제성장률”을 장담하는 것이나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후보들에 대해서는 말할 가치도 없을 정도다. 부가세를 과연 ‘어떤 방법’으로 면제하겠다는 것인지, 잠재성장률을 ‘훨씬’ 뛰어넘는 성장의 결과가 서민경제에 어떤 부작용을 만들어낼지 생각은 해보기나 하는지 알 수 없다. 부가세가 무엇이며, 잠재성장률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놀라운 것은 아무도 세금 자체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가 하는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경제행위는 ‘세금을 걷는 것’이지만 아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않고 있다. 모두가 아예 ‘세금천국’을 만들어줄 모양이다. 모두 돈 쓰는 얘기만 한다. 누가 어떻게 세금을 낼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재미있는 것은 선거철만 되면 서민의 친구들이 그렇게도 많아진다는 점이다. “서민들이 잘사는 경제, 노동자들이 잘사는 경제를 만들겠다”는 공약은 언제쯤 없어질지 모르겠다. 가난한 자와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정당일수록 서민의 살림살이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실업자를 더욱 늘려왔다는 사실을 생각이나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다.후보들의 경제공약을 보자면 목표와 수단을 혼동하고 이상과 현실을 확실하게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대통령의 조건인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한 번 대중주의에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어진다. 남미가 빠졌던 페론주의식 함정이다. ‘경제문제의 복잡성’을 인식하고 있는 그런 후보는 아마도 당분간은 정치에 나서지 않을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