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금융, 모바일 금융 등 디지털 금융이 빠르게 자리잡으면서 대내외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문제는 종전의 통화이론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됨에 따라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세계은행과 각국 중앙은행들은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디지털 금융이라는 새로운 환경하에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회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각종 국제금융회의에서는 이 문제가 단골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금융의 디지털화로 일어나는 변화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전자화폐다. 우리나라는 K캐시(K-Cash)를 비롯해 하루가 다르게 다양한 형태의 전자화폐가 선보이고 있다.은행과 같은 중개기관의 역할이 크게 축소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대신에 대내외 금융시장은 주식, 채권을 비롯한 직접금융시장 위주로 급속히 재편 중이다. 은행과 같은 중개기관들도 조직과 인력을 감축하고 맞춤형 금융서비스가 중시됨에 따라 자산운용을 비롯해 모든 컨설팅 업무까지 영역을 확대하는 등 자구노력을 강화하고 있다.대부분 금융상품도 퓨전형 상품이 될 것으로 보여 금융기관간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 확실하다. 이런 시대에 있어서는 금융기관별로 상품개발과 마케팅 능력에 따라 생존이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각종 금융거래에 있어서 네트워크 역할이 커짐에 따라 비금융회사들의 금융업 진출이 늘어나는 것도 새로운 변화다.문제는 금융의 디지털화로 새롭게 나타나는 환경하에서 통화정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분명한 것은 네트워크 효과로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디지털 금융구조하에서는 통화정책의 목표로 종전처럼 인플레만 중시할 수 없다.더욱이 전자화폐와 같은 새로운 결제수단이 사용되고 대외비중이 높아짐에 따라 통화정책의 무력화까지는 연결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종전에 비해 효과가 반감되는 것은 사실이다. 금융의 디지털화가 시작된 이래 ‘금리정책 효과의 반감론 혹은 무용론’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정보 비대칭성 전제로 한 시장 선도 기능 약화중앙은행도 여타 경제주체와 금융정보를 공유함에 따라 과거처럼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smmetry)을 전제로 한 시장의 선도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 다시 말해 중앙은행과 시장 참여자와의 관계가 수직적이 아니라 동반자적(Partnership)이다. 이 과정에서 각국의 중앙은행 혹은 중앙은행 총재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다.요즘 들어 통화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각국 중앙은행 총재들의 심기가 불편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올 들어 그린스펀 의장은 고령문제로 계속해서 조기퇴임론에 시달려왔다. 최근 들어서는 ‘금리를 적기에 내리지 못해 증시와 경기가 더 침체되고 있다’는 정책실기론까지 겹쳐 주요 매체를 통해 비쳐진 그린스펀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정도의 차는 있으나 유럽중앙은행(ECB)의 뒤젠베르그 총재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본의 하야미 총재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세계 어느 중앙은행 총재보다 높은 연봉을 받고 있으나 그만큼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조소가 일 정도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보는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으나 이런 점에 있어서는 박승 한국은행 총재는 상대적으로 나아보인다는 평가다. 그렇지만 금리인상 시기를 못박는다든가 원화의 디노미네이션, 고액권 발행 등과 같은 민감한 현안에 대해 너무 강한 의지를 표명해 항상 구설수의 대상이 되고 있다.특히 우려되는 대목은 시장참여자들이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모든 금융거래에 있어 ‘새로움과 복잡성’(Novelty and Complexity)에 따른 위험이 증대되고 있는 점이다. 유사 금융행위도 급증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금융감독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지 못할 경우 허점이 자주 노출된다.대표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의 개편논의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을 들 수 있다. 디지털 금융이란 새로운 환경하에서는 종전처럼 아날로그시대에 국제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IMF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이유다. 90년대 이후 각종 국제금융 현안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이 IMF의 현실이다.대신에 디지털 금융환경에 맞는 새로운 세계금융기구(WFA)를 창설하자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다. 그래야 각종 국제금융 현안을 효율적으로 대체할 수 있고 감독체계를 원활하게 가져가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그렇다면 이런 디지털 금융환경하에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디지털 금융환경에 맞는 새로운 통화정책의 전달경로(Transmission Mecha-nism)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통상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케인스의 통화정책 전달경로(통화공급 → 금리인하 → 총수요 증가 → 증시ㆍ경기 회복)는 디지털 금융환경하에서는 맞지 않기 때문이다.특히 전쟁과 테러가 잇달아 발생됨에 따라 통화정책 효과의 관건인 금리에 대한 총수요의 탄력도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 요즘 현실이다. 앞으로 갈수록 전쟁과 테러와 같은 불확실한 요인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케인스 통화정책 전달경로의 유효성은 더욱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통화정책 기조 면에서는 과거처럼 인플레를 중시하기보다 자원배분의 효율성도 함께 감안해 추진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통화정책의 중간목표로 채권시장에서 형성되고 있는 장단기 금리차와 같은 지표를 더욱 중시해야 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도 이런 점을 중시해 금리정책을 결정하는 데 이 지표를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다.통화정책 수행도 정보의 비대칭성이 사라짐에 따라 종전보다 시장친화적으로 추진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를 위해 중앙은행 총재의 선제적인(Pre-Emptive) 정책기능 확보가 필수적이다. 통화 당국은 시장 현실을 철저히 모니터링하고 통계과학화를 통해 경제 전반에 대한 예측력을 높여야 한다.각종 네티즌 펀드와 금융상품의 법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국제금융기구나 인접국 중앙은행과의 연계노력을 강화하고 지역블록 추진과 공동기금 설립을 통해 서로의 이익을 공유하는 채널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이런 노력들이 어우러질 때 ‘디지털 금융’하에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점을 감안해 한국은행도 현행 통화정책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