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원래 보수적인 곳이다. 은행원들은 검정색 혹은 감색 양복을 입어야 하고, 건물은 대리석으로 장중하게 지어진다. 구두소리를 내면서 걷기가 미안할 정도로 복도는 언제나 깨끗하고 정숙하다. 오전 9시 은행장이 출근하면 전 임원이 엘리베이터 앞에 도열해 있다가 90도로 고개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시한다. 은행장이 행장실로 들어가면 역시 감색 싱글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비서가 소리 죽여 차를 나른다.은행들은 저마다 자신의 역사를 자랑하고 깊이를 내세우며 신뢰를 전면에 건다. 역대 은행장들의 빛바랜 흑백사진이나 초상화를 행장실 벽에 걸어놓고 대를 이어온 고객과의 유대를 과시한다. 마치 고객과 은행의 비밀을 무덤까지 가지고 갈 것처럼 주위는 온통 엄숙하다. 역사는 곧 신뢰이며 그만큼 풍상의 세월을 견뎠다는 증거다. 바로 그 때문에 은행들은 언제나 역사를 추구한다.조흥은행은 유서 깊은 은행이다. 창립 105주년을 맞았으니 우리나라 근대 경제사와 맥락을 같이했다고 할 만하다. 조흥은행의 전신인 한성은행이 문을 연 것은 19세기 말 국운이 명각에 달렸던 1897년이다. 1906년에는 주식회사로 개편됐다. 우리나라 제1호 주식회사다. 해방 후 1950년에 은행으로는 처음으로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그래서 조흥은행 주식의 종목번호는 지금도 0001번이다. 당시 조흥은행과 함께 10개 종목이 거래되고 있었지만 산업의 부침과 더불어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고 보면 기업은 고잉 콘선(Going Concern)이 아니라 한때의 포말일지도 모른다. 조흥은행은 청계천변 광통교 바로 옆자리에 본점 건물을 앉혔고,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해마다 정기국회가 열리면 은행장들이 직접 국회에 출석해야 했는데 언제나 조ㆍ상ㆍ제ㆍ한의 순서였다. 조흥은행장이 제일 앞자리에 앉고, 다음이 상업은행, 제일은행, 한일은행의 순서였다. 은행의 서열이며 동시에 행장들의 계급이기도 했다. 새삼 조ㆍ상ㆍ제ㆍ한을 들먹이다 보니 이중 조흥은행과 제일은행을 제외하곤 요 몇 년 사이에 이름마저 다들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실로 무상한 세월이다.지금 조흥은행이 팔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제1호 은행이라는 영광은 이제 오욕의 역사로 스스로를 밀어갈 뿐이다. 외환위기로 경영위기를 맞았고, 2조7,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으면서 정부가 전체 발행주식의 80%를 소유하게 됐다. 기왕에도 관치금융이긴 했지만 지금은 그야말로 정부의 처분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는 처지다.조흥은행은 스스로를 호랑이에 비기고 있지만 차라리 이리 떼에 둘러싸인 늙고 지친 곰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정부가 조흥은행의 경영권을 매각하기로 하면서 국제투자펀드들이 떼지어 DJ정부 최후의 먹잇감을 노리고 달려들고 있다. 서버러스라는 낮선 이름도 눈에 띠고, 워버그핀커스라는 이름의 하이에나도 늙은 곰을 에워싸고 있다.왜 지분 매각이 아니라 경영권 매각으로 방침을 급선회했는지에 대해 정부는 입을 다물고 있다. 정부는 “언제나 팔 수 있고, 팔아야 하고, 마침 사겠다는 곳이 나섰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속내는 알 수 없다. 공교롭게도 이 원매자의 이름 한쪽에 ‘신한금융지주’가 들어있다.그러나 신한지주가 명단의 주인은 아닌 모양이다. 누가 조흥은행을 인수하는 실체인지 알 수 없다. 제일은행을 뉴브리지에 매각한 이후 다시는 투자펀드에 매각하지 않겠다고 천명했기 때문에 다만 ‘신한’의 이름이 필요했던 것일까.그렇다면 이 문제는 나중에 적잖은 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 어떻든 신한은 불과 20년의 일천한 역사를 가질 뿐이다. 물론 우수한 조직이지만 조흥은행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을 가질 만도 하다. 지금 역사가 시험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