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CEO들의 평균 재임기간이 2년 5개월에 불과하다는 보고서가 주목을 끈다. LG경제연구원이 국내 100대 기업 최고경영자들의 재임기간을 조사한 결과다. 국가경영을 책임지는 장관들의 재임기간이 1년을 겨우 넘기고 있음을 생각하면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최고경영자들에 비하면 놀랄 만큼 임기가 짧다.물론 월급쟁이 전문경영인으로 회장 직함까지 얻게 되고, 때로 10년 이상 장수하는 CEO들도 없지 않다. 시세가 죽 끓듯 하는 증권계에서 20년씩 최고경영자를 역임하는 강타자들도 더러 있다. 그러나 역시 대세는 한 번의 임기를 채우기에도 급급하다.세계에서도 이렇게 재임기간이 짧은 나라는 흔치 않다. 부즈 앨런 해밀턴이라는 미국계 컨설팅회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세계 주요 2,500대 기업 CEO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7.3년으로 우리나라의 거의 세 배에 이른다. 미국은 보통 6년 5개월씩 자리를 지켰고, 일본 역시 우리의 두 배인 4년 7개월 정도 최고경영자 자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말 그대로 한국 CEO는 ‘파리 목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경쟁자는 시도 때도 없이 치고 들어오며 급등락하는 경기의 파도를 타고 부침하는 실적에 목을 매는 불쌍한 존재가 바로 최고경영자다. 그나마 순조롭게 물러나면 다행이다. 회사가 부도라도 나면 그때는 아예 철창행이고 쌓이는 고소고발 서류에 더해 법원으로부터 소환장을 받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IMF 사태 이후 고소고발을 당한 임원들의 숫자가 무려 1만여명에 이르고 있으니 임기가 짧은 것은 차라리 사치스러운 고민이라 할밖에…. 많지 않은 월급을 평생 모아 사두었던 아파트며 예금통장 따위는 모조리 압류되고 지금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은행통장조차 만들지 못하게 된 사람이 부지기수다.전문경영인 체제가 확고한, 그래서 경영자 독재라고도 불리는 일본이나 문화적 풍토가 아시아와는 전혀 다른 미국의 CEO를 맞대고 비교할 수는 물론 없다. 우리와 경영논리부터 다르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영자가 사원에서 과장, 부장을 거쳐 이사로 승진한 사람들이다. 기본적으로 사원들과 동질적이다.잭 웰치처럼 무자비하게 직원들을 자르지도 못한다. 노조의 눈치도 보고 공무원들의 비위도 맞추어야 살아남는다. 금융기관의 장들은 차라리 감옥 담장 위를 걷는 사람들이다. 여차하면 이쪽이 아닌 저쪽으로 떨어진다.임기만 짧은 것도 아니다. 보수 수준도 최하위다. 삼성그룹의 등기임원 연봉이 수십억원에 이른다지만 이는 차라리 예외 현상이다. 상장기업 임원의 보수가 잘나가는 IT기업의 대졸초임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 만민평등의 세계이기 때문에 임원과 사원의 급여차이가 우리만큼 적은 나라도 없다. 미국은 CEO들의 보수가 사원의 100배를 넘는다. 메릴린치의 악명 높은 CEO 코만스키는 그 차이가 1,500배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평균 2억원을 겨우 넘어선다. 대체로 8배를 넘지 않는다.그러나 CEO를 불쌍하게 보기에는 사회적 압력이 너무도 높다. 정치조차 후보군의 숫자가 넘쳐나는 나라다. CEO 역시 폭발 직전의 압력 속에서 사는데 차라리 익숙하다. 사원들에게 인사권을 주면 “가장 먼저 직속상관을 자르고 다음은 사장을 자르겠다”는 응답이 압도적인 나라다.경제와 사회 변동성 또한 너무 높아서 차라리 잦은 교체가 아니라면 신경영에 필요한 지식을 갖춘 후보군을 찾기도 힘들다. 어차피 모든 한국인의 공통된 운명을 CEO들도 나눠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그래도 오늘만은 우리의 CEO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 보자. 연말결산이 끝나면 곧 주총 시즌도 다가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