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국민은행 금융교육 전문연구원2002년 8월 말, 한 은행원은 자신이 오래 다듬어온 과제를 실행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CEO인 김정태 국민은행장에게 메일을 보냈다. A4용지로 8장에 이르는 장문이었다.“행장님, 선진국에서는 금융기관 등을 중심으로 청소년 금융교육 프로그램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가계 부문 부실여신이 증가하고 청소년 과소비 풍조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유년기 금융교육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우리 은행이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추진할 적기입니다. 긴 안목으로 보면 은행 수익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메일을 보낼 당시 HR팀 소속이었던 이 은행원, 박철 과장(35)의 현재 직함은 ‘금융교육 TF팀 소속 전문연구원’이다. 제안이 받아들여져 국민은행은 일명 ‘키드 뱅킹 프로그램’을 가동키로 한 것이다.박연구원이 어린이와 청소년 금융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야기는 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은행 경제연구소에 갓 입사했던 그는 ‘미국은행들의 아동 마케팅’에 관한 리포트를 쓴 적이 있었다. 이때 금융강국들이 어떻게 자국의 신세대에게 금융교육을 시키는가를 접했다.“씨티, 메릴린치 등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있는 세계적인 금융사들이 본국에서는 모두 경제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재정지원을 하더군요. 자국에서는 하는 걸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하지 않는 것도 알게 됐죠.” 무엇보다 ‘금융문맹’이라는 표현을 접했을 때 충격이었다. ‘문맹’이라니, 금융에 대한 상식은 읽고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문제라는 뜻임과 동시에 뒤집어 말하면 금융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 아닌가.이때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금융교육이 중요한 문제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는 예상을 했다. 이후 혼자서 끊임없이 외국의 사례를 수집해 왔다. 세계 각국에서 나온 책, 비디오, CD롬 등 금융교육에 관련된 교재가 눈에 띄기만 하면 사 모았다. 비용이 수월치 않다 보니 부인에게서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이제 박연구원은 “제안이 받아들여졌다는 것 자체가 보상”이라면서 TF팀에서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국민은행 TF팀은 새해 1월 중에 교재 <사회 초년생(고3)을 위한 금융상식 designtimesp=23387>를 펴낼 예정이다. 또한 올해 청소년 대상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가동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앞으로 정부나 학교, 관련단체의 이해와 지원 등에 따라 어느 정도 규모로 진행될 수 있을지 추세를 두고 봐야 할 것이라는 게 은행의 입장이다. 그는 “교육은 그 성과가 1~2년 안에 나타나는 게 아닌 만큼 긴 시각이 중요하다”면서 “금융교육은 부자 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훈련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