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공학대학 35동 202호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블랙진에 까만 티셔츠, 까만 재킷을 차려입고 뒷머리를 기른 ‘교수님’도 독특하지만 은은한 조명에 간이사다리, 여기저기 널려 있는 발명품들로 가득 찬 ‘연구실’도 예사롭지 않다.‘W이론 창시자’ ‘신창조이론 전도사’ ‘벤처기업가’ 등 다양한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이면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58)가 이번에는 ‘하이맘’이라는 모바일 태교 콘텐츠를 들고 또 한 번 ‘사고’를 쳤다.“1996년 9월이었죠. 대학원생들에게 ‘아직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제품을 인간공학적 분석을 통해 구상해 오라’고 몰아붙였죠. 그러자 학생들이 교수가 먼저 시범을 보여 달라고 역공을 취해왔고 결국 같이 해보자고 마음먹게 된 거죠. 하이맘은 이렇게 해서 탄생됐습니다.”처음 단순하게 시작된 아이디어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수많은 각계 전문가가 참여하는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한국과 미국의 산부인과 전문의들이 감수를 거쳤고, 여류 방송작가 7명이 콘텐츠제작에 뛰어들었다.또 전문애니메이션팀이 7만여컷의 만화를 그려 모바일 콘텐츠로 거듭났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프랑스의 한 마케팅전문회사가 한국과 일본의 임산부를 대상으로 제품에 대한 소비자 호응도를 조사한 결과 하이맘에 7점 만점에 5.7점을 줬다. 이 회사가 지금까지 조사한 제품 가운데 가장 점수가 높았던 제품은 일본의 ‘다마고치’로 5.2점이었다.하이맘의 또 다른 장점은 간편성이다. 이 서비스에 가입한 임산부는 매일 출산일자 카운트다운과 다양한 태교용 음성메시지를 휴대전화로 받게 된다. 4주마다 태아의 키와 몸무게에 대한 평균치도 통보받는다. 또 부부간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그림편지 보내기, 친지에게 아기소식 알리기, 병원 가는 날 알람설정 등의 다양한 서비스도 제공한다.“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태교 선진국입니다. 외국과 달리 나이를 셀 때 모체에서부터 세는 것만 봐도 우리가 얼마나 태교를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죠.”사실 이 제품은 과거 이교수가 선보인 칼과 풀이 필요 없는 종이공작모형 ‘페이퍼 매직’, 머리 땋는 기계 ‘브레이드 매직’에 이어 세 번째 세계 최초 발명품이다. 가만히 있어도 편안한 노후가 보장되는 그가 이렇게 신제품 개발에 열중하는 이유는 뭘까.5년 동안 70억 쏟아부어“한마디로 코가 꿰인 거죠. 98년 초 외환위기 당시 신문사에 기고한 글이 시작이었죠.”당시만 해도 그는 잘나가는 교수님이었다. 92년 발표한 ‘W이론’으로 사회 각계에 불려다니던 ‘스타’였고, 그의 독창적인 강의방식과 이론은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다 이교수는 히트상품 제조기라는 닉네임이 붙었고, 유명작가로도 이름값을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그러다 이교수는 98년 초 다시 한 번 전환점을 맞는다. 마침 불어닥친 외환위기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세침략’이라며 분개했던 반면, 그는 “IMF는 신이 준 선물”이라고 주장하며 또 다른 인생을 걷게 된다. ‘신창조론’을 내세우며 국내 기업들의 나태한 관행을 지적하고 나섰던 것.그가 주장한 신창조이론은 ‘모방은 결국 한계에 부닥칠 뿐이다’ ‘가격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세계시장에서 인정받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등으로 요약된다. 독창적이면서 정면으로 국내 재벌들을 꼬집었던 그의 글은 한마디로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이교수의 글이 실린 신문은 가판대에서 동이 나기 시작했고 하루에도 수십통이 넘는 격려전화가 쇄도했다. 여기서 끝났다면 그는 아마도 저명한 서울대 공학교수로 머물렀을지 모른다.하지만 초등학생부터 80대 할머니까지 전화를 걸어 “이론을 직접 보여 달라”고 요구하면서 이교수는 고민에 빠졌다. “자리에 누우면 그 말이 떠오르고 시간이 갈수록 점점 ‘비겁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결국 ‘직접 보여 주자’고 마음먹었죠.”이교수는 ‘하이브레이드’라는 벤처기업을 창업해 자신의 신창조론을 몸소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5년 동안 하이맘을 포함해 3개의 발명품을 만들어 그의 이론을 실천했다. 처음 시장에 선보인 제품은 종이공작모형 ‘페이퍼 매직’.이 제품은 컴퓨터그래픽을 이용해 특정 문화재를 종이에 축소시켜 이를 조립할 수 있도록 한 종이 관광상품이다. 이어 내놓은 제품은 세계 최초의 머리 땋는 기계 ‘브레이드매직’. 손으로 머리를 땋으려면 보통 10시간이 넘게 걸리지만 이 기계로는 3~4시간이면 땋을 수 있다. 브레이드매직의 개발과정에서 얻은 고유 기술을 이용해 머리를 꼬아주는 기계인 ‘트위스트매직’도 개발했다.해외 박람회에 선보이며 그의 제품이 많은 바이어들의 관심을 모았지만 가격흥정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그의 고집 때문에 돌아선 바이어가 부지기수였다. “어떤 바이어는 ‘뭐 이런 사람이 있느냐’는 표정까지 짓더군요.”이렇게 자신의 이론이 ‘실전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쏟아부은 돈은 무려 70여억원. 벤처캐피털이나 정부기관의 도움은 일절 없이 자비로 충당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뻔한 스토리죠.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겠다’ ‘가격도 내 손으로 결정하겠다’고 주장하는데 누가 돈을 빌려주겠어요.”세계시장을 겨냥하라는 그의 이론처럼 그의 눈은 이미 일본과 중국을 향하고 있다. “매년 임산부가 일본에만 70만명, 중국은 2,000만명이 생깁니다. 하이맘이 그들에게 파고든다면 수조원의 매출도 순식간입니다.”자신감 넘치는 이교수 앞에서 ‘언제’라는 질문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연이어 터져 나온 그의 답변 때문이다. “그때까지 사업을 계속해 나갈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면 가차 없이 그만둘 겁니다. 돈보다 이론을 입증하는 것이 저에게는 훨씬 중요하니까요.”이면우 교수의 어록“난 여기서도 왕따야.” - 그는 서울대에서도 스스로 ‘왕따’를 자청한다. 90년대 초 <서울공대백서 designtimesp=23536>라는 책에서 ‘서울대는 관악산 안에서 최고대학’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해 당시 안기부에 끌려갔다는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됐다.“자기 손에 장을 지지겠다더라고.” - 90년대 중반 국내 한 가전회사에 신제품을 개발해 임원회의 때 시장점유율이 6% 올라갈 것이라고 보고했다. 그때 책임자가 이교수에게 “만약 그렇게 된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회사는 결국 이교수가 개발한 세탁기로 시장점유율을 8% 이상 높였다.“콩가루 집안이지.” - 대학에 갓 들어간 큰아들이 갑자기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나섰다. 록뮤지션이 되겠다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한 것. 하지만 이교수는 만류하지 못했다. 평소 자신이 주장해 오던 신사고 교육법에 위배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