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가장 잘 달리는 동물은 치타다. 허리가 유연하고 팔다리의 뼈와 근육들이 달리는 데 적합하게 잘 발달돼 있다. 사냥은 역시 사자가 으뜸이다. 강한 턱은 먹잇감을 결코 놓치는 법이 없다. 하늘의 포식자로는 매만한 게 없다. 날카로운 각도의 회전과 강력한 속도는 허공의 사냥감을 낚아채는 데 최고다. 튼튼한 다리로는 코끼리를 따를 것이 없고, 으스러뜨리는 이빨로는 백상어가 최고일 것이다.자, 이제 이 모든 것을 모아 하나의 ‘초(超)동물’을 창조해 보자. 코끼리의 다리에 매의 날렵한 날개와 사자의 턱과 상어의 이빨을 조합해 최고의 포식자를 만들어낸다고 하자. 기왕 새로운 동물을 만들어내는 김에 동원하지 못할 것은 없다. 악어의 꼬리는 어떨 것이며, 호랑이의 쏘는 듯한 눈동자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그렇다면 결과는 어떠할까. 불행하게도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괴물이 창조될 뿐이다. 다리는 달리는 데 불편할 것이고 달릴 수 없다면 강한 이빨은 무엇에 쓸 것인가. 날개는 육중한 몸무게를 버티지 못할 것이고, 갑옷으로 무장한 악어의 꼬리는 끌고 다니기에도 불편할 것이다. 최고의 ‘부분’이 최악의 ‘전체’를 만들어내게 될 뿐이다.부분이 전체와 조화를 이루고 하나의 시스템 속에서 각 부분들이 서로를 통제하고 지원하는 질서체를 우리는 유기체라고 부른다. 유기체는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부분을 선택하고 그 부분들은 전체와 유기적 관련성을 갖는 가운데 자연에 대해 유기적으로 반응하게 된다.경제논단에 웬 진화론이며 괴물창조에 대한 설명이 길어졌는가 하고 질문할 분이 계실 것 같다. 다름 아니라 요즘 우리사회의 각 분야에서 요구되는 개혁과제들을 모두 모아놓으면 이 작동불능의 괴물 하나가 떡하니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 같아 바로 그 점이 걱정돼 하는 말이다.노동시장은 독일의 모델을 따르고, IT산업은 미국의 성공을 모델로 삼고, 대통령의 격은 권위주의를 추종하며, 기업개혁은 OECD의 공상이론가들로부터 이론을 빌려오고, 사회복지는 스웨덴을 베껴오고, 이에 하나 덧붙인다면 축구는 남미로부터 배우는 그런 형태로 모든 부분들을 종합한다면 이들 각 부분의 총합인 소위 ‘국민참여정부’는 작동이 가능할 것인가?그것이 ‘참여’이기 때문에 모든 자의 ‘부분’이 전체에 반영돼야 하고 그리되면 그 전체는 머지않아, 그리고 서서히 작동불능으로 빠지게 된다.이 질문에 답하지 않는다면 온갖 개혁과제들은 다만 하나의 몽상일 뿐이며 무모한 실험에 지나지 않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개혁과제들은 서로가 충돌하며 서로가 다른 부분의 작동을 방해하는 일대 혼란 상황으로 치닫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런 상황이다.노무현 당선자가 요구하는 수준까지 복지와 분배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갖추면서 경제성장률 7%를 달성하려는 것은 마치 코끼리의 다리로 치타처럼 달리려는 것과 다를 게 없다.기업지배구조를 인수위가 추구했듯이 공익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고쳐놓은 상태에서 창의적 경영을 도모하는 것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정책은 유럽형이며, 청와대는 제왕적 구조인 것도 ‘짬뽕’이기는 마찬가지다. 비서실에 장관이 7명이라니….그것은 공룡의 덩치로 개미처럼 일하고 벌처럼 정밀한 작업을 하도록 요구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인수위원들은 저마다 한보따리씩 ‘자신들의 부문별 이상론’을 책상 위에 쏟아부어 놓았었지만 이들 전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면 과연 어떤 작품이 되어 나올 것인가. 지금 우리가 노무현 정부를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