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발 금융위기설 속 대손충당금 적립 완화 . 부대업무비율 관련 입장 팽팽

최근 금융가에는 “금융위기가 온다면 카드사가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이른바 ‘카드발 금융위기설’이 떠돌았다. 274만명의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신용카드 연체율이 높아지는 가운데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으로 채권시장에서의 카드사 자금조달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카드사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카드채(카드사 발행 회사채)의 유통이 막히면 연쇄자금난으로 이어져 자칫 ‘금융대란’이 터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증폭된 것이다.정부는 사안의 심각성을 감지하고 금융정책협의회(금정협)가 나서 부랴부랴 지난 3월17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신용카드사 종합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뒤이어 카드사들도 유동성 확보를 위한 증자계획을 잇달아 내놓았다.이런 가운데 카드업계 내부에서는 정부의 대책에 대한 평가와 카드사 위기 해법에 대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서 어수선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금정협이 내놓은 대책은 먼저 업계가 자구노력한 후 규제를 완화시켜 주는 형식이다. 카드사 대주주의 증자 유도와 카드수수료율 인상 규제완화 등이 골자다.그동안 카드사들의 목을 죄었던 부대업무비율 준수(현금대출과 신용판매 비중을 50대50으로 맞추는 것) 시한이 1년간 연기된다. 그리고 연체율 산정기준 중 ‘분모’에 해당하는 항목을 보유자산에서 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분이 포함된 관리자산으로 변경시켜 연체율 진정에 도움을 주려 한 것이다.또 연체회원으로부터 1개월 이상 연락이 끊길 경우 부모 등 직계가족에게 채무내용을 통보할 수 있도록 한 조치는 채권추심 규제를 완화한 것이며 카드사 부실채권 매각에 자산관리공사의 참여방안을 검토키로 한 것 역시 카드사들의 ‘급전’ 마련에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이러한 카드사 종합대책에 대해 LG카드, 삼성카드 등 대형사들은 공식적으로 “경영수지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며 반기는 모습이다. 특히 이번 대책 중 각종 수수료의 현실화 부분이 업계 수익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금서비스 수수료율을 1%포인트만 올려도 대형사는 연간 1,000억원 이상씩 수익이 늘어나는 등 직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다.하지만 한솥밥을 먹고 있는 은행계 카드 4사(국민, 비씨, 우리, 외환) 노동조합에서는 이와는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번 대책은 임시방편으로 카드사의 정상화를 이뤄낼 수 없다는 것이다.증자를 해도 지금 같은 연체율과 적자규모라면 몇 달 지나지 않아 또다시 카드사의 유동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외환카드 김남정 노조위원장은 “카드사들은 영업이익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대손충당금 설정으로 경영위기에 봉착했다”며 “은행과 같은 수준의 대손충담금 적립을 완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다.정부가 3∼6개월 연체채권의 충당금 적립비율을 15%에서 60%로, 6개월 이상은 25%에서 100%로 급격히 강화시킴으로써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부분의 카드사가 적자로 전환됐고 올해부터는 전 카드사가 대규모 적자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특히 대손상각을 실시한 채권의 1년 이내 회수율이 15% 이상, 5년 이내 회수율이 70%에 이른다는 점과 채권시장에서 평균 2년 이상 된 연체채권이 20∼25%대의 가격으로 매각된 사례를 감안하면 현재의 대손충당금 적립 기준이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은행계 카드사 노조측은 설명한다.위기상황, 다른 목소리로 극복할지 미지수이와 더불어 은행계 카드사 노조측은 부대업무비율에 있어 재벌 카드사와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달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현재 현금대출과 물품구매의 비율을 정하는 부대업무비율을 산정할 때 재벌계 카드사의 구매전용카드 실적을 물품구매에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계열사를 동원한 불공정행위와 구매전용카드 실적 부풀리기로 현금서비스를 늘린 재벌계 카드사의 현금매출만 늘어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낸다.이러한 은행계 카드사 노조의 주장에 대해 LG카드와 삼성카드는 사안에 따라 엇갈리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우선 이번 대손충당금 규제 부분에 대해서 삼성카드의 경우는 은행계 카드사 노조와 같은 입장이다.정부 대책이 전체적으로 도움이 되지만 아쉬운 부분이 몇 가지 있다는 것이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특히 “카드발 위기 발생의 가장 큰 이유는 연체율 상승인데, 이는 대손충당금 설정부담이 3~4배 늘어남에 따라 비용이 증가해 적자로 반전한 것이다”며 업계 의견으로 여신전문협회를 통해 정부에 계속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이 부분에서 LG카드사의 입장은 좀 다르다. 기본적인 원인분석에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의 입장에서 대손충담금 부분의 조정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고 또한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충당금은 회계상의 문제로 수수료 현실화가 오히려 수지개선에 큰 도움이 된다는 입장이다.구매전용카드와 관련해 LG카드와 삼성카드는 은행계 카드사 노조의 지적에 같은 목소리를 내지만 대응은 다르게 하고 있다. 일단 양사 모두 ‘현실과 맞지 않는 억지’라고 일축하고 있다.LG카드와 삼성카드는 “과거 어음을 사용하던 기업들의 관행이 구매전용카드 사용으로 바뀌었을 뿐 특혜는 아니므로 불공정거래에 해당되지도 않는다”며 “지주회사를 통해 재벌계 카드사와 마찬가지로 구매전용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은행계 카드사들이 최근 경영이 어려워지자 앞서가는 선수의 발목을 잡는 행동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이런 가운데 최근 삼성카드는 구매전용카드사업 자체를 접겠다고 발표했다. 신규영업만이 아니고 기존의 구매전용카드사업 자체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삼성카드의 구매전용카드사업 포기는 당장 연간 30조원에 달하는 매출을 포기한다는 의미 외에도 부대업무비율 제한에 따른 현금대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한다는 의미도 지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의아해한다.삼성카드 관계자는 “지금은 외형보다 내실이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내린 경영상 판단”이라고 말한다. 또한 “큰돈도 안되는데 마치 부정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처럼 보는 시각에 대한 대응차원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LG카드 관계자는 “구매전용카드 사업부분은 우리가 최초 도입해서 중점적으로 하고 있는 사업이다”면서 “접을 의사는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이 같은 카드사간의 신경전에 대해 업계 주변에서는 “카드발 금융대란이 거론되는 위기 상황에서 업계 공동으로 대응방안을 모색해도 쉽지 않은데…”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있다. 과연 이런 다른 목소리로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어떻게 털어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