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글로벌의 분식회계 사건 이후 일부 전문가들은 “분식회계로 물의를 빚은 임원은 개인 재산을 압류당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껴야 고질적인 분식회계를 뿌리 뽑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 임원의 책임이 강조되면서 책임을 물을 범위도 임원 개인과 관련된 모든 것으로 확대되고 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이 같은 점에 착안, 임원배상책임보험의 가입대상을 기업이 아닌 개인으로 설정한 것이 AIG손해보험의 BEP(BusinessGuard Executive Protection)다.지난 3월18일 판매되기 시작한 이 상품은 기업을 이끌어가는 임원과 임원 가족을 가입대상으로 한다. 일반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은 물론 사외이사까지 임원 업무와 관련한 손해배상책임을 보장받을 수 있다.이 상품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 이외에도 ‘패키지형’이라는 특징이 있다. 안기붕 특종보험부 이사는 “VIP상해보험과 일상생활배상책임보험도 함께 선택할 수 있어 업무상 문제뿐만 아니라 주택, 질병까지 그야말로 한 임원으로서 개인에게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상품”이라고 설명했다.D&O 시장 커질 것으로 전망지난 1991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임원배상책임보험(Directors&Officers Liability InsuranceㆍD&O)은 상장기업 임원이 직무상 잘못으로 회사나 제3자에게 손해를 끼쳤을 때 이를 배상해주는 보험이다.90년대 초반에는 관심을 모으지 못하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외국인투자가와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현재 국내 상장기업의 약 30%가 D&O에 가입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D&O의 성장속도가 비교적 완만한 이유 중 하나는 담보대상이 한정적이라는 것이다. 즉 대기업이 피보험자가 되기 때문에 중소기업 경영자는 자신의 실수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따라서 AIG손해보험측은 개인대상 임원배상책임보험인 BEP의 시장성에 확신을 갖고 있다. 특히 사외이사제도가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면서 이 상품이 D&O의 틈새상품으로써 차별화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임원진이 직접 가입대상이 되는 만큼 개발과정에 관한 에피소드도 이 회사의 임원들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개발에 관여한 박중무 상품개발팀 대리는 이 상품을 두고 “전직원이 함께 만든 상품”이라고 단언한다.상품 개발 인력들이 회의를 거친 결과만으로 내놓은 상품이 아닌 실제 이 회사 임원들의 아이디어를 십분 반영한 상품이라는 이야기다. 임원 스스로가 간부라는 직책이 어느 정도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상품안내서만 봐도 임원진의 참여도가 얼마나 높았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안내서 표지에는 상품의 성격을 알 수 있도록 임원회의 장면이 이미지사진으로 3장 깔려 있다. 이 사진의 주인공들은 다름 아닌 이 회사의 실제 임원들이다.허장길 부사장은 임원들이 직접 모델로 나선 이유에 대해 “개인을 위한 임원배상책임보험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들이 동참해야 이미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증권집단소송제의 도입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등 현재 이 상품이 뻗어나갈 수 있는 환경은 충분히 조성돼 있다는 게 회사측의 판단이다. 상품개발팀 관계자들은 ‘금융상품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시장의 환경을 파악해야 타사와 구별되는 독특한 상품을 적기에 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한편 D&O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허부사장은 “보험상품은 일종의 헤지수단일 뿐”이라며 “자산을 헤지하듯 위험을 분산시키는 것도 하나의 테크닉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