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회계학회 투명경영 대상 수상…2세들 “무리한 사업확장 꿈도 안꿔”

최근 한일시멘트 홍보팀과 IR팀은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언론사 기자들과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달음으로 묻는다. ‘회계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뭐냐’고. 이처럼 한일시멘트에 언론과 시장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SK글로벌의 분식회계 후폭풍이 재계를 강타한 가운데 한일시멘트의 ‘투명경영’이 더욱 돋보이기 때문이다.한일시멘트의 투명경영은 재계는 물론 시민단체도 인정하는 바다. 지난해 한국회계학회로부터 ‘투명회계 대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시민단체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으로부터 ‘경제정의기업상’을 세 차례에 걸쳐 수상했을 정도다. 또 성실한 조세로 동탑산업훈장(1986년)과 대통령 표창(1992년) 등 ‘조세의 날’ 단골 수상 기업이다.한일시멘트가 재계의 도덕성이 문제가 되는 요즘 ‘투명경영의 전도사’가 된 비결은 뭘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창업주인 허채경 선대회장과 그의 다섯 아들로 이어져 내려오는 허씨가의 독특한 경영스타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허채경 선대회장은 개성상인의 후예로 1961년 한일시멘트를 창업했다. 그는 1995년 타계할 때까지 ‘신뢰에 바탕을 둔 정도경영’과 ‘인간존중’이라는 경영철학을 끝까지 지킨 인물이라는 평을 얻었다.이는 1965년에 노조가 설립되고, 1969년 기업을 공개한 데서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그는 또 기업을 설립하자마자 공개채용 제도를 도입했고, 단양공장을 건설하면서 당시에는 드물게 공개입찰방식을 도입하는 등 일찌감치 정도경영을 부르짖은 것으로 유명하다.선대회장 투명경영 기틀 마련그가 ‘시멘트산업’이라는 한 우물을 판 것도 ‘송상’다운 기질을 그대로 드러낸 것. 70년대 초의 일이다. 한일시멘트의 기업규모가 일정 수준에 이르자 사내에서는 유통이나 금융 등 전도가 유망한 서비스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그는 “기업이 단순히 이윤만 추구할 수는 없다”며 고집스레 시멘트 중심의 기간산업분야로만 사업영역을 한정한 일화는 요즘도 회자되곤 한다.경영권을 물려받은 2, 3세들이 무리한 확장전략 펴다가 몰락한 기업이 적잖은 실정이지만 한일시멘트의 2세들은 허선대회장의 경영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재계 시각이다.다섯 형제는 모두 경영일선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경영스타일을 고스란히 빼닮았다는 것이다. 현재 장남인 허정섭 명예회장(64)과 셋째인 허동섭 회장(55), 넷째인 허남섭 서울랜드 회장(52)은 한일시멘트그룹에서, 둘째인 허영섭 회장(62)과 다섯째인 허일섭 부회장(49)은 녹십자에서 ‘형제경영’을 하고 있다. 녹십자는 한일시멘트와 직접적 지분관계는 없으나 60년대 초반 허 선대회장을 중심으로 개성 출신 사업가들이 모여 설립된 제약회사.맏형인 허정섭 명예회장(64)은 ‘보이지 않는 회장님’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공개석상에 나서기를 꺼린다. 언론과 인터뷰를 한 적도 없다. 오죽하면 올 초 신년사에 등장하는 그의 사진이 1997년 10월에 찍은 것일까.허명예회장은 서울고등학교와 한국외국어대 영어과를 졸업한 뒤 1970년 녹십자 상무로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들어갔다. 이어 1979년 한일시멘트공업 전무와 1980년 부사장을 거쳐 1983년부터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1992년 대표이사 회장을 맡은 뒤 24년 만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것.그는 또 아버지의 경영철학을 이어받아 ‘내실경영’을 경영신조로 삼았다. 특히 90년대 말 벤처투자 붐이 거세게 불 때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 한때 사업다각화를 위해 설립했던 한일정보통신과 케이에프텍(2차전지 생산업체)은 수익전망이 불투명해지자 곧바로 정리절차로 들어가는 등 무리한 사업확장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재임기간 내내 분명히 했다.경영권을 장남인 허기호 부사장에게 넘기지 않고 셋째동생인 허동섭 회장에게 넘겨준 것도 재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는 “이제 고루한 생각으로 경영을 하기보다 젊은 마인드가 넘쳐나야 한다”며 기꺼이 동생에게 회장직을 양보하는 결단을 내렸다.허동섭 현 회장은 경복고등학교(1967년)와 경희대학교 경영학과(1974년)를 졸업하고 선대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삼양식품공업에 들어가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79년 미국 지사장으로 3년간 근무하면서 국제감각을 쌓았다.그리고 1982년부터 1992년까지 한일건설 부사장과 대표이사 회장을 지내면서 도급순위 40위권의 우량 건설업체로 거듭나게 한 것으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1995년 한일시멘트로 옮겨 사장과 부회장을 역임한 뒤 올해 3월17일 회장직에 올랐다.허회장은 결재서류에서 숫자가 잘못 기재된 것을 족집게처럼 집어낼 정도로 치밀하고 꼼꼼하기로 유명하다. 사장재임 시절, 집무실에 조직도와 함께 모든 임직원의 사진을 붙여놓고 여직원 이름까지 외울 정도의 치밀한 업무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무리한 사업확장은 안하겠지만 미래 비즈니스에 대해 끊임없는 탐색을 해야 한다”며 전임회장과 달리 ‘변화’에 무게중심을 뒀다.넷째인 허남섭 서울랜드 회장은 형제 중에서도 특히 베일에 싸여 있는 인물이다. 그의 사진을 보유한 언론사가 거의 없을 정도로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경기고, 서울대 출신으로 1992년부터 서울랜드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직해 1999년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둘째인 허영섭 회장과 막내인 허일섭 부회장은 녹십자에서 잔뼈가 굵은 경영인이다. 둘다 경기고, 서울대 출신의 유학파다. 허회장은 독일 아헨공대를, 허부회장은 미국 인디애나대와 휴스턴대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허영섭 회장은 지난 1970년 극동제약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1971년 녹십자로 옮겨 1980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뒤 회사를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로 키우는 능력을 발휘했다.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한국기술진흥협회 부회장, 전경련 부회장 등을 역임하는 등 대외활동도 상대적으로 활발하다. 막내인 허일섭 부회장은 한일시멘트공업에서 상무로 재직하다가 1991년 녹십자 전무로 자리를 옮겨 1997년 대표이사 사장에 이어 지난해 부회장에 올랐다.3세들은 아직 특별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허정섭 명예회장의 장남인 허기호 부사장은 성균관대 경제학과와 미국 선더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난 97년부터 관리담당 임원과 경영기획실장을 맡으며 착실하게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지난해 경영기획실장(전무)을 맡아 주요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과감한 추진력으로 일처리를 깔끔하게 했다는 평이다.한일시멘트 허씨가의 ‘투명경영’ 전통은 최근의 분식회계, 배임, 노사분규 등 혼란스러운 재계 분위기와 비교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위스 취리히 IMD의 가족경영연구소는 “패밀리경영이 3세대까지 이어져 성공할 가능성은 30% 미만”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과연 한일시멘트가 3세대, 4세대로 이어지면서도 창업주의 경영철학을 계승, 발전시켜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기업으로 커 나갈지 지켜볼 일이다.돋보기 / 한일시멘트 어떤 회사인가부채비율 29%, 전형적인 ‘송상’ 기업한일시멘트는 연간 715만t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시장점유율은 2001년 기준 10.22%로 쌍용, 성신, 동양, 현대에 이어 5위 수준. 그러나 재무구조는 상대적으로 우량하다. 지난해 5,666억원의 매출을 올려 783억원의 경상이익을 냈다. 부채비율은 29%. 3월20일 현재 주가는 3만5,900원이다.한일시멘트는 1974년 인도네시아 철강법인 한일자야와 한일산업, 1978년 한일건설, 1986년 한덕개발(서울랜드), 1989년 한일레미콘 등 관련 계열사를 잇달아 설립했고, 지난해 한국기업평가 지분 33.7%를 인수해 최대주주가 됐다.현재 7개의 계열살 거느리고 있으며 총 매출액은 약 1조3,000억원이다. 한일시멘트의 지분은 형제들이 골고루 나눠갖고 있다. 허정섭 명예회장이 8.68%, 허동섭 회장이 4.49%, 허남섭 회장이 3.22%, 허일섭 부회장이 1.30% 등이다.허명예회장의 장남인 허기호 부사장이 지난해 3차례에 걸친 장내매수를 통해 1.75%의 지분을 확보했다. 둘째인 허영섭 회장은 녹십자 지분을 7.82%를, 허일섭 부회장이 5.65%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