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에 겐이치가 쓴 책들은 언제나 독설로 가득 차 있어서 흥미만점이다. 발상도 재미있고 언변도 쾌도난마다. 그러나 정작 일본사람들은 오마에 겐이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도 재미있다. “유별나다” “너무 튄다”는 것이 일본인들의 대체적인 평가이고 보면 그의 성정은 일본인보다 오히려 한국인에 가깝지 않나 싶다.어떻든 그의 다양한 국가개조론 가운데는 경청할 대목이 많다. 일본정부를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서는 일본 농림부 통산성 재무부 등에 대한 통렬한 비판들이 춤을 춘다.‘농민을 위한다’는 농림부의 공무원 머릿수가 정작 농민 숫자보다 많다거나 오직 통산성의 관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허다한 산하단체들에 대한 비판들을 듣고 있으면 속이 후련해질 정도다.굳이 오마에 겐이치를 끌어다 올 필요도 없다. 그가 논하는 정부조직 혁파론을 듣고 있노라면 놀랍게도 한국의 행정조직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행정조직이 식민시절에 뼈대를 구축했던 것이고 보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왕조시대의 낡은 사농공상에다 일제 식민행정까지 이중으로 겹쳐 있으니 한국관료사는 질곡 속에 온전히 갇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설이 길어졌다. 본론을 말하자면 우리나라 역시 오마에 겐이치가 지적하듯 정부 각 부처가 ‘국민의 서비스 기관’이라기보다 오히려 자신들의 관할구역(일본말로 나와바리라고 한다) 의식에 사로잡혀 있고 정책 역시 철저하게 ‘제 자식 먹여 살리기’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농림부는 철저하게 농민보호에 사로잡혀 있고, 산자부는 기업들 보호에, 노동부는 노동자 보호에 매진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오랜 세월 그렇게 지내왔기 때문에 그것이 너무도 지당해 보이고 반론의 여지없이 참인 것처럼 보일 뿐 진실은 그 반대다.그렇다면 필자의 주장은 ‘농림부는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부 부처가 아니라’는 말인가. 그렇다. 농림부는 국민들에게 충분한 농산물, 다시 말해 풍부한 식량을 공급하는 데 책임을 지고 있는 부처일 뿐이다.국민들의 단백질 섭취량이 낮다면 이는 오로지 농림부의 잘못이다. 농민보호, 농업보호는 그것을 위한 중간목표일 뿐 결코 지상과제, 최종목표가 아니다. 농민보호를 정책 목표로 내세워 놓고 있기 때문에 농민을 죽이며 농업을 죽이고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좋은 농수산물을 공급하지 못하게 된다.농민보호를 전면에 내세우다 보니 농업구조조정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하고, 농민을 기약없이 농업의 울타리에 가두어 놓게 되고, 결과적으로 한국농업의 국제경쟁력은 형편없이 떨어진다.노동부는 더 말할 나위 없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의 노동부는 전체 노동자를 위한 부처조차도 아니다. 노무현 정부의 노동부는 노동자 중에서도 조직노동자, 그것도 ‘대기업 조직노동자’를 위한 정부 부처다. 결단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철도청 파업이나 두산중공업 사태를 보면 더욱 그렇다. 비정규직 차별해소나 주5일 근무제를 마치 개혁과제처럼, 그렇게 하면 노동자 복지가 증대될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그렇다.“노동자를 위한다”는 슬로건이 결국에는 실업자를 대량으로 배출시킬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권기홍 노동부 장관은 “노조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논리로 풀어야 하는 문제”라고 못박고 있을 정도다.경제논리가 아니고 정치논리라면, 그리고 무리한 투쟁도 현실이므로 정치적으로 타결을 봐야 한다는 식이라면 그가 말하는 노동자는 오로지 대기업의 조직노동자에 국한된다. 당장 일자리가 필요한 실업자 따위는 한국 노동관료들의 안중에는 없다. 그러고도 개혁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