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세라를 비롯 시마즈제작소 닌텐도 니혼전산 등 알짜배기 회사 많아

한국에 알려진 일본의 옛 도읍 교토의 이미지는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전통이 살아숨쉬는 도시다. 시내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우아한 자태의 고궁과 사찰, 그리고 역사 향기 가득한 고풍스러운 거리를 걷노라면 교토를 처음 찾는 외부인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느끼기 일쑤다.때문에 교토가 일본을 대표하는 첨단하이테크기업들의 산실이라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1,200년 고도가 간직하고 있는 문화적 냄새와 고품격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다.그러나 교토가 일본 최강의 하이테크 거점도시라는 사실은 일본 산업계에서 오래전부터 정설로 굳어져 왔다. 일본 산업계의 이 같은 평가는 이곳에 둥지를 튼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단숨에 이해할 수 있다.세라믹부품에서 출발해 정보통신, 의료, 환경, 광학기기 등의 사업분야에서 일본 최정상급의 경쟁력을 구축하는 데 성공한 교세라를 비롯, 반도체장비의 롬, 무라다제작소, 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 다나카 고이치씨를 배출한 시마즈제작소 등이 모두 교토에 창업의 씨앗을 뿌린 후 초우량 회사로 우뚝 선 기업들이다.이뿐만 아니다. 화투를 만들어 팔던 영세업체에서 세계 게임기시장을 주름잡는 왕자로 성장한 닌텐도와 하드디스크드라이브용 스핀들 모터에서 세계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니혼전산 등의 알짜배기 회사가 역시 교토라는 토양을 배경으로 뿌리를 내리고 거목으로 자랐다.일본 재계와 언론, 그리고 이코노미스트들은 교토에 본거지를 둔 기업의 공통적인 유전자로 반골정신과 독립심을 첫손가락에 꼽고 있다. 외부의 도움이나 지원을 거부한 채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와 개발에 전력투구하며 매달리는 것이 교토 기업들의 보이지 않는 전통으로 굳어져 왔다는 것이다.이들은 또 교토 기업의 대다수가 헛된 꿈이나 눈앞의 단기이익을 좇지 않고 묵묵히 정도를 걸어온 특징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돈이 쏟아져 들어온다고 사업에서 번돈을 부동산투자에 사용했다거나 엉뚱한 곳에 빼돌리지 않고 오로지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내는 데만 정신을 집중했다는 설명이다.교토대 경제학부의 스에마쓰 지히로(末松 千尋) 교수는 자신의 저서 <교토식 경영 designtimesp=24020>에서 “도쿄로 수도가 옮겨간 후 나라의 중심에서 밀려났다는 반발심과 강한 개성이 교토 기업들을 더욱 우수하게 키운 유전자가 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관련 수치를 토대로 “교토에 터전을 둔 기업들은 성장성과 안정성 어느 것에서도 일본 전국 평균을 웃도는 실력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교토 하이테크기업의 맏형·교세라교토의 하이테크기업들을 지칭할 때 언제나 으뜸으로 꼽히는 회사는 교세라다. 일본 재계의 정신적 지도자로 존경받는 이나모리 가즈오(和盛 和夫) 명예회장이 지난 59년 27세의 나이로 창업한 이 회사는 독보적 기술과 물샐틈없는 내부관리, 그리고 적극적인 사업다각화를 발판으로 40여년 만에 연간 매출 1조엔대의 우량 대기업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지난 3월 말 결산에서 1조697억엔의 매출과 760억엔의 경상이익을 기록한 이 회사는 교토의 수많은 하이테크기업들 중에서도 맏형과 같은 존재로 평가받고 있다. 교세라는 마쓰시타, 소니, 히타치 등 기라성 같은 초일류 기업이 즐비하게 버티고 선 일본 전자ㆍ전기업계에서 특허생산성과 수익성 부문 1위를 차지, 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경제주간지 <닛케이비즈니스 designtimesp=24029>가 지난 6월 초 발표한 조사에서 교세라는 특허의 생산효율과 수익력에서 모두 ‘재팬 넘버원’에 올랐으며, <닛케이비즈니스 designtimesp=24030>는 경쟁사가 지나갈 길목을 선점하고 기다린 교세라 특유의 ‘잠복 특허전략’이 가치를 빛낸 것이라고 해석했다.의료, 정보통신, 광학 사무기기에서도 빠른 속도로 시장을 넓혀가고 있는 교세라는 내년 3월 결산에서 1조1,400억엔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SK텔레콤 등 기존의 한국 제휴선들과 협력관계를 폭넓게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니혼게이자이신문 designtimesp=24035>에 의해 2002년 9월 일본 최우량 기업으로 꼽힌 닌텐도는 완전 무차입경영이 말해주듯 ‘알짜배기’로 소문난 회사다. 총자산이 지난 3월 말 기준, 1조855억엔에 이르지만 순수자기자본을 빼고 난 부채는 18%에 지나지 않는다.이마저 외상매입금이나 미지급금 등 이자를 지불하지 않는 부채일 뿐 유이자부채는 제로(0)다. 최우량 기업의 타이틀이 조금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무차입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닌텐도는 지난 3월 말 결산에서 5,041억3,500만엔의 매출과 954억엔의 경상이익을 기록, 수익성에서도 톱클래스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2에 눌린 후 가정용 게임기에서 이렇다할 대형 히트작을 내놓지 못한 탓에 닌텐도의 기세는 잠시 주춤해진 것이 사실.그러나 게임기업계 전문가들은 휴대형 게임기를 합친 전체 실적은 아직 닌텐도가 몇 수 위라며 닌텐도가 대반격에 나설 예정이어서 앞으로의 판도변화에 주목된다고 말하고 있다.INTERVIEW / 니시구치 야스오 교세라(주) 사장“용기와 도전정신이 밑거름 됐죠”“스미토모, 미쓰비시 등 상당수 일본 대기업들이 메이지유신 이후 태어난 재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과 달리 교토의 기업들은 벤처에서 출발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용기와 도전의식으로 뭉쳐진 이들 기업은 남의 도움에 의지하지 않으니 규제를 받을 일도 없었습니다.”교세라(주)의 니시구치 야스오 사장(西口 泰夫ㆍ59)은 “교토의 기업들은 역사적 전통을 중시하는 가운데서도 자유와 창의를 무엇보다 소중한 가치로 지켜왔다”며 “이 같은 분위기가 교토를 우량 기업의 산실로 키운 배경이 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교세라가 교토 기업들의 맏형과 같은 존재이면서 일본국민들로부터 건강하고도 건전한 회사라는 평을 듣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웃으면서) 좋게 봐주니 고맙습니다. 지금은 연간 매출이 1조엔을 넘는 대기업으로 컸지만 교세라도 원래는 벤처에서 출발했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에 도전해 큰 성과를 이뤄낸데다 창업자의 확고한 기업철학(敬天愛人)이 특히 많은 사랑을 받은 것 같습니다.80년대 중반 일본이 통신시장 독점체제를 깨고 자유경쟁체제로 탈바꿈할 때 이를 앞장서 주도하며 개혁의 바람을 불어넣은 주인공이 교세라라는 점도 높은 평가의 배경이 된 것 같습니다.일본 제조업의 앞날을 어떻게 보십니까.이대로 가면 희망이 없습니다. 여러 원인이 있지만 자본주의 개혁을 끝낸 중국이 저임금과 풍부한 노동력으로 일본을 무섭게 쫓아오고 있는 것이 큰 이유죠. 단순한 가격경쟁에서는 일본이 이겨낼 수 없습니다. 제조업 전체 차원의 회복은 어렵습니다.기업마다 추구해야 할 길이 다르지만 교세라는 일본 내 생산거점을 초합리화하고 일본의 임금수준으로도 채산을 맞출 수 있도록 각 부문을 초합리화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으려 합니다.일본 산업계에도 최근에는 감원바람이 거세지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보십니까.고용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경영개선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인원을 대량 감축한다면 기업의 가치 자체가 문제시될 수 있습니다.한국에서도 여러 가지 사업을 전개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합작회사 방식으로 진출해 절삭공구, 휴대전화, 커넥터 등의 제조,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성과도 좋고 SK텔레콤 등 합작 파트너들이 모두 잘해줘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파트너 이름을 아직 밝힐 수 없지만 통신분야와 관련된 일에서 제조, 판매 등 사업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한국기업들은 일에 대한 열정이 강하고 적극적인 점이 특히 인상적입니다.오사카 출생의 니시구치 사장은 오사카교육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한 후 75년 교세라에 입사, 99년부터 대표이사 사장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정보통신 관련 사업을 오랫동안 챙겨와 프로 이상의 식견을 갖췄다는 평을 듣고 있다. 한국의 군대제도가 기업과 종업원을 강인하게 키운 무형의 자산이 된 것 같다는 독특한 견해를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