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 커피, 샤넬 카페…. 커피애호가들은 이탈리아 일리카페(Illycaffe)를 이렇게 부른다. 최고급 커피란 뜻이다. 100%의 아라비카 커피원두로 만들어지는 ‘일리 에스프레소’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다.네슬레와 새러리 등 세계적 대형 식품업체들이 정기적으로 에스프레소 신제품을 출시하는 것과 달리 일리는 지난 70년간 똑같은 상품을 거의 두 배가 넘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다. 맛과 향에 있어서 세계 최고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일리카페는 1933년 헝가리계 이민자의 후손 프란체스코 일리에 의해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 설립됐다. 현재 창업주의 손자인 안드레아 일리(40)가 회장으로 있는 이 회사는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알짜배기 흑자경영 가족기업이다.기업규모는 종업원 380명에 연간 매출액이 2억5,000만유로에 달한다. 세계 70여국에서 하루 300만잔의 에스프레소를 판매하는 일리는 지난해 1,100만유로의 순이익으로 식품업계에서는 보기 힘든 5.4%라는 매우 높은 이익률을 기록했다.프란체스코 일리의 3대손 4남매가 직접 경영하고 소유하는 일리카페는 부채가 전혀 없는 완전 흑자경영 기업이다. 기업의 소유권이 외부인에게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가족 중 누군가가 소유지분을 매각할 경우 가족 전체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비록 기업규모는 중소기업이나 고급제품 브랜드인지도에 있어서는 다국적 기업을 훨씬 능가한다.일리카페의 명성은 바로 커피의 생명인 맛과 향에서 나온다. 안드레아 일리 회장은 원료구매 책임자인 누이 안나와 함께 매년 2회 브라질과 아프리카의 1,000여개 커피 경작 농장을 방문해 농장주들과 직접 품질향상에 관해 논의한다.필요할 경우 일리사가 자체 개발한 노하우도 전수한다. 공장에서 최종상품으로 만들어진 커피원두의 신선함과 향을 가능한 오랫동안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경작은 물론 수확기술도 매우 중요하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또한 양보다 질을 중시한 재배를 독려하기 위해 경작자들에게 일반 커피시장의 1.5배나 되는 후한 가격으로 구매한다. 지난 99년부터는 브라질에서 그해 최고의 커피를 선정하는 ‘브라질 어워드’를 실시해 경작자들의 품질개량경쟁을 유도하고 있다.커피원두를 신선하고 향기롭게 보관하는 비법은 대대로 전수되는 가족의 비밀이자 기업의 기밀이다.창업주 프란체스코 일리는 회사설립 당시부터 맛과 향에 모든 것을 걸고 제품 차별화 정책을 실시했다. 그는 제품의 원료인 커피원두뿐만 아니라 그윽한 향기와 맛의 커피를 만드는 커피기계 개발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1935년에는 여과장치가 달린 최초의 반자동 커피머신 일레타(Illetta)를 발명했으며, 이어 2년 후에는 가루로 만들어진 커피원두 보관을 위해 압축공법을 응용한 새로운 포장기술을 개발했다.1956년 부친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에르네스트 일리 전 회장은 사내 향기전문연구소(아로마랩)를 개설할 정도로 맛과 향 관련 신기술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화학자 출신인 에르네스트 일리 전 회장은 커피 경작지에서 막 수확한 원두를 상태와 질에 따라 자동분리하는 전자식 분류기를 1974년 직접 개발했다.에스프레소 한 잔 만드는 데 필요한 커피 원두수는 약 50개. 그중 단 한 개의 원두라도 질이 나쁜 게 혼합되면 커피 향미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밭에서 거둬들인 직후부터 자동분류기를 통해 품질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여년 전 에르네스트 일리 전 회장이 개발한 원두분류기는 아직도 일리사의 품질검사에 사용되고 있다.물론 원두분류만으로 품질검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일리 커피는 총 114회의 품질검사를 거친다. 수확 원두 상태 검사가 끝나면 카페인 함량을 측정하는 스펙트럼 광도 측정법과 자외선 및 후각 분석과정으로 이어진다. 원두를 볶은 후에는 농약과 중금속 성분 여부를 확인하는 화학테스트를 한다.일리카페의 맛과 향은 이 같은 복잡한 품질검사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이다. 하지만 일리카페가 오늘날 세계 최고급 카페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창업주의 손자 안드레아 일리 회장의 뛰어난 마케팅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지난 93년 일리카페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30세의 안드레아 일리 회장은 독특한 마케팅 기법과 공격적인 해외시장 개척 정책을 펼쳤다. 안드레아 일리 회장은 취임 10년 만에 일리카페의 매출액을 네 배로 늘렸으며 커피업계에서 최고 명성 기업으로 부상시켰다.안드레아 일리 회장은 취임 직후 해외진출 정책을 수립하고 뉴욕과 런던, 파리의 특급 레스토랑을 첫 타깃으로 삼았다. 뉴욕의 고급 프랑스레스토랑 르시르크와 파리의 르그랑베푸르 등 최고급 식당에 후식용 커피를 공급하며 최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나갔다.이런 전략으로 일리는 미식가들이 마시는 최고급 커피라는 인식이 퍼지며 세계 최고의 커피브랜드로 부상했다. 해외진출 초기에는 최고급 레스토랑과의 거래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고객들에게 일리커피를 한 번만이라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애원을 해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리가 상류층이 즐기는 최고급 브랜드라는 소문이 나자 고급 레스토랑들이 일리를 먼저 찾아와 거래를 원할 정도로 상황이 역전됐다.커피잔 컬렉션도 선보여현재 일리는 전세계 4만여개 고급 레스토랑에 에스프레소 커피를 공급한다. 일리가 단시일 내 업계 최고급 브랜드로 자리잡는 데는 기존 제품들과 차별화된 뛰어난 향미 덕분이다. 그러나 우수한 품질에 맞는 고급 브랜드 마케팅 전략도 크게 기여했다.일리는 고급 레스토랑에 에스프레소를 공급하며 그에 맞는 고급 커피잔 세트도 함께 제공했다. 일리의 커피잔 세트는 일리의 로고가 들어간 단순한 홍보용 커피잔이 아니라 조각가 루이즈 부르주와와 영화감독 프랜시스 코폴라 등 유명 예술가들이 직접 디자인하거나 서명한 컬렉션이다.지난 92년부터 매년 선보이는 일리 커피잔 컬렉션은 제품번호가 새겨져 수량도 한정돼 있다. 일리커피는 일리 커피잔에 마셔야 한다는 고급 마케팅 전략이 큰 성공을 거두며 일리 커피잔 컬렉션은 전문 수집가층이 생길 정도로 큰 인기다.새로운 컬렉션은 일리 전문매장이나 일리 홈페이지에서 판매하고 있다. 4개들이 한 세트가격이 80유로일 정도로 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고 있다. 90년대 초반에 나온 컬렉션은 아예 희귀예술품처럼 예술전문시장에서 거래된다. 지금까지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된 일리 커피잔은 영화배우 샤론 스톤이 구입한 것으로 한 경매장에서 5,000유로에 낙찰됐다.전세계의 고급 레스토랑과 유명 카페바시장을 정복한 일리는 3년 전 일반 소매시장에도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일리카페는 최고급품으로 알려져 있다. 안드레아 일리 회장은 일반 시장 진입에 앞서 새로운 포장기법을 개발했다. 1년에 걸친 연구 끝에 개발된 포장재는 기압조절로 장기간 보관이 가능한 알루미늄용기다.특히 알루미늄 포장은 마치 포도주가 시간이 지나며 맛이 숙성되는 것처럼 커피 역시 보관 중에 향이 숙성해 맛을 내는 기법을 도입한 것이다. 물론 이 포장은 경쟁사의 일반 제품용기보다 다섯 배나 비싸다. 그러나 향기 보존 효과는 네 배나 뛰어나다.일리는 일반 소비시장에서도 새로운 포장재 도입을 통한 품질개선과 고급화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커피에 대해서 까다로운 프랑스에서도 출시와 동시에 소비자들로부터 대단한 반응을 얻었다.현재 프랑스 전국의 3,000여개 고급 레스토랑과 카페가 일리의 고객이다. 일반 소매시장의 경우 대형유통업체 카르푸와 인터마르세 등의 1,600개 매장에서 최고급 커피 브랜드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