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 특성 구애받지 않는다는 장점 가져…우주 태양광 발전 앞당길 촉매제 역할 기대

[비트코인 A to Z]
전기산업의 미래를 선도할 비트코인 채굴[비트코인 A to Z]
‘빈곤의 종말’로 존경받는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는 비트코인은 해로울 뿐만 아니라 범죄라고 강변했다. 그런데 그가 비트코인이 지구에 해롭다고 한 것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채굴하면서 엄청난 전기를 소모하므로 지구 온난화와 함께 에너지 위기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먼저 비트코인의 잠재성을 인정했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몇 년 전부터 우려를 표명하는 이유 중 하나도 지구 환경에 비트코인 채굴이 가하는 부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채굴은 비트코인 시스템의 핵심이지만 이름에서부터 오해를 유발한다. 채굴자로서는 코인을 얻는 작업이지만 전체로는 시스템을 보호하는 장치다. 비트코인이 보물이라면 채굴은 보물을 보관하는 금고라고 할 수 있다. 중앙 지휘소가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금고지기를 유치하기 위해 당근을 활용한다. 채굴자는 코인이라는 당근이 목적이지만 그들이 참여할수록 금고는 두꺼워진다. 내용물의 가치에 따라 금고의 외벽이 두꺼워지도록 한 설계야말로 비트코인 디자인의 핵심이다.
채굴이 발전소 경영을 합리화한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수록 금고의 외벽이 두꺼워진다는 말은 채굴자가 증가하고 사용하는 전기도 늘어난다는 뜻이다. 여러 가지 통계가 있지만 최근에는 비트코인 채굴에 사용되는 전기가 아르헨티나 국민이 사용하는 전기를 초과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순위도 계속 올라갈 것이라는 사실이 두렵기만 하다.

전기 소모를 비난하는 이들은 비트코인이 쓸모가 없다는 전제를 의심하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한 비트코이너들의 반론이 아무리 설득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비트코인 자체가 쓸모없다는 전제를 수정하지 않는 한 납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비트코이너들의 다음과 같은 논리를 따라오려면 일단 비트코인이 쓸모없다는 선입견을 잠시 접어 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환 논법에 빠져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비트코인 채굴은 지구 어디서나 가능하다. 이 단순한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엄청나다. 물리량으로는 아르헨티나 국민만큼 전기를 소모한다고 하더라도 이 단순한 사실 때문에 경제학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두 수치의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아르헨티나 국민은 비슷한 계절에 그리고 하루 중 비슷한 시간대에 전기를 소비한다. 따라서 아르헨티나 국민의 전기 소비량은 진실을 호도한다. 국가적으로는 소비량보다 4~5배 정도의 전기 생산 설비와 공급량을 확보해야만 한다. 이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평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최댓값에 맞춰야만 블랙아웃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채굴은 지구 어디서나 가능하므로 아르헨티나 국민이 사용하는 전기 총량에 추가적인 부담 없이 버려지는 전기 자원이나 설비를 이용해 채굴할 수 있다.

두 개의 전기 소비량이 다르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전제를 좀더 단순화해 보자. 전기 발전소들만 비트코인 채굴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황당하기만 한 가정은 아니다. 경쟁력 때문에 차차 현실화될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발전소들은 피크 타임이나 성수기 때를 피해 남는 설비를 이용해 비트코인을 채굴해 둔다. 비트코인을 팔아 얻은 이익으로 설비를 개선하거나 국민의 전기료를 낮출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의 발전소들이 채굴하지 않을 때는 계절이 다른 북반구 캐나다의 수력 발전소가 채굴하면 되므로 비트코인 시스템은 문제 없이 돌아간다. 캐나다와 아르헨티나의 계절은 반대지만 시간대는 겹친다. 즉 하루 중 피크 타임이 같다. 따라서 아르헨티나 국민이 전기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시간대에는 호주나 유럽의 발전소에서 비트코인을 채굴한다.
재생에너지 사용에 적극적인 비트코인 채굴
비록 이론적이고 단순한 가정이지만 이 모형에 따르면 비트코인 채굴은 전 세계 전기 소비량을 조금도 늘리지 않으면서 발전소들의 경영까지 합리화해 준다. 지탄받는 비트코인을 채굴하는 데 발전소가 나설 리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민간 채굴업자와 비성수기 특약을 맺어도 이 모형에 접근하게 된다. 바람직해서라기보다 유휴 설비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경쟁력 있기 때문에 이는 빠르게 현실이 될 것이다. 실제로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이뤄지는 비트코인 채굴은 대체로 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조사가 있었다.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수력 발전을, 노르웨이에서는 지력 발전을 활용한다.

수력 발전소 덕분에 전기가 넘쳐 원래는 알류미늄 제련 공장이 입지했던 뉴욕의 머시나 같은 지역에 공장이 철수하면서 남긴 공백을 비트메인이나 라이엇 블록체인(Riot Blockchain Inc) 같은 비트코인 채굴 기업이 파고 들었다. 특히 나스닥에 상장한 라이엇 블록체인은 최근 비트코인이 6배 오르는 동안 주식 가격이 10배 넘게 상승해 유명해졌다.

가격이 오를수록 채굴업자들이 늘어나게 되고 경쟁이 치열해지기 때문에 채굴업자들은 버려지는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혈안이 되기 마련인데 지리적 특성에 구애 받지 않는 채굴의 특성상 지금까지 버려지던 자원을 활용하려는 기술적 도약이 빠르게 이뤄질 것이다.

석유를 시추하기 위해 가스를 태우는 것을 가스 플레어(gas flare)라고 하는데 높은 시추대에 매달린 불꽃은 석유 산업의 상징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석유 시추를 반대하는 환경론자들의 타깃이기도 하다. 에너지 자원을 낭비하는 데다 온실가스까지 배출하기 때문이다. 태워버리지 않고 가스를 수집해 시장에 파는 게 이롭겠다고 생각하겠지만 일반적으로 기체를 소비지까지 운반하는 비용이 더 많이 들기 때문에 누군가 가져간다고 하면 시추업자들은 웃돈을 주고서라도 넘기고 싶어한다. 즉 가스 플레어를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채굴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빛을 발하는 이유다.

지난 3월 코인쉐어에 의해 1차 투자가 완료된 민트그린은 채굴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술 회사다. 이 회사는 채굴 시 뿜어져 나오는 열을 이용해 위스키를 숙성하거나 염전의 수분을 증발시킨다.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수록 버려진 전기 자원을 발굴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도약적으로 발전하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은 비트코인 채굴이 아이디어 단계에 불과한 우주 태양광 발전을 앞당긴다는 주장이다. 우주 태양광 발전(SBSP : Space Based Solar Power)은 주요 국가들의 전략적 육성 분야다. 구름과 대기와 밤이 없는 우주 공간에서 이뤄지는 태양광 발전은 적절한 환경의 지표면 발전보다 효율이 40배나 높다. 문제는 생산된 전기를 지상에 보내는 레이저 빔 기술인데 경제성 확보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 하지만 만약 비트코인이 충분히 비싸다면 경제적으로는 SBSP의 난제가 단번에 해결된다. 지리에 구애받지 않는 비트코인 채굴이 우주에서도 가능하며 비트코인을 지상으로 보내기 위해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SBSP를 활용한 채굴은 지구 환경과 에너지 자원에 추가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꿈의 발전인 SBSP 산업의 발전을 촉진할 것이다.

비트코인 채굴이 친환경·친기술적으로 도약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은 중국의 대응이다. 중국은 석탄을 활용한 화력 발전이 많은 데다 채굴업자들이 전기를 훔치고 있다. 이런 부조리한 구조 때문에 중국에서 이뤄지는 채굴은 친환경적이지도 친기술적이지도 않다. 더욱 문제는 원가가 없다시피해 중국 채굴의 비율이 높을수록 시장 가격이 왜곡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비트코인 가격에는 결정적인 때마다 투매하는 중국 채굴업자들이 가하는 왜곡과 압력이 포함돼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가 좀더 적극적으로 채굴업자들을 색출하면 할수록 비트코인과 비트코인 채굴은 인류에게 득이 되는 방향으로 견실하게 발전해 나갈 것이다.

오태민 ‘비트코인은 강했다’, ‘비트코인 지혜의 족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