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 ‘눈’ ADAS 강자…전기차로 전환해 K부품 수혜주로

[비즈니스 포커스]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한국경제신문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한국경제신문
한라그룹의 자동차 전장 부품 업체 만도가 미래 모빌리티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만도는 최근 폭스바겐그룹으로부터 1조4000억원 규모(총 5000만 개, 1250만 대)의 서스펜션 수주에 성공하며 ‘잭팟’을 터뜨렸다.

이번 수주로 만도는 세계 최대 자동차 제조사이자 글로벌 2위 전기차 업체인 폭스바겐그룹을 고객사로 두면서 글로벌 자동차 부품 전문 기업 도약을 향한 성장 엔진에 날개를 달게 됐다.

만도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접어들며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자율주행차로 전환되며 자동차 부품 산업 비율이 확대되는 추세에 발맞춰 제동·조향·현가·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 등 핵심 기술력을 기반으로 부품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2017년 10월 만도 대표이사에 복귀한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이 주도한 친환경차와 자율주행 솔루션에 대한 ‘선택과 집중’ 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폭스바겐 ‘잭팟’ 글로벌 수주 확대 노려
만도가 2021년 3월 폭스바겐그룹에서 수주한 서스펜션 부품의 공급 기간은 2022년 하반기부터 2033년까지 11년이다. 만도의 폭스바겐그룹 매출액 비율은 2.5%, 연간 예상 매출액은 1300억원 규모로 크지 않지만 이번 수주를 통해 기존 제동 부품 중심에서 현가로 공급 제품이 확대되고 단일 차종이 아닌 폭스바겐의 핵심 플랫폼(MEB, MQB)으로 공급이 시작된다는 것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폭스바겐그룹이 만도를 전략적 파트너사로 선택하면서 만도의 주요 고객사로 부상했다. 2029년까지 전기차 누적 판매량 2600만 대라는 공격적인 목표를 세우고 ID3, ID4 전기차를 본격 출시하며 시장 선점에 주력하는 폭스바겐그룹을 통해 매출처 다변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만도는 2000년대 이후 현대차그룹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쏟아 왔다. 남다른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제너럴모터스(GM)·포드·BMW 등으로 매출처를 다변화한 결과 2000년 82.7%에 달하던 현대차그룹 매출 비율을 2020년 58% 정도로 낮출 수 있었다. 만도는 현대차·기아 등 한국 회사뿐만 아니라 폭스바겐·GM·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카누 등도 고객사로 두고 있다.

만도는 자율주행·전장 부품 전문 기업인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MHE)를 인수하며 글로벌 자율주행 솔루션 업체로 도약하는 발판도 마련했다. 만도는 올해 3월 지주회사인 한라홀딩스와 독일 헬라(HELLA)가 50%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만도헬라 지분 100%를 1650억원에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이번 인수로 만도헬라의 역량과 거점 등을 활용해 기술 개발·생산·영업에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합작회사(JV) 해제로 수주 제한이 사라지면서 그동안 납품 요청에도 고사해야만 했던 북미와 유럽의 ADAS 신규 수주도 가능해졌다.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ADAS 등 수주 활동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정몽원의 미래차 승부수…친환경차 올라탄 만도의 쾌속 질주
매출 5% R&D에 투자, 美 전기차 카누도 러브콜
한국의 부품 업체들은 현대차·기아 등 한국의 완성차 업체들에 매출처가 편중돼 있어 완성차 업체의 판매가 부진하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구조여서 글로벌 업체들로 매출처를 다변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2012년 당시 위기에 빠진 건설부문 재건에 집중하기 위해 만도를 떠났던 정 회장이 5년 만에 돌아와 자동차 사업의 키를 다시 쥔 것도 자동차 업황 부진과 중국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의 여파로 주요 고객사인 현대차·기아가 실적 부진에 직면하자 그룹의 중심축인 만도가 동반 위기를 겪게 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돌아온 정 회장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미래차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미래 모빌리티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기술 개발에 매진했다. 2019년 9월 자율주행 로봇, 친환경 부품 개발 등 신사업 전담 조직인 ‘WG 캠퍼스’를 신설하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LG전자 출신의 오창훈 부사장을 영입했다.

WG는 정 회장의 부친이자 한라그룹 창업자인 정인영 명예회장의 호인 ‘운곡’에서 따왔다. 만도 WG 캠퍼스는 EV(전기차)랩과 F3(Future Frontier Freedom)랩, New Business(신사업) 등으로 구성돼 친환경차 기술 확보, 로봇 솔루션 개발, 모빌리티 분야 스타트업 투자 등을 추진하고 있다.

정 회장은 전기차 성장에 대비하기 위해 매출에서 연구·개발(R&D) 투자 비율을 5% 이상 유지한다는 철칙을 고수하고 있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와 자동차 업황 부진 속에서도 전체 매출의 5.08%에 해당하는 3227억원을 미래차 R&D에 투자했다. R&D 집중 투자에 힘입어 만도는 세계 최초로 자유 장착형 첨단 운전 시스템(SbW)을 개발했다.

SbW는 자동차 섀시(뼈대)와 스티어링휠을 분리하는 기술로, 자동차 경량화와 차량 실내 공간 활용성을 높일 수 있어 미래차 분야의 주요한 기술로 꼽힌다. 만도는 2021년 1월 온라인으로 열린 세계 가전 전시회(CES) 2021에서 SbW로 혁신상을 받았다. 앞서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카누와 SbW 50만 대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2022년부터 본격 양산할 예정이다.

정 회장은 2020년 5월 만도 지속 가능 보고서에서 “자동차 산업은 더이상 전통적인 제조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고 자율주행·전기차·인공지능(AI) 기반의 자동차 등 시장의 요구와 변화에 대응하고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며 “WG 캠퍼스 신설 등 신사업을 통한 업(業)의 확대뿐만 아니라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제조 중심의 기업을 넘어 그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