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노바메이트’ 미국 이어 유럽 판매 허가…SK(주), 프랑스 기업 인수 등 바이오 투자 확대

[컴퍼니]
(사진) SK바이오팜 연구원들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SK바이오팜 제공
(사진) SK바이오팜 연구원들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SK바이오팜 제공
SK가 한국 제약사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는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로부터 판매 허가를 획득했다. 미국에 이어 유럽 시장에 모두 진출한 첫 국산 신약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SK(주)는 최근 프랑스 유전자·세포 치료제 위탁 생산(CMO) 기업 이포스케시의 인수를 마무리하며 바이오·제약 사업 확장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자회사 SK바이오팜을 통한 신약 개발 능력과 함께 합성·바이오 원료 의약품 생산을 아우르는 밸류 체인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유럽 동시 진출한 첫 국산 신약 탄생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가 3월 30일 EU 집행위로부터 판매 허가를 획득했다고 발표했다. 한국 제약사가 독자 개발한 신약이 미국과 유럽 시장에 모두 진출한 것은 세노바메이트가 최초다. 세노바메이트는 지난해 5월부터 ‘엑스코프리’라는 제품명으로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제품명 ‘온투즈리’로 올해 3분기부터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영국 등 41개국에서 순차적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SK바이오팜은 2019년 스위스 제약사 아벨 테라퓨틱스와 세노바메이트의 유럽 현지 상업화(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1월 아벨이 안젤리니파마에 인수되면서 보유하고 있던 아벨 지분 전량을 안젤리니파마 측에 양도했다.

SK바이오팜은 이번 유럽 허가 획득으로 안젤리니파마로부터 단계별 기술료(마일스톤) 1억1000만 달러를 받게 된다. 아벨 지분 매각에 따른 단계별 마일스톤 1322만 달러도 추가로 받는다. 세노바메이트의 유럽 판매가 본격화하면 매출 실적과 연계된 마일스톤도 수령할 예정이다. 최대 5억8500만 달러의 수익 창출이 기대되는 가운데 판매에 따른 로열티는 별도로 받는 만큼 수익 규모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는 게 SK바이오팜의 설명이다.

피에루이지 안토넬리 안젤리니파마 사장은 “온투즈리는 예기치 못한 발작 증상으로 고통 받는 뇌전증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우 SK바이오팜 사장은 “유럽 뇌전증 환자에게 획기적 치료제를 제공하고자 한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됐다”며 “중추신경계(CNS) 환자를 위한 새로운 치료 옵션을 지속적으로 개발해 글로벌 종합 제약사로서의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산 신약’ 새 기록 갈아 치운 SK
세노바메이트의 미국 처방 실적은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SK바이오팜은 미국 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를 통해 세노바메이트를 직접 판매하고 있다. 세노바메이트는 지난해 4분기 전 분기 대비 68% 증가한 1만1092건의 처방 수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처방 수는 지난 10년간 출시된 동일 적응증 신약 3개 제품의 출시 8개월 차의 처방 수 평균 대비 60% 이상 높은 수준이라는 게 SK바이오팜의 설명이다.

구자용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선진 시장에서 신약 판매 등의 밸류 체인을 구축하는 것은 단순 개발사에서 벗어나 글로벌 제약사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전략”이라며 “세노바메이트가 CNS 의약품의 특성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할 때 기대 이상의 처방 실적을 보이고 있는 만큼 올해 회사 매출과 주가가 우상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를 아시아 시장에서도 선보일 계획이다. 올해 한국인·일본인·중국인을 대상으로 임상 3상 시험을 본격화한다. SK바이오팜은 기존 파이프라인(신약 후보 물질)의 상업화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희귀 소아 뇌전증 치료제 ‘카리스바메이트’의 판매 허가 신청서(NDA)를 2024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한다는 목표다.

고성장 바이오 CMO 사업에 진출한 SK(주)

SK(주)는 최근 프랑스 유전자·세포 치료제 CMO 이포스케시 인수를 마무리하는 등 CMO 사업 확장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해 12월 독점 인수 협상 중임을 밝힌 후 4개월 만이다. SK는 미국 새크라멘토에 설립한 CMO 통합 법인이자 SK(주)의 자회사인 SK팜테코를 통해 이포스케시를 인수했다.

이포스케시는 유전자·세포 치료제 연구·개발(R&D)의 핵심인 유전자 전달체(벡터) 생산 플랫폼 기술 등 독보적 기술력을 갖춘 유망 바이오 CMO다. 이포스케시의 경쟁력은 주요 주주이자 핵심 고객사인 제네톤에 있다. 이포스케시는 제네톤에서 2016년 스핀오프(회사 분할)해 설립됐다.

제네톤은 1990년대 인간 유전자 지도 연구의 핵심적 역할을 맡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유전자 연구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근위축증, 선천성 면역 결핍, 희귀 간질환 등 치료법이 없는 희귀 질환의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한 후 제약사에 기술 수출하거나 공동 개발을 통해 상업화하는 곳이다. 제네톤은 이 과정에서 이포스케시와의 파트너십을 이어 가고 있다. 제네톤은 앞으로도 이포스케시의 주주로 남아 SK(주)와 장기적 비전을 공유하는 등 협력할 예정이다.

이포스케시는 프랑스 에브리에 있는 제노폴에 5000㎡(1500평 이상) 규모의 의약품 생산 국제 기준(GMP) 생산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해당 생산 시설을 2배로 늘리는 증설 작업을 진행 중이다. SK(주)의 투자를 통해 진행 중인 설비 확장에 힘을 싣게 됐다. 내년 3분기에 완공되면 이포스케시는 유럽 내 최대 규모 수준의 생산 역량을 보유한 유전자·세포 치료제 CMO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장동현 SK(주) 사장은 “뛰어난 역량과 잠재력을 지닌 이포스케시 투자를 통해 유망 성장 영역인 유전자 치료제 CMO 사업에 진출하게 됐다”며 “이포스케시가 글로벌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산 신약’ 새 기록 갈아 치운 SK
이번 인수는 SK(주)의 CMO 사업에서 셋째 글로벌 인수·합병(M&A)이다. SK(주)는 2017년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의 아일랜드 스워즈 공장, 2018년 미국 앰팩 인수 등 과거 한국 바이오·제약 산업에서 볼 수 없었던 해외 기업 대상 크로스 보더 딜을 잇따라 성사시키며 글로벌 입지를 강화해 왔다. SK(주)는 이포스케시 인수로 기존 합성 의약품에 이어 바이오 의약품 CMO 영역을 포함한 글로벌 CMO 사업 체계를 갖추게 됐다. 미국·유럽·아시아 등 글로벌 시장에 혁신 신약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SK바이오텍), 아일랜드(SK바이오텍 아일랜드), 미국(앰팩)의 CMO 통합 법인인 SK팜테코의 지난해 매출은 통합 운영 시너지와 코로나19 특수에 힘입어 글로벌 확장 전인 2016년 대비 약 7배 늘어난 7000억원을 기록했다. 외형·수익성·생산 역량·기술 측면에서 글로벌 톱5 CMO로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는 가운데 2023년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SK팜테코의 CMO 사업 확장은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회사의 가치를 높이는 긍정적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훈 SK(주) 바이오 투자센터장은 “2025년까지 미국·유럽·아시아의 주요 거점별로 합성·바이오 의약품 CMO 사업의 밸류 체인을 완성할 것”이라며 “SK팜테코를 세계 제약 시장에 합성·바이오 혁신 신약을 모두 공급할 수 있는 글로벌 선도 CMO로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최은석 기자 choi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