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과 사업 매각 후 재무 구조 환골탈태…자본 시장 위상 수직 상승
부채 비율 1년 만에 74.5%P 낮추고 신용 등급도 올라
캐시카우 바탕으로 히트작에 골몰…제2의 전성기 노려

[마켓 인사이트]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해태제과식품 사옥 전경 / 해태제과식품 제공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해태제과식품 사옥 전경 / 해태제과식품 제공
자본 시장에서 해태제과식품의 위상이 달라졌다.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던 ‘그저 그런’ 제과 업체에서 기관투자가들이 줄 서 투자를 기다리는 이른바 ‘잘나가는’ 제과 업체가 됐다.

4월 초 공모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수요 예측엔 당초 모집 금액의 14배 이상의 ‘뭉칫돈’이 밀려들었다. 해태제과는 3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었는데 기관투자가들이 투자하고 싶다며 들고 온 돈은 4230억원에 달했다. 기관투자가들의 성화에 못 이긴 해태제과는 결국 계획보다 100억원을 늘려 4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그만큼 기관투자가들이 해태제과의 사업·재무 안정성을 높게 평가해 투자 가치가 있는 업체로 판단했다는 의미다.
기관 뭉칫돈 4200억원 끌어들인 해태제과식품에 무슨 일이
‘허니 열풍’ 이후 재무 상태 악화 일로

사실 해태제과는 한동안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진 제과 업체였다. 2014년 유례없던 ‘허니버터칩 열풍’ 이후 외형과 수익성 모두 하락세를 탔다. 과거 해태제과는 비스킷·스낵 등 건과, 아이스크림 등 빙과, 냉동 만두 제품 생산을 주력으로 했다. 1990년대 후반 법정 관리를 거쳐 2005년 1월 크라운제과 컨소시엄에 인수됐다. 지난해 말 기준 최대 주주인 크라운해태홀딩스와 특수관계인이 지분 71%를 갖고 있다.

한국의 제과 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다. 설비 투자와 유통망이 뒷받침돼야 하고 브랜드 인지도도 어느 정도 갖춰야 한다. 이 때문에 76년 업력의 해태제과는 크라운제과·롯데제과·오리온과 철저하게 과점 체제를 형성했다. 해태제과의 시장 지위는 3위다. 물론 크라운제과로 인수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시장점유율이 흔들리긴 했지만 안정적으로 시장 입지를 지켜 왔다. 계열사인 크라운제과와 영업망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사업 효율성을 높이기도 했다.

‘허니버터칩’ 인기에 기대 2016년엔 기업공개(IPO)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860억원의 자금이 유입돼 재무 구조를 일정 부분 개선했다. IPO 효과도 잠시였다. 제과 업체의 핵심은 결국 히트 제품이었다. ‘허니버터칩’ 이후 해태제과는 이렇다 할 히트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경쟁 업체들은 앞다퉈 유사한 제품을 내놓았고 해태제과의 신제품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제과 시장의 경쟁은 갈수록 심화됐고 이에 따른 마케팅 비용만 불어났다.

이렇다 보니 2015년 사상 최대 영업이익인 469억원을 기록한 뒤 해태제과의 영업이익은 빠르게 줄었다. 한때 해태제과의 영업이익은 100억원대까지 주저앉았다. 간신히 2018년 200억원대 영업이익을 회복했지만 한 자릿수대 초반으로 떨어진 영업이익률을 회복하고 치솟는 부채 비율을 잡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2017년 이후 영업 현금 창출 능력은 위축됐는데 비경상적인 자금 소요는 계속됐다. 계열사 지분 취득에 광주 공장의 만두 라인 신규 증설, 퇴직금 중간 정산 등이 겹치면서 영업 현금 흐름을 웃도는 자금 지출이 발생했다. 차입 부담도 덩달아 커졌다. 해태제과의 연결 기준 순차입금은 2016년 말 2514억원에서 2019년 말 2894억원까지 증가했다. 저수익 품목과 거래처를 정리하고 영업도 주력 브랜드 위주로만 했다. 적극적인 사업 구조 조정에도 시장 교섭력은 예전만 못했고 줄어드는 매출을 다시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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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과 매각으로 국면 전환

국면 전환의 계기는 빙과 사업 매각이었다. 빙과 시장에서 위치가 독보적이지는 않지만 해태제과는 인기 장수 제품, 이른바 스테디셀러를 꽤 갖고 있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바밤바’, ‘누가바’, ‘쌍쌍바’, ‘부라보콘’ 등이다.

스테디셀러의 명성에 가려져 있었지만 해태제과의 빙과 부문은 오랜 적자 사업부였다. 고질적인 산업 구조 때문이기도 했다. 내수는 부진한데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은 빠르게 바뀌었다. 디저트 전문 카페가 우후죽순 생겨났고 음식료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업체들은 계절성 한정판 빙수 메뉴를 잇따라 선보였다. 수입 제품도 무섭게 한국 빙과 시장을 잠식했다.

시장이 과열되다 보니 업체들은 ‘제 살 깎기’식 가격 할인 정책을 폈다. 해태제과는 다른 경쟁 업체와 달리 연관된 유가공 제품도 없었다. 해태제과 빙과 사업의 영업 적자 규모는 2016년 157억원, 2017년 160억원, 2018년 106억원, 2019년 133억원이었다. 이런 만성적인 빙과 부문의 영업 적자는 해태제과의 전반적인 영업수익성을 갉아먹었다. 실제 2018년과 2019년의 해태제과 영업이익률은 각각 3.2%, 2.1%였다. 여기서 빙과 부문의 실적만 제외하면 각각 6%, 5.2%로 뛸 정도였다.

지난해 초 해태제과는 빙과 부문을 떼어내 해태아이스크림으로 분사하는 결정을 내렸다. 시장에선 해태아이스크림 매각을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많았지만 결국 해태제과는 빙그레에 해태아이스크림을 팔았다. 가뜩이나 성장이 정체된 매출이 빙과 부문 매각으로 더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반 년도 안 돼 평가가 뒤바뀌었다. 해태제과가 빙과 사업 매각으로 유입된 자금을 적극적으로 재무 구조 개선에 활용하면서다. 해태제과는 매각 대금으로 들어온 자금 1325억원 중 상당 부분을 차입금을 갚는 데 썼다. 이 덕분에 해태제과의 순차입금은 단숨에 1900억원대로 급감했다. 2016년 말 2514억원, 2017년 말 2757억원, 2018년 말 2844억원, 2019년 말 2894억원으로 불어나던 순차입금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는 1964억원으로 줄었다. 처분 이익을 인식하면서 부채 비율도 개선됐다. 2019년 말 210%였던 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엔 135.5%가 됐다. 단번에 74.5%포인트가 낮아졌다.

기업의 재무 부담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볼 수 있는 법인세 이자 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 지표(연결 기준)를 봐도 빙과 사업 매각 전에는 4.8배였는데 지난해 말에는 2.4배로 줄었다. 해태제과의 재무 부담이 절반 수준이 됐다는 의미다. 재무 부담만 줄어든 게 아니다. 적자 사업부를 털어내니 수익성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주요 수익성 지표인 EBITDA 마진율을 보면 확연히 나타난다. EBITDA 마진율은 기업이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 창출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해태제과의 EBITDA 마진율은 2016~2019년까지 5~7%대를 오르내렸다. 지난해에는 이 수치가 12.3%로 뛰었다. 빙과 부문을 제외한 전년 실적과 비교해도 개선된 수준이다.

물론 지난해엔 수익성 개선을 위한 여러 호재가 겹쳤다. 신종 코로나바이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대부분의 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음식료 업체들은 달랐다. 오프라인 판매 촉진 행사가 줄었고 외부 활동이 자제되면서 제과 수요도 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태제과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해태제과 신용도에 유난히 비판적이었던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해태제과의 회사채 신용 등급을 종전 ‘A-’에서 ‘A’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한국기업평가는 수년째 “해태제과의 신제품 판매가 저조하고 재무 구조 개선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이젠 신용 등급을 올릴 만큼 해태제과의 사업·재무 구조가 개선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업 분석 전문가들은 “빙과 부문 매각으로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지만 수익성엔 분명히 긍정적”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적자 사업을 떨쳐내고 건과 사업에서 꾸준히 이익을 창출하면 중·장기적으로 재무 구조에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엄정권 한국기업평가 책임연구원은 “과점화된 경쟁 구도와 주요 제품별로 고착화된 소비 성향을 감안하면 주력 브랜드의 시장 지위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이라며 “캐시카우(현금 창출원)인 ‘홈런볼’과 ‘오예스’ 등 주력 브랜드를 주축으로 연계 상품을 출시하는 메가 브랜드 전략을 펼치면서 영업 효율성을 추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관 뭉칫돈 4200억원 끌어들인 해태제과식품에 무슨 일이
화려한 부활 위한 남은 과제는

해태제과는 제2의 전성기를 노리고 있다. ‘허니버터칩’ 이외에도 해태제과의 효자 제품인 ‘홈런볼’, ‘오예스’, ‘에이스’, ‘맛동산’, ‘자유시간’ 등 장수 브랜드가 다수 포진해 있기 때문에 신규 소비자 층을 대거 그러모을 수 있는 확실한 ‘한방’만 더해지면 퀀텀 점프(대도약)가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일단 코로나19가 진정되면 시장 내 판매 경쟁이 다시 거세질 수 있다. 인구 감소와 출산율 하락으로 유소년층이 빠르게 줄고 있다. 제과 업체에 유소년층은 핵심 소비자군이다. 여기에 웰빙 풍조에 따른 대체 먹거리와 수입 과자의 빠른 국내 유입은 제과 업체들의 성장 잠재력을 낮추고 있다. 유통 업체들은 소비자층을 세분화해 맞춤형 자체 상품(PB)을 월 단위로 출시하고 있다. 산업 전반의 수요가 줄고 있어 이익 창출 능력을 지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선 큰 변화와 시도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만두 사업도 해태제과엔 고민거리다. 해태제과는 ‘고향만두’ 브랜드로 20년 정도 명실공히 ‘만두 왕좌’를 지켰다. 하지만 비비고 브랜드를 앞세운 CJ제일제당과 풀무원이 빠르게 만두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이미 만두가 주력인 냉동식품 부문에서 해태제과의 경쟁력이 상당 부분 약화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 같은 숙제를 풀기 위해선 연구·개발과 투자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어렵게 회복한 재무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당분간 별다른 투자를 단행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개선된 영업 현금 창출 능력을 유지하면서 미래를 위한 투자까지 챙겨야 하는 난제에 직면한 셈이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