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주, PER·PBR 등 옛 평가 지표로 현재 주가 증명에 한계
뉴 노멀 시대에는 무형의 잠재 가치가 주가에 반영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쿠팡과 코인베이스 상장으로 본 가치주와 성장주 논쟁
모든 주식 투자자의 관심 속에 코인베이스가 뉴욕 증시에 상장됐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의 가치가 얼마인가’라는 본질적 논쟁 속에 준거 가격 250달러의 1.5배 이상의 가격에 거래가 시작됐다. 이에 따라 테슬라·니콜라·쿠팡의 주가처럼 상장 첫날부터 ‘거품’이 아니냐는 또 다른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이른바 ‘성장주’로 꼽히는 이들 기업의 주가와 관련해 두 가지 시각이 팽팽히 맞선다. 하나는 경기와 기업 실적이 받쳐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성장주는 깊은 나락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다른 하나는 경기와 기업 실적이 뒤따라오면서 계속해 유망할 것이란 시각이다.

미래 가치에 주목하는 새 평가 지표 ‘PDR·PPR’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현재 주가 수준부터 평가해 보면 성장주는 주가수익률(PER)과 주가순자산배율(PBR) 등 전통적 평가 지표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주가 수준이 높게 형성돼 있다. 쿠팡과 코인베이스의 상장 첫날 주가가 대표적이다.

성장주의 주가가 전통적 평가 지표로 설명할 수 없다 보니 일부 한국 증권사는 주가매출비율(PSR)을 사용하려고 하지만 한계가 있다. PER·PBR과 마찬가지로 과거 실적을 기준으로 하는 평가 지표라는 점과 최근처럼 매출과 이익 간 괴리가 심해지는 상황에서 적정 주가 판단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9년 9월 리먼 사태 이후 금융은 실물 경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하는 위치로 바뀌었다. 각국 중앙은행도 자산 효과를 겨냥해 경기 회복을 모색하는 통화 정책을 실시 중이다. 제로(혹은 마이너스) 금리와 양적 완화와 같은 비전통적인 통화 정책이 전통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의미다.

‘뉴 노멀’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주식 투자 여건에선 경기와 기업 실적이 따라주지 않더라도 미래 수익으로 연결될 수 있는 무형의 잠재 가치가 높게 평가돼 주가가 크게 오를 수 있다.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의 저서 ‘이야기 경제학’에 나오는 얘기다.

주가는 과거 실적이 아니라 미래에 기대되는 수익에 투자한 결과라는 차원에서 보면 충분히 일리가 있고 맞는 말일 수 있다. 월가에서 주목받고 있는 새로운 주가 평가 지표로는 주가무형자산비율(PPR)과 꿈 대비 주가 비율(PDR) 등이 있다.

코인베이스 등 성장주의 적정 주가 수준을 따져 앞날을 예상해 보면 구 평가 지표로는 ‘하락’, 신규 평가 지표로는 ‘상승’이라는 엇갈린 결론이 나온다. 단, 구 평가 지표의 주가 하락 근거인 경기와 기업 실적 부진과 신규 지표의 주가 상승 근거인 미래 잠재 가치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기업 내부적 요인이 있지만 경기와 기업 실적이 좋아지면 미래 잠재 가치도 올라가기 때문이다.

가치주와 성장주 간의 논쟁에서 보다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은 가치주는 저평가된 현재 가치에, 성장주는 높게 평가되는 미래 잠재 가치에 수렴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이를 채워 줄 수 있는 자원은 유한하다. 경제학 원론 첫 페이지에서 접하는 ‘자원의 희소성 법칙’과 일맥상통한다. 이 법칙을 가장 간단하고 이상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시장 신호에 의한 것이다. 특정 재화에 대한 욕망이 높은 시장 참가자는 높은 가격을 써낼 의향이 있고 그 신호대로 해당 재화를 배분하면 된다. 모든 경제 주체가 시장 경제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역설적으로 간단하기에 복잡하고 이상적이기에 목표 달성이 힘든 것도 사실이다. 완전 경쟁은 아니더라도 시장이 잘 작동하기 위해선 공급·수요자 등 시장 참가자가 많아야 하고 제품의 질도 가능한 한 동질적이어야 한다. 정보의 비대칭성도 큰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제품에도 ‘경합성’과 ‘배제성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경합성은 특정 재화를 차지하기 위한 시장 참가자 간 경쟁을, 배제성은 가격을 지불한 시장 참가자만 특정 재화를 소비하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전제와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시장에 맡기는 것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해 ‘시장의 실패’로 연결될 수 있다.
쿠팡과 코인베이스 상장으로 본 가치주와 성장주 논쟁

코로나19 사태로 시장 경제 대전제 붕괴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 주류 경제학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 이 가정이 무너진다면 자유와 창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 경제에도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시장 실패가 나타나면 국가가 개입하는 정당성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접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얘기를 꺼내는 것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보다 근본적인 곳에서 문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나 정부 모두 자원의 희소성 법칙을 해결하기 위한 주체인 인간은 합리적이어야 하고 제품의 가치와 가격은 일치돼야 한다는 것이 양대 전제다.

시장에서 인간의 합리성은 갖고자 하는 특정 재화의 제품 가치와 가격으로 나타난다. 가치에 합당한 가격, 즉 돈을 지불하면 합리적이고 반대의 경우는 비합리적으로 판단된다. 화폐의 3대 기능인 교환의 매개, 가치 저장, 회계 단위 중 가치 저장 기능이 가장 중시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이 많이 풀리면서 가치 저장 기능이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품의 가치와 가격 간 괴리가 심해졌다. 특정 재화에 돈이 많이 몰려 재화의 가치에 비해 가격이 높게 형성돼 합리적 인간의 전제가 시장에서 깨지고 있다.

게임 이론으로 보면 가치에 비해 돈을 많이 번 기업가(투자자)는 대박을, 돈을 많이 지불한 소비자(투자자)는 쪽박을 찬다. 반대의 경우도 흔하다. 특정 재화의 가치에 비해 가격이 너무 낮게 형성되는 경우다. 수확 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인터넷·모바일 등의 발전으로 증강현실(AR) 시대가 가능해짐에 따라 자원의 공간적 한계가 넓어지고 있다. 경제 주체가 공간적 뉴 프런티어 개척에 나서면서 ‘자원이 유한하다’는 또 하나의 전제가 무너진 것과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상품의 공간도 급격히 무너지는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 콘택트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각국 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만성적 공급 과잉 시대가 다가왔다. 가격 파괴 경쟁이 격화돼 제품 가치와 괴리 현상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모든 제품과 주식이 갖고 있는 가치대로 가격과 주가가 형성돼야 기업인은 창조적 파괴 정신이 고취되고 소비자와 투자자는 합리적 소비 행위와 건전한 투자 문화를 가질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새롭게 다가오는 시장 여건에 맞게 경제 주체의 역할이 조정돼야 시장 경제가 재탄생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 가치주와 성장주 간의 논쟁은 큰 의미가 없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