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안에 대해 법의 원칙과 목적은 같아야 하지만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해석이 갈리기 마련이다. 현행 유언집행제도로 본 법의 본질과 보안점을 정리해봤다.
상속 분쟁에서 유언집행자가 필요했던 이유
서울가정법원에서 판사로 근무할 때 법대에서 경험한 상속사건과 변호사가 돼 일방 당사자를 지원하면서 느끼는 상속사건은 그 결이 다르다. 가령, 이런 사례가 있다. 아들을 편애한 친엄마를 상대로 상속 분쟁을 하는 딸이 있다. 딸은 엄마가 지독하게 아들만 생각했고, 아빠에게 끊임없이 아들을 지원하라고 성화를 부려 아들은 이미 많이 받았다고 주장한다.

엄마가 기여분 청구를 하는 이유도 남은 상속재산 중에서 딸에게 가는 것이 아까워서 자신이 받아 아들에게 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필자가 판사였을 때는 절절한 그 딸의 육성을 들으면서 마음 한편에는 어차피 이 재산은 이미 사망한 아버지의 것이 아닌가. 빚만 남기는 아버지도 많은데 조금이라도 상속받을 재산이 있다면 감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법리에 따라 상속재산을 분할했다.

그런데 변호사가 돼 의뢰인을 대리하다 보니 필자의 생각도 달라졌다. 상담을 할 때의 마음, 소송을 하기로 결심한 때의 마음, 소송 중에 마음이 상해 힘들어하는 모습, 갈등 곡선이 증폭을 멈추고 냉정해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게 되니 도대체 상속의 본질이 무엇인가 궁금해진다.
오빠를 지원하는 문제로 어머니와 많이 다투던 아버지가 어느 날 치매를 앓게 되자 어머니는 마음껏 아버지 재산을 팔거나 인출하면서 아들을 지원했다. 필자를 찾아온 여성은, 여기까지는 그래도 다 참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어차피 그분들의 재산이고 자식들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그런 대로 편안하게 사실 수 있었으며 본인도 부모님 지원 없이도 생활할 수 있으니 그냥 마음을 비웠다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아버지 유언장이라면서 보여준 것은 치매 상태인 아버지가 작성한 자필유언서인데, 그 내용은 모든 재산을 오빠에게 준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은 참기 어렵다면서 소송을 불사하겠다고 찾아온 그 딸은 상담하는 내내 눈물을 꾹 참았는데, 어머니를 상대로 유언무효소송을 해야 되는 결론에 이르자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어머니에 대한 서러움에 펑펑 울었다. 그리고 중간에서 화해를 하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 몰라라 하는 오빠의 뻔뻔스러움을 원망했다.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갔는데 딸이 모두 승소했다. 그런데 소송을 시작하자 오빠와 어머니는 어떻게 감히 우리를 상대로 소를 제기했냐며 동생이자 딸인 이 여성을 모욕했고, 납부해야 할 상속세, 취등록세, 가산세는 자꾸만 커져갔는데 오빠와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을 똑똑한 네가 감당하라면서 상속세 납부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다. 이 딸이 세금부터 납부하자면서 이미 받은 증여는 따지지 않을 테니 서로 법정상속분으로 상속받고 화해하자고 했지만 오빠와 어머니는 결코 응하지 않았다. 딸의 얼굴은 눈에 띄게 상해가다가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후 상속세와 엄청난 가산세를 납부할 수 있게 되자 비로소 조금씩 나아졌다.

주석서에는 상속제도가 인정되는 이유로 피상속인과의 혈연관계의 대가라고 보는 혈연대가설, 피상속인의 의사를 추정해 그 의사에 합치되는 사람에게 상속인의 지위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의사추정설, 피상속인과 공동생활을 하면서 서로 부양하고 함께 재산 형성을 한 사람에게 인정되는 권리라는 공동생활설, 피상속인의 재산에 의지해서 생활해 온 사람의 생활 보장을 위한 것이라는 생활보장설 등이 주장되고 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피상속인의 의사라고 생각한다.

유언집행제도의 필요성
상속은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개시되니 피상속인의 의사는 유언서로 확인할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언집행자에 의해 구현될 수 있다. 민법은, 유언집행자는 유언으로 지정하는 것이 원칙인데, 유언자가 유언으로 유언집행자를 지정하지 않으면 상속인이 유언집행자가 되고, 그 외에 유언집행자가 없으면 법원이 유언집행자를 선임한다고 정하고 있다. 유언집행자 제도는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다. 과연 재산 상속과 관련해 유언자의 진정한 의사는 무엇일까.

얼핏 특정 상속인이 특정 재산을 상속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상속세를 제대로 납부하고, 상속채무가 있다면 변제하고, 상속재산을 상속인들이 원만하게 상속받고 상속 분쟁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속 분쟁을 계속하면서 납부할 세금은 증가하고 상속재산인 부동산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임대에 손해가 발생하는 것을 어느 피상속인이 원하겠는가.

피상속인이 유언집행자를 지정했으면 다행이다. 문제는 지정된 유언집행자가 없어 공동상속인들이 유언집행자가 되면서 발생하는데, 상속인들 사이에 다툼이 생기면 상속재산의 보존과 관리에 위험이 따른다. 이렇게 상속인들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하면 법원이 상속인이나 이해관계인의 신청에 따라 상속재산관리인 또는 유언집행자를 선임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유언이 유효한지, 누가 상속인인지, 그리고 상속분은 어떠한지는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된다.
그리고 법원의 판결이나 결정이 확정될 때까지 상속세를 납부하고 상속재산을 관리해 상속인들에게 손해나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한다면 상속인들의 갈등은 최소한 증폭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형성한 재산이 아니라서, 그리고 어차피 내가 가져갈 수 없는 재산이라는 생각이 들면 상속재산의 보존과 관리에 관심이 없어진다. 이런 상속인을 다독이며 유언자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유언집행자제도를 꿈꿔본다.

법대에서는 그 사건의 해결, 당사자가 소의 제기로 던진 문제에 대해 판결이라는 답을 찾는 것을 주로 생각했다면, 변호사로서 당사자 옆에서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어떤 제도가 도입되면 당사자들이 조금 더 이성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글 배인구 법무법인로고스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