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 당크르 디자인·오렌지색, 에르메스 상징...마구상으로 시작해 애플 워치까지 만들어
[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에르메스 ③
1938년 당시 대서양을 횡단하는 여객선이 많았던 시기에 선보인 샹 당크르 브레이슬릿은 여행으로의 초대를 상징했다. 체인은 그 단순함과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시대상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동시에 디자인은 에르메스 주얼리의 성향을 잘 나타내 주고 팔찌 컬렉션(사진)뿐만 아니라 가죽 제품, 까레 스카프, 홈 디자인 등 다양한 제품의 모티브로 적용됐고 오렌지 색상의 포장과 함께 에르메스 고유의 상징이 됐다.
1920년대 포장 박스는 오렌지색이 아니라 흰 바탕에 금색의 선이 들어간 게 널리 사용됐다. 뒤마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으로 인한 물자의 부족으로 가장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오렌지색 염료를 선택했다. 오렌지 색상은 천연 가죽 색상과도 가장 비슷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에르메스 오렌지 색상의 포장은 또 하나의 에르메스의 상징이 됐다.
5대 에르메스는 로베르 뒤마의 아들 장 루이 뒤마(사진)가 이어 받았다. 그는 1978년부터 에르메스에 점진적인 혁명을 가져왔다. 멀리 내다볼 줄 알았던 그는 세상의 모든 것과 문화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다양한 모습으로 전 세계에 에르메스를 선보였다.

에르메스는 고유한 장인 기술에 기반을 둔 새로운 장인들을 영입해 1978년 완벽한 무브먼트(시계의 동력 장치)와 시계를 생산하기 위해 스위스에 ‘라 몽트르 에르메스(La Montre Hermès)’라는 이름으로 시계를 제작했다. 1976년에는 영국 왕실 신발 제조 업체인 존 로브(John Lobb)와 협력해 신발 제작을 시작했다.
1993년에는 포크와 나이프 등 커트리를 생산하는 오랜 전통을 가진 프랑스 실버 브랜드인 퓌포카(Puiforcat)와 손잡고 금은 세공업을, 1995년에는 크리스털 제조 업체 생루이(Saint-Louis)와도 함께했다. 또 장-루이 뒤마와 배우 겸 가수인 제인 버킨의 만남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 버킨(Birkin)백의 일화는 유명하다.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이 가방은 사실 우연한 만남의 결과물이다. 1984년 당시 에르메스 회장이던 장 루이 뒤마는 런던과 파리를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 제인 버킨을 만났다. 영국 출신의 배우 버킨은 젊은 엄마인 자신이 들고 다닐 만한 토트백이 없다고 뒤마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타고난 크리에이터인 뒤마는 즉각 그녀를 위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들 수 있는, 유연하고 넉넉한 가방을 고안한다. 이 가방은 광택 처리된 컷 아웃 덮개, 두 개의 곡선형 손잡이, 사이드 스트랩, 회전 잠금 걸쇠와 같이 에르메스 디자인의 상징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다.
오늘날 버킨백은 다양한 컬러와 크기, 소재로 제작된다. 버킨백은 모던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졌다. 금속 부품까지 모두 검정색인 버킨 소 블랙(Birkin So Black), 버킨 셀리에(Birkin Sellier)백(사진 ②)은 가방 바깥 가장자리에 새들 스티치가 나타나 보이고 시각적으로 더 구조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또한 새들 스티치의 완성도를 통해 에르메스의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 캔버스 소재로 유연하고 기능적인 버킨 카고(Birkin Cargo) 등 다양한 모델들로 변주돼 왔다. 버킨은 끊임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가방이다.

장 루이 뒤마는 마케팅이나 홍보보다 제품에 장인 정신을 불어넣어 에르메스만의 철학을 표현하려고 노력했고 이런 이유로 다른 명품 브랜드에 비해 광고비가 낮다. 그 대신 각종 문화 행사와 교육 환경,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에르메스 코리아는 한국 장인들의 무형 자산이 후대까지 이어져 한국의 전통 문화유산이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보존될 수 있도록 2015년 7월부터 문화재청과 본격적인 후원 활동을 시작했다. 첫 프로젝트는 덕수궁 복원 사업이다. 고종이 머물렀던 함녕전의 재정비로 궁궐의 옛 생활 문화를 엿 볼 수 있도록 전각의 내부 공간을 정비하고 장인 정신이 깃든 공예품을 재현했다(사진④).

루이비통·디올·펜디·셀린느·지방시 등 60여 개의 명품 브랜드를 갖고 있는 루이비통모헤네시(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경쟁 회사인 에르메스를 이렇게 극찬했다.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면서 뛰어난 품질을 생산하는 브랜드는 거의 남지 않았다. 에르메스는 명품업계의 보석같은 회사다.” 아르노 회장은 몇 년에 걸쳐 에르메스와의 합병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실패했다. 에르메스는 가족 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에르메스는 세계적인 그룹 규모를 자랑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손길이 살아 숨쉬는 회사로 남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차원에서 전통적인 장인 정신의 노하우에 충실하려는 노력을 고수하고 있다.
![에르메스 4대 회장 뒤마, 독창적 디자인으로 ‘베스트 셀러’ 서막[명품 이야기]](https://img.hankyung.com/photo/202106/AD.26520704.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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