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엘앤비, 와인 대중화 이끌며 실적 고공 행진…내부 거래 비율 낮추며 수익성 개선
[비즈니스 포커스]최근 신세계그룹의 행보를 보면 거침이 없다.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업은 과감히 버리고 있다. 삐에로쑈핑과 부츠 등에 이어 최근에는 ‘제주소주’의 사업도 철수한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반대로 전망이 밝거나 잘되는 사업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신세계엘앤비(신세계L&B)가 주축이 돼 진행 중인 오프라인 와인 사업도 그중 하나다.
신세계그룹의 여러 전문점이 부진한 실적으로 문을 닫는 와중에서도 신세계엘앤비는 예외다. 그룹의 지원 아래 대대적인 점포 확장 계획을 밝혀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와인이 소주나 맥주 못지않은 대중적인 ‘주류’로 떠오르면서 신세계엘앤비의 실적이 고공 행진을 이어 가고 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며 신세계그룹의 ‘알짜 계열사’로 거듭나는 모습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이마트의 자회사 신세계엘앤비는 지난해 매출 1454억원을 올렸다고 밝혔다. 전년 동기 대비 약 36%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03억원으로 집계돼 전년(32억원)보다 세 배 이상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다.
한때는 ‘속 빈 강정’ 꼬리표신세계엘앤비는 2008년 설립된 이마트의 자회사다. 애주가로 잘 알려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당시 터무니 없이 바쌌던 와인 가격의 ‘거품을 제거하겠다’며 직접 설립을 지시해 탄생하게 됐다.
법인 설립은 2008년이지만 사업의 방향을 설정하는 등 준비 기간을 거쳐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의 닻을 올렸다. 2013년까지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내걸며 출항했다.
하지만 이후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실적 추이에서도 나타난다. 목표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매출 증가세는 꾸준했다. 그러나 문제는 수익성이었다. 계속해 한 자릿수의 낮은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저조했다.
우선 유통망이 한정적이었다. 당시 내세웠던 사업 방식이 가장 큰 문제였다. 신세계엘앤비는 이마트·신세계백화점·조선호텔 등 그룹 내부 계열사에 와인을 납품하며 덩치를 키우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출범했다.
첫해 사업 계획을 보더라도 이마트에 78%, 백화점에 17%, 조선호텔 등 기타에 5%의 비율로 와인을 공급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실제로 수년 전까지 신세계엘앤비의 ‘내부 거래’ 비율은 매년 90%에 육박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시장 경쟁도 치열했다. 업계에 따르면 와인은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장이 형성됐다. 마니아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며 2008년 금융 위기 때를 제외하고 매년 10%가 넘는 시장 성장률을 기록해 왔다. 신세계엘앤비가 와인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상황을 보면 이처럼 밝은 시장 전망을 눈여겨보고 와인을 주력으로 수입하는 경쟁사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차 많아지는 추세였다.
이에 따라 대대적인 프로모션이나 마케팅도 불가피했다. 내부 계열사라는 한정적인 유통망을 가진 데다 마케팅 등에 큰 지출이 나타나다 보니 자연히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매출은 늘어나는데 실적은 늘 적자이다 보니 ‘일감 몰아주기’, ‘속빈 강정’이라는 꼬리표도 따라붙었다.
결국 신세계엘앤비는 내부적으로 큰 결단을 내렸다. 내부 거래 비율을 낮춰 나가는 것을 새 목표로 삼은 것이다.
주류 전문점을 직접 출점해 운영하기로 결정했고 내부 계열사가 아닌 유통 업체들에까지 영업망을 확대하기로 했다.
‘와인앤모어’ 확대해 와인 수요 잡는다그 결과 신세계엘앤비는 2016년부터 오프라인 주류 전문점 ‘와인앤모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와인앤모어는 상호명에 걸맞게 와인을 주력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일반 마트 등에서는 찾기 어려운 해외의 위스키나 맥주 등을 수입해 함께 판매하는 주류 전문점이다.
수천 개에 육박하는 주류 상품을 갖춘 한국 최대 규모의 주류 전문점이라는 것을 앞세우며 서울 한남동에 첫 문을 열었다. 그리고 꾸준히 점포 수를 확대해 나갔다. 이와 함께 CU·GS25·세븐일레븐 등 외부 편의점 업체들에까지 유통 채널을 넓히며 판매처를 넓혔다.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2017년 신세계엘앤비의 매출은 1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영업이익도 처음으로 두 자릿수(25억원)를 기록했고 90%를 넘겼던 그룹 내 매출 비중은 60%대로 낮아지는 효과를 거뒀다. 여기에 자체적으로 내놓은 상품도 대박을 터뜨렸다. 이마트와 함께 2019년 4900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에 선보인 도스코파스(DOS COPAS)가 대표적이다. 한국의 와인 대중화를 이끈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이 제품을 내놓게 된 과정도 흥미롭다. 기획부터 판매하기까지 철저하게 검증을 거친 제품이다. 우선 해외 와인 제조사에 직접 가격이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와인을 추천받았다.
이렇게 선별한 제품들을 전문가들의 시음을 거쳐 ‘최고의 가성비’ 제품을 선정했고 시중에 출시하게 됐다. 기존에도 5000원 미만의 초저가 와인들이 있었지만 품질이 떨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도스코파스는 출시 직후부터 ‘저렴하면서도 맛이 좋은’ 와인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불티나게 팔렸다. 출시 4개월 만에 초도 물량 100만 병이 완판되기도 했다.
이런 사업 구조를 계속 이어 간 끝에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특수를 톡톡히 누리며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로 ‘홈술’족이 늘어나면서 소주와 맥주 외에도 다양한 술을 찾는 주류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는 와인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이어졌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와인 수입량은 3억3000만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신세계엘앤비 관계자는 “주류 전문점과 외부 유통망 확대 방침이 와인 판매량 증가의 수혜를 누리면서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큰 폭으로 치솟았다”고 설명했다. 올해 전망도 밝다. 와인을 찾는 소비자들이 계속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청의 통계에서도 잘 나타난다. 올해 1분기 와인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5.4% 증가한 1억966만 달러로 집계됐다.
와인 수입액이 1분기에 1억 달러를 웃돈 것은 처음이다. 현재 추세라면 와인 수입량은 올해 또다시 사상 최대치를 경신할 가능성이 유력하다. 신세계엘앤비 역시 여기에 따른 수혜가 예상된다.
신세계엘앤비는 올해 와인앤모어 출점 확대에 더욱 힘을 쏟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까지 와인앤모어 매장은 36개였는데 이미 올해 들어 4개 매장을 새로 오픈했다. 앞으로 약 5개 매장의 문을 새로 열 계획이다.
신세계엘앤비 관계자는 “최근에는 소비자들이 최저가가 아닌 특색 있는 와인에 대한 니즈가 증가하는 추세”라며 “다양한 상품을 갖춘 와인앤모어 출점으로 이런 소비자들을 끌어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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