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축 국가’ 두고 다투는 미·중, 어느 국가에 중점 둬야 할지 큰 고민 필요

[한상춘의 국제경제 심층 분석]
미중 경제 패권 다툼 속 한국이 취해야 할 올바른 스탠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6월 선진 7개국(G7) 정상회담이 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두 회담 모두 ‘비대면’으로 열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대면’으로 열린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최대 성과라고 볼 수 있다. 백신 보급이 빨라져 각국 간 정상회담을 비롯한 국제 관계가 정상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두 회담 모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주도했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출범 후 6개월의 대내외 정책을 총괄적으로 평가화면 ‘백(back)’과 ‘차이나(China)’로 요약된다. 이 두 가지를 앞으로도 더욱 강하게 추진돼 글로벌 경제와 국제 금융 질서에 상당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정부, 훼손된 대외 관계 복원 최우선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 이 강한 첫마디로 시작한 바이든 정부는 올해 초 트럼프 키즈에 의해 의회를 점령 당할 정도로 위기에 몰렸던 민주주의를 복원하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뒀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바이든국’과 ‘트럼프국’으로 양분됐던 미국은 합중국 정신에 기반해 다시 하나로 뭉쳐지는 모습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최악의 상황을 지나고 대내적으로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 기반이 다져지자 트럼프 정부 때 크게 훼손됐던 대외 관계를 복원하기 시작했다. 그 누구보다 외교 경험이 풍부한 바이든 대통령은 G7과 대서양 동맹 등을 통한 유럽 국가와의 관계, 중국에 눌려 있던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를 복원하는 일부터 추진하고 있다. 최종 타깃은 중국이다. 두 정상회담의 개최 배경과 성과도 이 같은 각도에서 평가돼야 한다.
미중 경제 패권 다툼 속 한국이 취해야 할 올바른 스탠스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 국가주석이 개혁·개방을 표방하면서 수출 위주의 외연적 성장 단계를 밟아 왔다. 성과도 컸다. 43년 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의 10%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지난해 미국의 72% 수준으로 성장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이르면 6년 후에는 미국을 추월해 팍스 시니카(중국이 주도하는 세계 평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2차 세계대전 후 팍스 아메리카 시대를 주도해 온 미국을 비롯한 G7 국가와 한국·호주·인도 등이 중국을 견제할 목적으로 머리를 맞대기까지 ‘G섬싱(G-something)’ 체제는 약화돼 왔다. G7을 주축으로 세계 공동의 이익 추구를 표방하더라도 ‘그룹 제로(G0)’로 가는 시대에선 자국의 이익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세계무역기구(WTO)·세계은행·유엔 등과 같은 국제기구의 위상과 합의 사항에 대한 이행력이 떨어지고 위반하더라도 제재가 가해질 때도 이를 지키려는 국가가 많지 않았다. 이에 따라 국제기구 축소론과 역할 재조정론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바이든 정부 시대에 예상되는 세계 경제 질서는 △미국과 중국이 상호 공존하는 ‘차이메리카’ △미국과 중국이 경제 패권을 놓고 대립하는 ‘신냉전 2.0’ △지역 혹은 국가별로 분화하는 분권화 △모두 조화하는 다자주의 △무정부 상태인 ‘서브 제로(sub zero)’ 등 다섯 가지 시나리오로 상정해 볼 수 있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미국과 중국 간 이해관계에 따른 ‘차이메리카’와 ‘신냉전 2.0’이 반복되는 커다란 줄기 속에서 다른 국가가 자국 문제 해결에 우선순위를 두는 ‘중층적 분권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세계 경제 질서는 G7 국가를 주축으로 구축된 글로벌 스탠더드가 통하지 않으면서 미래 예측까지 어려운 ‘뉴 앱노멀 젤리형’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뉴 앱노멀 젤리형 세계 경제 질서는 종전의 스탠더드와 거버넌스에 있던 한계에서 비롯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스탠더드와 지배 구조를 주도해 왔던 미국과 유럽에서 각각 금융 위기와 재정 위기가 발생했고 동시다발적으로 직면한 코로나19 사태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보면서 주도국의 위상과 신뢰가 급격히 떨어졌다.
미중 경제 패권 다툼 속 한국이 취해야 할 올바른 스탠스
·중 경제 다툼에 올바른 스탠스 취해야 하는 한국

G0 시대에서는 어느 국가가 지속 성장해 경제 발전 단계를 높일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다. 뉴 밀레니엄 시대 이후 G7 외에 새로운 중심국으로 부각될 것으로 기대됐던 곳은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다. 이들 국가가 공통적으로 가진 장점인 인구와 부존자원 외에 다른 성장 요인이 있어야 주도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 월트 로스토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교수가 주장했던 ‘제2의 도약론’이다.

새롭게 거론되는 성장 요인 중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디지털 콘택트 추세가 앞당겨지면서 초연결 사회를 선도하는 곳이 ‘중심축 국가(pivot state)’로 떠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중론이다. 중심축 국가는 특정 국가에 의존하기보다 여러 국가와 서로 이익이 될 수 있는 관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나라를 말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올해 양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자회의)를 계기로 내수 위주의 ‘쌍순환’ 전략과 세계 가치 사슬(GVC)의 중심지를 더 강화하는 ‘홍색 공급망’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 중국 중심의 네트워크 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바이든 정부는 바이오·배터리·반도체 등 이른바 ‘BBS’로 불리는 핵심 산업의 가치 사슬 중심지를 미국에 둔다. 양국의 경제 정책은 중심축 국가로 성장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이다.

디지털 콘택트 초연결 시대에서 미·중 마찰은 ‘디지털 통화 전쟁’ 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미국보다 앞서 지난해 5월부터 디지털 위안화를 시범 운용해 왔던 중국은 2022년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직전까지 완전히 정착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양회로 시진핑 주석은 앞으로 디지털 위안화를 새로운 기축 통화로 구축하려는 야망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민간 권력이 국가 권력까지 넘보는 것을 견제할 목적으로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을 불허한 트럼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유보적인 방침을 취했던 미국도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한 달 만에 양대 경제 수장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중앙은행(Fed) 의장이 연이어 ‘디지털 달러화’ 도입 방침을 밝혔다.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국면에 몰려서다.

기축 통화국인 미국이 더 이상 달러 패권을 누리지 못하면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했던 달러화 보유 구속, 즉 ‘달러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러면 보유 달러화가 대거 출회되면서 달러 가치가 추가적으로 떨어지는 악순환 국면에 몰릴 수 있다.

디지털 위안화가 정착되면 디지털 달러화와 또 다른 형태의 기축 통화 전쟁이 앞당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진핑 체제 출범 후 중국은 일대일로(신 실크로드 전략 구상) 계획과 IMF의 특별인출권(SDR) 편입,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 등으로 위안화 국제화 과제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국제 금융 시장에서 자국의 위상에 걸맞은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금융 마찰로 초점이 이동된 미·중 경제 패권 다툼은 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심화되는 양상이다. 양국의 다툼은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간자 자리에 있는 한국으로서는 어느 한쪽에 치우친다면 더 불리해지는 만큼 현 정부 들어 중국에 치우쳤던 대외 경제 정책상의 우선순위를 조정해 하루빨리 균형을 찾아야 한다.

바이든‧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전개될 새로운 미·중 마찰 시대에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의 앞날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심축 사회에서 더 거세질 양국의 네트워크 가담 요구에 어느 편에 설 것인가’와 ‘앞으로 전개될 디지털 통화 전쟁에 디지털 원화의 위상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만큼 중요한 과제는 없다.

한상춘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