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세계화 외치며 2010년 론칭…국내외에서 고속 성장 이뤄내

[스페셜 리포트]
“‘비비고’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겠다.” CJ제일제당이 2010년 비비고 브랜드를 처음 론칭하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당시 밝혔던 각오다. 이후 약 10년이 지난 현재 이 목표는 점차 현실화되는 모습이다. 비비고 브랜드의 비약적인 성장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비비고는 현재 연간 국내외에서 매출 약 2조원대를 올리는 ‘메가 브랜드’로 성장했다. 식품 브랜드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10여 년 동안 고속 성장을 이어 온 비비고의 성공 비결을 짚어 봤다.
매출 2조 ‘메가 브랜드’ 된 비비고…10년 초고속 성장 비결
지난해 CJ제일제당의 전체 식품 매출은 약 9조원으로 집계됐다. 그중 비비고 브랜드에서만 2조원에 달하는 매출이 발생했다. ‘실적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셈이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비비고의 해외 성과다. 글로벌 시장의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 지난해에는 비비고의 전체 매출 중 약 3분의 1을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비비고의 브랜드 가치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해외 시장에서 높은 인지도는 향후 비비고가 더욱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 갈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여기에는 비비고가 가진 독특한 브랜드 전략이 자리한다.

비비고는 태생부터 남달랐다. 처음부터 ‘한식 세계화’를 목표로 글로벌 시장 공략에 초점을 맞추고 탄생한 브랜드다. 이 점이 해외 시장에서 빠르게 외연을 넓히며 성공 스토리를 써낸 배경으로 꼽힌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참신한 전략과 빠른 사업 방향 수정으로 해외 시장에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다.
빠른 전략 수정으로 해외 시장 개척
당초 비비고가 내세운 해외 사업 모델은 지금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현재 비비고는 냉동 만두 등 가정 간편식(HMR)을 통해 해외 내식 사업 공략에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브랜드 론칭 초기만 하더라도 해외 시장에서 내식 사업과 외식 사업을 함께 펼치겠다는 전략으로 돛을 올렸다. 내식 사업은 한식 중에서도 해외에서도 통할 만한 만두·김치·김 등을 앞세워 비비고 브랜드를 내걸고 판매를 시작했다.

외식 사업은 비비고의 간판을 내걸고 비빔밥과 같은 한식을 전문으로 하는 패스트푸드점 출점을 개시했다. 세계 곳곳에 1000개의 매장을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중국과 미국 등에 비비고 레스토랑을 오픈했는데 반응도 좋아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이내 곧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예상했던 것만큼 외식 사업의 효율이 높지 않았다. 점포를 늘릴 때마다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입점 장소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 내부 인테리어, 직원 고용 등이 필요하다 보니 확장 속도가 더뎠다. 또 세계 각국마다 다른 식품위생법도 점포 확장의 걸림돌이었다.

결국 과감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바로 사업 방향의 수정이다. 비비고 브랜드의 외연을 신속하게 확장하고 수익을 내기 위해 외식 사업을 접고 내식 사업에만 주력하기로 결정했다. 점포 개설에 쏟았던 노력과 비용을 미국·중국·유럽 등에 현지 생산 기지를 늘리는 데 투입했고 현지 대형마트 입점 등 유통 판로 확대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 과정에서 ‘선택과 집중’도 돋보였다. 글로벌 시장 공략을 위한 주력 상품을 정한 것이다. 여러 한식 제품들 중에서 CJ제일제당이 선택한 상품은 ‘만두’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만두가 다양한 국가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품목이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이 미국 내에서 판매 중인 아시안푸드 브랜드. 이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제품은 비비고 만두다. 비비고 만두는 미국 시장에서 지난해 4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CJ제일제당이 미국 내에서 판매 중인 아시안푸드 브랜드. 이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제품은 비비고 만두다. 비비고 만두는 미국 시장에서 지난해 4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
만두는 고기와 채소 등으로 다진 만두소를 밀가루로 만든 피에 싸먹는 음식이다. 멕시코의 전통 음식인 타코, 일본의 교자 등 많은 국가에서 비슷한 형태의 음식이 존재한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한국에서만 먹는 김치·고추장과는 다르게 만두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익숙하게 먹을 수 있는 맛과 형태를 가진 음식이다. CJ는 이런 부분을 노렸다”고 설명했다.

전략은 맞아떨어졌다. 현재 비비고 만두는 해외 시장 성공의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CJ제일제당에 따르면 지난해 비비고 만두의 해외 매출은 약 6700억원을 기록했다. 비비고의 해외 매출 대부분이 현재 만두에서 나오고 있다는 설명이다.

무턱대고 만두를 판매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국가별로 가진 식문화와 소비 트렌드를 고려해 시장에 진입하는 ‘현지화 전략’을 세웠던 부분도 주효했다.

특히 CJ가 한식 세계화를 위한 ‘교두보’로 삼고 있는 미국 시장은 상품 발매 초기부터 가장 심혈을 기울인 국가다. 세계 식품 시장의 중심으로 불리는 미국에서 인정받아야 빠르게 세계 시장의 영토를 넓힐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만두 상품 출시 초기인 2011년 말부터 대형마트인 코스트코에 진입해 메인스트림 시장을 공략했다. 제품도 차별화했다. 돼지고기 대신 미국인이 좋아하는 닭고기를 사용했고 미국에서 선호도가 높은 고수를 넣은 만두도 생산해 판매했다.

마케팅에도 각별한 노력을 쏟았다. 뉴욕에서 ‘비비고 팝업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세계 유명 선수들이 참여하는 골프 대회 ‘더CJ컵’ , 초대형 케이팝 콘서트 행사인 ‘KCON’ 등에 비비고 제품을 꾸준히 후원하고 광고하며 인지도를 높여갔다.
CJ제일제당이 지난해 비비고 브랜드 제품을 알기 위해 뉴욕에서 진행한 팝업 스토어. 적극적인 현지 마케팅 역시 비비고의 성공 비결로 꼽힌다.
CJ제일제당이 지난해 비비고 브랜드 제품을 알기 위해 뉴욕에서 진행한 팝업 스토어. 적극적인 현지 마케팅 역시 비비고의 성공 비결로 꼽힌다.
결과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 비비고 만두는 미국 시장에서 론칭 약 5년 만인 2016년 만두 시장 1위를 차지했다. 25년간 부동의 1위를 지켜 오던 중국 만두 브랜드 ‘링링’을 누르고 얻은 성과여서 더욱 값지다. 현재도 계속해 1위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지난해 비비고 만두의 미국 매출은 무려 4000억원을 돌파했다.

중국에서는 2012년부터 광둥성 공장에서 ‘비비고 만두’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출시 초반에는 쉽지 않았다. 이미 경쟁사들이 많았고 다소 비싼 가격과 낮은 브랜드 파워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비비고 배추 왕교자’ 등 현지화된 제품을 중심으로 만두피부터 만두소까지 신선하면서도 맛있고 다양한 조리가 가능한 ‘한국식 만두’라는 점을 집중적으로 알렸다. 이런 노력 끝에 2015년부터 가파른 매출 상승이 나타났다. 작년에는 중국의 온라인쇼핑몰 징둥닷컴의 만두 판매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식에 대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유럽에서는 아시아 식문화 수용도가 높은 영국·프랑스·독일을 중심으로 유통 채널을 확대하는 전략을 펼쳤다. 현재 유럽 전역의 대형 유통 채널 800여 점과 코스트코 전 매장(34개 점포)에 진출하며 만두 제품을 판매 중이다. 최근 3년간 영국·프랑스·독일 등 3개국에서 연평균 60%가 넘는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매출 2조 ‘메가 브랜드’ 된 비비고…10년 초고속 성장 비결
매출 2조 ‘메가 브랜드’ 된 비비고…10년 초고속 성장 비결
‘참신한 제품’ 앞세워 한국 시장 접수해외 공략을 위해 만들어진 비비고는 2013년부터 한국 시장에도 발을 내디디며 공략에 나서기 시작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브랜드의 영향력 강화다. 해외 시장 공략은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확장성이 더딜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오래 기간 동안 식품업계의 ‘최강자’로 군림해 온 CJ제일제당의 ‘네임 밸류’가 있는 만큼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하더라도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한국에서 비비고 브랜드를 론칭해 경쟁력을 한층 끌어올리면 자연히 해외 시장에서의 인지도까지 함께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돼 내린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둘째는 내수 시장을 ‘테스트 베드’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한식에 대해 소비자들로부터 냉정한 평가를 받은 뒤 만두의 뒤를 잇는 제품들을 수출하겠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이렇게 한국 시장에 론칭한 비비고는 이후 다양한 제품들을 쏟아내며 무서운 기세로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현재 비비고의 한국 시장 매출은 약 1조3000억원으로 추정된다.

소비자 니즈를 철저하게 분석한 뒤 기존에 없던 혁신 제품들을 선보인 것이 먹혀들었다는 분석이다. 만두와 죽, 국물 요리 등이 대표 격이다.

우선 만두는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활용했던 방식을 한국에서도 고스란히 적용해 첫 제품을 2013년 내놓았다. 한국의 냉동 만두 시장은 해태의 고향만두가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용물을 잘게 다진 뒤 빚어 만든 제품들이 주를 이뤘다.

비비고는 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돼지고기·부추·대파 등 채소를 크게 썰어 소비자들이 어떤 재료가 들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식감을 가진 냉동 만두 ‘비비고 왕교자’를 선보였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처음 맛보는 냉동 만두 맛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비비고 만두는 출시 약 1년 만인 2014년 점유율 40%를 넘기며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죽도 마찬가지다. 동원F&B가 용기에 담긴 양반죽으로 30년 넘게 평정한 죽 시장에 2018년 뛰어들었다. 새로운 맛과 모양의 ‘파우치 죽’을 통해서다. CJ제일제당은 죽 시장이 30년간 큰 변동 없이 유지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매출 2조 ‘메가 브랜드’ 된 비비고…10년 초고속 성장 비결
1위에 대적할 경쟁사가 전무한 상태다 보니 제품의 다양성이나 맛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파우치에 담아 간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서 다양한 맛을 가진 제품을 출시했고 현재 시장 1위를 넘볼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양반죽(41.9%)과 비비고죽(39.1%)의 시장점유율 격차는 2.8%포인트에 불과하다.

‘비비고 국물 요리’도 빼놓을 수 없다. 건더기 없이 국물만 담아 팔던 이 시장에 처음으로 ‘건더기’ 있는 제품을 선보인 브랜드가 바로 비비고다. 2016년 육개장을 시작으로 갈비탕·미역국 등 여러 제품들을 순차적으로 선보이며 시장을 개척하고 선점했다. 지난해 비비고 국물 요리는 매출 2000억원을 넘어섰다.
건더기를 가득 넣어 차별화 한 비비고 국물 요리는 지난해 매출 2000억원을 넘어섰다.
건더기를 가득 넣어 차별화 한 비비고 국물 요리는 지난해 매출 2000억원을 넘어섰다.
제품력의 비결은 ‘R&D’ 투자
연구·개발(R&D)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는 비비고가 다양한 혁신 제품들로 시장을 장악해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비비고 국물 요리만 하더라도 오랜 기간 쌓아 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건더기의 식감을 잘 살려 제품화 할 수 있었다.

파우치 형태의 비비고 죽도 보기엔 간단해 보이지만 고도의 기술력을 요구한다. 쌀 가공 분야와 상온 가정 간편식 전문가들로 꾸려진 ‘비비고죽 연구개발팀’을 결성한 끝에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연구개발팀은 살균, 원물 전처리, 육수 기술 등을 집중 연구해 원재료 맛과 차별화된 식감을 살린 파우치 죽을 완성할 수 있었다.

CJ제일제당은 한국 식품 기업 가운데 매년 R&D에 가장 큰 돈을 쏟아부으며 이 같은 기술력을 쌓아 올릴 수 있었다. 예컨대 2017년에는 약 4800억원을 투자해 한국 최대 규모의 식품·바이오 융·복합연구소인 CJ블로썸파크를 개관했다. CJ블로썸파크에는 700여 명의 연구원들이 근무하며 R&D에 몰입 중이다. 지난해만 놓고 보면 약 1000억원 정도를 R&D에 투자했다.

현재 CJ제일제당은 R&D의 방향은 ‘넥스트 비비고 만두’를 개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한국 시장 못지않게 글로벌 시장의 식품 산업 트렌드를 면밀히 분석하기 시작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해외에서의 매출을 더욱 끌어올리기 위해 비비고 만두의 뒤를 이를 후속작을 선보이기 위한 과정이 한창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비비고 브랜드를 바라보는 전망은 밝다.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한 해외에서 앞으로 성장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 시장은 CJ제일제당이 2019년 무려 2조원을 들여 인수한 슈완스컴퍼니(이하 슈완스)와의 시너지가 시간이 흐를수록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CJ제일제당과 슈완스는 지난해 유통망 통합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3만 개 이상 점포에 비비고를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가 계속 성장하는 것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방탄소년단(BTS) 등의 인기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와 음식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면서 “한식에 대해 관심이 없었던 과거와 달리 가파른 성장이 가능한 기반이 갖춰져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비비고는 론칭할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해 만든 식품 브랜드다. 그리고 비비고 만두를 성공시켰다. 이런 저력을 앞세워 다양한 히트 상품 라인업을 만들어 나간다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의 브랜드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