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환 필요하면 저작재산권자 허락 없이도 ‘역분석’ 가능해

[지식재산권 산책]
프로그램 호환 정보도 저작권으로 보호될까 [문진구의 지식재산권 산책]
저작물을 구성하는 모든 것이 보호를 받는 것은 아니다. ‘창작적인 표현’만이 보호되고 아이디어 등은 원칙적으로 보호 대상이 아니다. 참고로 미국 저작권법은 아이디어, 절차, 프로세스, 시스템, 작동 방법, 콘셉트, 원리 또는 발견 등에 대해선 저작권의 보호가 미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저작권법에 따르면 컴퓨터 프로그램은 저작물에 포함된다. 컴퓨터 프로그램은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해 미리 짜 놓은 체계라고 할 수 있는데, 컴퓨터 프로그램 하나가 독자적으로 그 일을 수행할 수는 없다. 하드웨어 및 다른 컴퓨터 프로그램과 협업해야 한다. 그래서 ‘호환성’이 필수다. 그렇다면 컴퓨터 프로그램의 호환성은 저작권법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컴퓨터 프로그램의 하나인 게임과 관련한 흥미로운 사례 하나를 살펴보자.
미국 법원도 역분석은 ‘공정 이용’ 판단과거 게임 회사인 ‘세가(SEGA)’는 콘솔 게임기 업체 ‘제네시스’와 ‘제네시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여러 게임을 출시했다. 세가는 독립 게임 개발자에게 라이선스를 부여해 ‘제네시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게임을 출시하도록 하기도 했다.

독립 게임 개발자인 ‘애콜레이드(ACCOLADE)’는 이런 라이선스의 취득을 검토했지만 세가가 오로지 제네시스용으로만 게임을 출시해야 한다는 독점 조건을 내걸자 라이선스 취득을 포기했다.

하지만 애콜레이드가 제네시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게임의 출시마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애콜레이드는 먼저 세가의 게임을 역분석(reverse engineering)한 뒤 제네시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조건, 이른바 ‘호환 조건’이 무엇인지 찾아냈다. 그 과정에서 애콜레이드는 컴퓨터가 읽을 수 있는 목적 코드(object code)를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소스 코드(source code)로 변환했고 세가 게임 전체를 복제했다.

그다음 애콜레이드는 그 호환 조건을 기초로 제네시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게임을 개발해 출시했다. 그 게임 중에는 기존에 매킨토시나 IBM 컴퓨터를 위해 개발한 게임을 제네시스용으로 변환한 것도 있었다.

세가는 애콜레이드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애콜레이드는 호환 조건을 찾기 위해 역분석하는 행위는 미국 저작권법 107의 ‘공정 이용(fair use)’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호환 조건은 저작권의 보호가 미치지 않는 부분이라고 판단했고 그 호환 조건을 찾는 유일한 방법이 역분석이므로 공정 이용이 맞다고 결론 내렸다.

법원은 애콜레이드가 상업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만 역분석 자체는 호환 조건을 알아내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상업적 목적과는 직접적인 관련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그리고 애콜레이드가 호환 조건을 알아냄에 따라 제네시스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게임의 수가 늘어나는 사회적 이익이 있다고 판단했다. 보다 많은 창작물이 나오는 것이므로 저작권법이 추구하는 방향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또 법원은 애콜레이드가 제네시스용 게임 시장에 진입했다는 것만으로는 세가의 시장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애콜레이드의 게임은 세가의 게임과는 다르고 제네시스용 게임 시장에서 정당한 경쟁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게임 유저들은 통상 하나 이상의 게임을 구매하므로 애콜레이드의 게임을 샀다고 세가의 게임을 사지 않는 관계도 아니라고 밝혔다.

만약 한국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면 어떻게 됐을까. 저작권법에는 ‘정당한 권한에 의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자 또는 그의 허락을 받은 자는 호환에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없고 그 획득이 불가피하다면 해당 프로그램의 호환에 필요한 부분에 한해 프로그램의 저작재산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프로그램 코드 역분석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진구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