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인도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셧다운 사태…가전·스마트폰 등 생산 기지 타격 불가피

[비즈니스 포커스]
멈춰 선 신남방 국가들…글로벌 공급망 비상
세계의 공장이자 한국의 주요 교역 국가인 아세안과 인도 등 신남방 국가들이 멈춰 서고 있다. 베트남·미얀마·태국·인도네시아 등 아세안 주요 국가와 인도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과 델타변이 확산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며 지역 간 이동을 제한하고 공장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중국에 이어 세계 공장 역할을 해 온 아세안과 인도의 ‘일시 정지’는 글로벌 기업의 생산 라인마저 멈춰 세웠다. 글로벌 공급망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조업 제한에 한 달째 배송 지연

8월 초 모 홈쇼핑에서 삼성전자의 세탁기와 건조기 세트를 구매한 A 씨는 한 달 가까이 물건을 받지 못하고 있다. 유통 업체에 문의하자 “코로나19 사태로 현지 생산에 차질이 생겨 배송이 늦어지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같은 제조사 TV를 주문한 B 씨도 배송 지연 안내를 받았다. 그는 9월 중순 이후에나 배송될 것이란 안내에 취소를 고려하고 있다.

베트남 현지 상황이 악화된 것은 지난 7월부터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베트남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는 8월 25일 기준으로 36만9267명을 기록했다. 하루 확진자 수는 1만 명을 넘어섰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코로나19 확산을 억제하며 사망자 수가 두 자릿수에 머물렀던 베트남은 8월 25일 불과 두 달 새 1만811명의 사망자 수를 기록했다.

베트남 정부는 즉각 문을 걸어 잠갔다. 코로나19 확산 제어를 통한 경제 정상화를 위해 지난 7월부터 고강도 방역 지침을 시행했다. 남부 생산 기업은 일부 기업을 제외하고 조업을 중단시켰고 공장 가동을 위한 필수 인력은 공장에서 합숙 생활을 하며 외출을 제한했다. 도로 통제와 검문소 설치 등으로 지역 간 이동 역시 제한했다. 물류 운송이 지체됨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관계자는 “베트남 정부의 고강도 방역 지침으로 주요 도로에 검문소를 설치, 화물차 운전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실시함에 따라 운송 시간이 기존보다 2~3배 더 소요되고 있다”며 “일부 지역에서는 외부 유입 물자를 원천 차단해 화물 운송에 큰 애로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이 몰려 있는 베트남 호찌민시는 9월 15일까지 외출 금지를 전면 강화했다. 호찌민에 거주하는 C 씨는 “8월 23일부터 2주간 외출 금지령을 받았다”며 “8월 중순까지 오후 6시 이후에는 통행 금지, 주중에는 마트 방문 가능 등 일상생활이 일부 가능했지만 현재는 그마저도 기약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려 2개월의 록다운에 베트남에 생산 기지를 의존한 글로벌 기업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중국에 이어 ‘세계 공장’ 역할을 해 온 베트남이다. 특히 의류·신발·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피해가 막심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베트남 섬유의복협회를 인용해 “베트남 의류와 섬유 공장의 30% 이상이 최근 폐쇄됐다”고 보도했다. 제품의 28%를 베트남 공장에서 생산하는 독일의 패션 브랜드 아디다스는 “7월 중순 이후 베트남 공장 대부분이 생산 차질을 빚고 있다”며 “올 하반기 6억 달러 정도의 매출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미국 제조사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긴 마찬가지다. 베트남은 미국에 의류·신발·여행 제품을 공급하는 전 세계에서 둘째로 큰 국가로, 베트남은 미국 전체 수입 물량의 20%를 차지한다. 이에 8월 초 미국 의류신발협회(AAFA)는 미국과 베트남 정부를 대상으로 ‘아디다스·갭 등을 포함한 주요 공급 업체에 백신 접종을 신속하게 추진해 달라’고 서신을 보냈다. 스티브 라마 AAFA 대표는 “미국 의류·신발 산업의 성공은 전 세계의 공급망과 직결돼 있고 그중에는 베트남에 소재한 기업들이 다수 포함된다”며 “베트남 공급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이 중요하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도 상황이 심각해지자 화이자 백신 100만 회분을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8월 25일 베트남을 방문하며 내린 결정이었다.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베트남 법인.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타격, LG전자 반사이익?

한국 기업들도 베트남 공급망 문제의 중심에 서 있다. 특히 베트남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는 가전업계의 피해가 크다. 삼성전자는 코로나19의 재확산 여파로 최근 글로벌 TV 생산의 전초 기지인 베트남 호찌민시 가전 공장의 가동률이 40% 밑으로 떨어지는 등 일부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이미 삼성전자의 매출에도 일부 타격을 입었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TV 판매량은 올해 2분기 총 941만 대로, 작년 2분기(862만 대)보다 늘었지만 올해 1분기(1161만 대)보다는 220만 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LG전자도 2분기 출하량이 총 628만 대로, 작년 2분기(446만 대)보다 크게 증가했지만 올해 1분기(728만 대)보다는 100만 대 정도 줄었다. 앞으로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3분기에는 더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베트남 호찌민 공장은 삼성전자 가전 사업의 핵심 생산 기지다. 공장 면적은 70만㎡(21만1750평)로 한국 가전 생산 공장인 광주사업장(69만㎡)보다 크다. 직원 수는 7000여 명이고 연간 1900만 대의 TV·세탁기·냉장고·청소기 등 생활 가전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사업 보고서 기준 호찌민 생산 법인의 연간 매출액은 6조2731만원으로, 호찌민 공장이 멈춘다면 하루 손실액은 대략 171억원에 달할 것이란 게 업계의 추산이다. 삼성전자는 다른 글로벌 생산 법인을 활용해 공급 지연 대책을 마련할 방안이다.

베트남 북부 하이퐁시에 공장을 마련한 LG전자는 한결 나은 상황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남부와 거리가 떨어져 있어 공장 가동에는 아직까지 큰 문제가 없다. LG전자는 2015년 준공한 하이퐁 공장에서 세탁기 등 생활 가전과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고 있고 현지 직원 수는 2000명에 달한다. LG디스플레이는 직원 2만 명, LG이노텍은 1500명을 각각 두고 있다.

업계에선 LG의 반사 이익도 기대하는 중이다. 이규하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LG이노텍의 북미 고객사 경쟁사인 샤프가 베트남 호찌민 근처에 공장이 있어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며 “반면 LG이노텍은 센서 시프트 관련 모듈을 차질없이 생산 중이고 베트남에서도 비교적 코로나19의 영향이 작은 하이퐁에 공장이 들어서 있어 샤프의 점유율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이 기대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는 최근 고강도 방역 지침으로 일부 지역에서 산발적 감염 사례가 발생할 수는 있지만 향후 2개월 이내에 코로나19 상황이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 상황이 녹록하지만은 않다. 우선 백신 수급 문제다. 옥스퍼드대 산하 통계 사이트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베트남에서 아스트라제네카·모더나·시노팜 백신을 한 차례 이상 접종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16%에 불과하다. 2차 접종률은 3%에 불과하다.

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미얀마 역시 상황은 대동소이하거나 더욱 심각하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에 따르면 아세안(ASEAN) 10개국 중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2억7000만 명의 인구를 지닌 인도네시아로 400만 명을 넘어섰다. 하루 신규 확진자 수는 2만 명에 가깝다. 태국 역시 공장 지역이 델타 변이 확산의 위험 시설로 주목받으면서 태국 내 6만여 개 공장은 노동자 감염에 대비해 생산을 줄이고 노동자를 격리하기 위한 긴급 계획을 마련하는 등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의 잇단 셧다운 소식에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위기감도 감돌고 있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는 한경비즈니스 기고에서 “델타 변이의 확산에 따라 동남아 전역의 공장이 생산을 줄이고 폐쇄에 대비하면서 글로벌 무역은 물론 한국의 무역에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며 “‘신남방 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코로나19의 상황에서는 그 방향성을 점검하고 새로운 정책 과제와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특히 단순한 경제 협력에서 벗어나 델타 변이의 확산을 억제하는 것이 당면 과제인 동남아 국가와 보건 분야의 협력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