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원·네이버 등 대기업까지 ‘고기 배송’ 시장 군침

[비즈니스 포커스]
정육각은 축산물 유통구조를 줄여 신선한 고기를 저렴한 값에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정육각
정육각은 축산물 유통구조를 줄여 신선한 고기를 저렴한 값에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사진=정육각
동원그룹 식품 계열사인 동원홈푸드는 8월 초 온·오프라인 연계(O2O) 플랫폼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미트큐(meat Q) 딜리버리’라는 이름의 애플리케이션(앱) 출시를 통해서다. 미트큐 딜리버리는 주변 맛집의 음식들을 빠르게 배달해 주는 ‘배달의 민족’의 정육점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앱을 설치하고 주소지를 등록하면 인근에 있는 정육점들의 리스트가 화면에 뜬다. 이들 중 원하는 정육점을 선택해 원하는 고기의 부위와 중량을 주문하고 결제까지 간편하게 진행할 수 있다. 미트큐 딜리버리의 가맹 정육점은 고객의 주문이 접수되는 동시에 고기를 썰어 보랭 팩에 포장한다. 최적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포장된 고기를 최대 1시간 이내에 고객이 원하는 장소로 가져다준다.

오직 고기만을 배달해 주는 ‘정육 배송 시장’이 최근 뜨거워지고 있다. 동원홈푸드처럼 신선하고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빠르게 전달해 주는 것을 ‘무기’로 들고나와 소비자들의 밥상을 공략하고 나선 기업들이 많아졌다. ‘온라인 정육점’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밥 대신 고기…지속 성장 중인 정육 시장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정육 배송 시장이 각광받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첫째는 한국인의 ‘고기 사랑’ 자체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육류는 한국인의 주식으로 자리매김했다. 한우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육류(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 1인당 소비량은 54.3kg으로 집계됐다. 쌀 소비량(57.7kg)의 94% 수준까지 근접했다. 지금의 추세라면 내년에는 처음으로 육류 소비량이 쌀 소비량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자체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는 소비자들의 육류 구매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계청이 9월 발표한 ‘7월 온라인 쇼핑 동향’을 보면 육류의 온라인 판매 수치를 가늠할 수 있는 농축수산물의 거래액이 약 6240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30% 정도 늘었다.

팬데믹(세계적 유행)이 장기화되면서 고기나 과일 채소 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구매하는 이들이 크게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동원홈푸드 역시 이런 배경에 따라 이번에 미트큐 딜리버리 앱을 론칭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동원홈푸드 관계자는 “기존의 이커머스 기업들은 배송 시간이 하루 정도 소요되는 만큼 신선도 측면에서 정육점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고 다양한 부위의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점도 육류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앱 출시를 결정한 이유”라고 말했다.

미트큐 딜리버리는 앱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입점한 정육점 수는 30여 곳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서비스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지역이 많다.

단, 동원홈푸드는 이런 문제가 빠르게 해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축산물 유통 사업을 전문으로하는 금천미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천미트는 정육점이나 식자재 마트 등 B2B를 대상으로 고기를 납품한다.

이미 전국에 있는 수많은 정육점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금천미트를 앞세워 정육점 점주들을 설득해 나가며 미트큐 딜리버리에 입점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배송은 배달 대행 전문 업체인 바로고와 계약해 진행하기로 했다.

동원홈푸드 관계자는 “정육점 소상공인들의 판로 개척과 비대면 소비자 확대를 위해 배달 가능 정육점을 전국으로 점차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신선도와 다양성으로 승부이커머스 최강자인 네이버도 정육 배송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 이목을 집중시킨다. 축산물 전문 온라인 유통 플랫폼인 정육각에 최근 100억원의 투자를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장하는 회사의 지분을 사들인 뒤 나중에 되팔아 시세 차익을 노리는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한 것이 아니다. 향후 경영권 확보까지 염두에 둔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해 더욱 눈길을 끈다.

정육각은 온라인에서 소비자들이 이른바 ‘초신선 축산물’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에 빠르게 구매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2016년 첫 서비스를 시작한 이후 ‘좋은 고기를 파는 온라인 정육점’으로 빠르게 입소문을 타며 성장을 이어 갔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가 ‘아기 유니콘’으로 선정했을 정도로 축산업계에서 주목받는 스타트업으로 떠올랐다.

통상적으로 돼지고기와 같은 축산물의 유통 구조는 ‘농장-도축장-육가공 공장(발골)-도매 시장-세절(세부 손질) 공장-소매점’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소비자에게 판매된다. 정육각은 이런 복잡한 구조를 ‘농장-도축장-육가공 공장-정육각’으로 대폭 간소화해 신선한 고기를 싼값에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비결은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기술의 활용이다. 정육각 공장에선 AI가 모든 작업 지시를 내린다. 예컨대 AI가 하루 주문량을 예측하면 여기에 맞춰 이제 막 도축한 고기를 썰어 포장을 준비한다.

또 AI가 전국 각지에서 주문한 소비자들에게 가장 빨리 상품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실시간으로 계산해 찾아줘 제공해 준다. 정육각 관계자는 “이런 시스템을 탑재한 덕분에 도축 후 소비자 식탁에 오르기까지 최소 1주일에서 길게는 한 달 넘게 걸리던 시간을 4일 이내로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빠른 배송도 강점이다. 쿠팡이나 배민처럼 일반인들이 누구나 라이더로 참여 가능한 ‘정육각 런즈’라는 이름의 배송 시스템도 운영 중이다. 매일 낮 12시 전에 주문한 상품은 오후 7시 전에 배송을 완료해 준다. 아침에 주문한 신선한 고기를 저녁에 먹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정육 배송 시장 경쟁은 앞으로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몇몇 대기업들이 육류 배송을 전문으로 하는 플랫폼 구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시장이 ‘개화’ 단계인 만큼 이를 업으로 삼아 도전장을 내민 스타트업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인터뷰
이종근 육그램 대표
“고기 온라인 구매 장벽 빠르게 허물어져”
정육 시장으로 옮겨 붙은 ‘배달의 전쟁’
축산 유통 스타트업 육그램도 ‘정육 배송 시장’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스타트업 중 한 곳이다. 최고급 한우를 엄선해 판매하는 온라인 부티크 정육점 ‘식스그램’을 비롯해 서울 마장동 축산물 도매 시장의 상품들을 직접 소비자들이 구매할 수 있도록 구축한 ‘마장동 소도둑단’ 등의 온라인 몰을 운영하며 ‘고기 마니아’들을 그러모으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지역 고객들이 오후 3시 이전에 상품을 주문하면 오후 9시 내에 받아 볼 수 있는 당일 배송 서비스인 ‘미트퀵’ 서비스를 론칭하기도 했다. 이종근 육그램 대표를 만나 육류 배송 시장의 전망과 앞으로의 계획 등을 물어봤다.

-이커머스와 비교해 온라인 정육점이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
“기존 이커머스가 단순히 ‘고기’를 판매한다면 육그램과 같은 온라인 정육점은 고기를 먹는 소비자의 ‘취향’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상품적인 측면에서 더욱 차별화된 제품을 판매해 고기 맛을 따지는 소비자들의 취향을 저격한다. 이커머스에서 쉽게 찾기 어려운 숙성육이나 특수 부위 제품들을 믿고 구매할 수 있다. 빠른 배송을 통한 신선도도 강점이다. 육그램도 그렇지만 온라인 정육점을 표방하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고기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당일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육그램이 ‘식스그램’과 ‘마장동 소도둑단’ 등 여러 판매 채널을 구축한 이유는 뭔가.
“평일 점심 때 편하게 가는 대중적인 식당과 기념일에 예약하는 파인다이닝이 다르듯이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고 싶었다. 식스그램은 1%를 위한 정육점으로, 전국의 우수한 장인이 고기를 선별하고 맞춤 생산하는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고품질의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품질은 좋지만 매일 먹기엔 부담이 될 수 있다. 반면 전 국민 모두를 위한 믿을 수 있는 정육점이 마장동 소도둑단이다. 마장동 소도둑단은 도매 시장에서 ‘훔쳐서 팝니다’라는 슬로건처럼 유쾌하고 부담 없는 가격에 소비자에게 접근하고 있다. 이처럼 육그램은 고기의 다양성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환경을 고려해 채널을 분리했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온라인 정육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고기와 같은 축산물은 신선식품 중에서도 민감한 상품이다. 신선도가 떨어지면 맛이 없어지고 상할 우려도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신선식품의 온라인 구매를 꺼려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신선식품의 온라인 구매 장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상품을 빠르게 전달할 만큼 배송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약 20년 전 인터넷으로 의류 쇼핑몰이 처음 등장했을 때 ‘누가 인터넷으로 옷을 사겠나’라는 말이 나왔었다. 배송 기술의 발전과 함께 앞으로 고기를 비롯한 신선식품을 눈으로 직접 보고 골라야 한다는 인식도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육류 배송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다.”

-향후 계획은 세웠나.
“현재 육그램은 서울 전역 당일 배송을 운영하고 있는데 최근 소비자들의 더 빠른 배송에 대한 니즈가 커지는 추세를 반영한 퀵커머스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최근 상품을 주문하면 1시간 내에 다양한 부위의 신선한 고기를 받을 수 있는 ‘미트퀵’을 론칭하고 시범 운영 중이다. 10월 말 이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오픈하고 우선 서울 광진구·강남구·송파구 등에서 미트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