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발행한 회사채 수요 예측에 1조원 몰려…LCD 수급 개선되며 수익성 높아져

[마켓 인사이트]
LG디스플레이가 적용된 LG TV. 출처: 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가 적용된 LG TV. 출처: 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가 ‘신용 등급 흑역사’를 끊고 공모 회사채 발행 시장에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긍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달고 2년 만에 복귀한 LG디스플레이를 기관투자가들은 1조원이 넘는 뭉칫돈으로 환대했다. 전성기 시절 최고 신용 등급 회복 가능성도 예상되지만 업황 변동성과 재무 부담 완화 속도가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신용 등급 흑역사 끊고 화려하게 복귀한 LG디스플레이
업황 따라 롤러코스터 타는 신용 등급

올 9월 채권 시장 관계자들의 가장 큰 관심은 LG디스플레이의 회사채 발행 흥행 여부였다. LG디스플레이는 1985년 설립된 디스플레이 패널 전문 업체다. LG전자·LG이노텍과 함께 LG그룹 전자 사업을 이끄는 핵심 계열사다. 최대 주주는 LG전자이고 올 6월 말 기준 지분 37.9%를 갖고 있다.

올 들어 많은 대기업 그룹 계열사들이 회사채 발행 시장에 데뷔하거나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LG디스플레이에 관심이 집중된 것은 험난한 LG디스플레이의 신용도 역사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가 회사채 시장에 모습을 보인 것은 2019년이 마지막이었다. 신규 투자 등을 위해 자금 조달 수요가 꾸준히 있었는데도 LG디스플레이가 회사채 시장에 쉽사리 모습을 나타내지 못한 것은 불안정한 신용도 때문이었다.

2017년까지 채권 시장에서 LG디스플레이는 남부럽지 않은 신용도를 뽐내던 한국의 간판 대기업이었다. 탄탄한 사업 구조와 우량한 신용도 덕분에 기관투자가들의 ‘애정’을 독차지했다. LG디스플레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시장 지배력을 지니고 있는 데다 효율적인 양산 능력과 원가 경쟁력에 기반한 경기 대응 능력을 보유한 덕분에 수익성 부침에도 2011년까지 ‘AA-’ 신용 등급을 유지했다.

2013년에는 고부가 가치 제품에 힘입어 실적 변동성을 완화할 것이란 기대로 ‘긍정적’ 신용 등급 전망도 달았다. 신용 평가사들이 LG디스플레이의 신용 등급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공개적으로 발표한 셈이다. 탄력적인 투자 계획을 통한 잉여 현금 창출 능력 향상과 설비 고도화, 차세대 디스플레이에 대한 선제적 대응 움직임도 신용 평가사들이 LG디스플레이의 신용도 전망을 밝게 보는 배경이 됐다.

실제 2014년 LG디스플레이의 신용 등급이 ‘AA’로 올랐다. 이전까지는 ‘AA’급이기는 해도 가장 하단인 ‘AA-’ 신용 등급이어서 채권 시장에서 우량한 신용도를 갖춘 기업이 누릴 수 있는 이점을 그리 누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명실공히 안정적인 ‘AA’급 기업으로 올라서면서 기관투자가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보유하고 있는 유동성과 내부 현금 창출 능력을 봤을 때 우수한 재무 안정성을 이어 갈 것이란 전망도 주를 이뤘다.

호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2018년부터 LG디스플레이를 바라보는 시장 참여자들과 신용 평가사들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액정표시장치(LCD) 산업의 공급 과잉으로 인한 패널 가격 약세로 업황 불확실성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부문에 투자가 이어지면서 재무 부담이 확연히 커지게 됐다. 신용 평가사들은 LCD 패널 가격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봤고 LG디스플레이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영업 현금 창출 규모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대규모 투자가 맞물려 ‘AA’ 신용 등급 수준에 부합하는 재무 상태를 지속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도 봤다.

이런 우려는 결국 ‘부정적’ 신용 등급 전망으로 이어졌고 LG디스플레이의 신용 등급이 강등될 것이란 시장 안팎의 전망이 빠르게 확산됐다. 기관투자가들도 발 빠르게 손절에 나섰다. 그다음 해인 2019년 LG디스플레이의 신용 등급은 다시 ‘AA-’로 하락했다.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초 패널 가격 하락 폭이 커지면서 또다시 신용도에 위기가 찾아왔다. LCD 부진이 심화된 가운데 구조 혁신에 따른 일회성 비용까지 LG디스플레이의 신용도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하는 악재들이 줄줄이 잇따랐다. OLED 사업의 안정화가 지지부진한 상태여서 초기 비용 부담이 이어지고 있었고 신용 평가사들은 의미있는 수준의 이익 창출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이유로 신용 평가사들은 LG디스플레이의 신용 등급을 ‘A+’로 내렸다. ‘AA’급에서 ‘A’급 기업으로 주저앉은 것만으로도 타격이 컸는데 신용 평가사들은 신용 등급 전망까지 ‘부정적’으로 달았다. 쉽게 말해 단기간 내 신용 등급이 두 단계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였다.

이렇다 보니 LG디스플레이가 회사채 시장에 섣불리 발을 내디딜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다. 괜스레 공모 회사채 시장에 복귀했다가 기관투자가들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높은 발행 금리로 간신히 자금을 조달하게 되면 시장 평판만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LCD 수급이 개선되면서 LG디스플레이의 수익성이 크게 좋아졌다. 전문가들은 OLED의 개선된 품질 경쟁력과 생산 효율성에 기반해 실적 변동성도 과거에 비해 완화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투자 부담 완화로 재무 안정성도 빠르게 개선될 것이란 시각까지 나왔다.

신용 평가사들은 LG디스플레이의 신용 등급 전망을 일단 종전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바꿨다. 어느 정도 신용도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잦아들었다는 판단에서 LG디스플레이는 2년 만에 회사채 발행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신용 평가사 중 한 곳인 한국신용평가는 올 8월 말 LG디스플레이의 신용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긍정적’으로 조정했다. ‘AA’급 기업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비대면 관련 수요가 증가한 영향이 컸다.

물론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가 아직까지는 ‘안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유지하고 있지만 회사채 발행을 준비하던 LG디스플레이엔 호재였다. 올 9월 LG디스플레이의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 예측에서도 이 같은 호재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30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진행한 수요 예측에 총 1조2200억원의 투자 수요가 몰렸다. 보험 회사와 자산 운용사, 연기금 등이 LG디스플레이의 회사채 투자에 큰 관심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LG디스플레이는 2년 만에 시장의 우호적인 평판을 확인하면서 최종적으로 5000억원으로 증액해 회사채를 발행했다. 조달한 자금은 전액 파주 공장의 친환경 OLED 제품 생산을 위한 설비 투자에 쓰기로 했다.
신용 등급 흑역사 끊고 화려하게 복귀한 LG디스플레이
투자 부담 줄이고 ‘AA’급 회복 가능할까

코로나19의 확산이 LG디스플레이에는 기회로 작용했다. LG디스플레이는 LCD 사업을 태블릿·노트북·모니터 패널 등 고부가 정보기술 제품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TV용 패널 부문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에 따른 비대면 관련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 원재료 부족으로 패널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면서 우호적인 수급 환경도 형성됐다. 자연스럽게 수익성도 크게 좋아졌다.

상반기 기준으로 보면 2018년엔 LG디스플레이의 영업이익률이 마이너스 2.9%였다. 2019년엔 마이너스 4.5%, 지난해엔 마이너스 8.8%였다. 하지만 올 상반기엔 8.8%를 기록했다. OLED 사업도 대형 부문의 증설 효과와 중소형 부문의 출하 물량 증가로 고정비 부담이 완화됐다. LG디스플레이의 지난해 연간 이익 창출 능력은 손익분기점(BEP)에 근접한 수준으로 회복됐다. 올 상반기엔 1조2000억원의 영업이익과 3조5000억원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을 창출했다.

이주호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최근 수요 증가세가 둔화되며 일부 사이즈의 대형 LCD 패널 가격이 하락 반전 혹은 가격 상승 폭이 줄어들고 있다”면서도 “여전히 탄탄한 LCD 패널 수요와 고부가 정보기술 LCD 패널, OLED 중심으로 개선된 제품 포트폴리오를 감안할 때 이익 창출 능력은 양호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OLED로 사업 구조를 전환하면서 확대된 설비 투자 부담이 감소하고 있다. 2017~2019년 연평균 설비 투자 규모는 7조6000억원이었다. 지난해엔 3조원으로 절반 수준 밑으로 줄었다. 이렇다 보니 2019년까지 빠르게 상승했던 차입 부담도 감소세로 전환됐다. LG디스플레이의 순차입금은 2019년 말만 해도 10조2000억원에 달했지만 올 6월 말 기준으로는 9조6000억원으로 줄었다.

LG디스플레이가 ‘AA’급 지위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코로나19 전개 양상과 투자 부담 완화 정도에 달렸다. 주요 국가의 백신 접종 확산에 따라 경제 주체들이 대면 활동을 재개하고 재고 축적 유인이 줄면 패널 수급 강세와 가격 상승세가 하향 기조로 다시 바뀔 수 있다. 변이 바이러스가 재확산되고 부품 수급 이슈로 생산 활동에 차질이 생기면 단기 업황 하락 폭이 예상보다 커질 수도 있다.

송종휴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매출 성장에 수반되는 운전 자본 부담, 중소형 OLED 제품 다변화를 위한 증설 투자 계획, 대형 OLED 시장 확대를 위한 추가 투자 유인을 보면 단기간 내 재무 부담을 빠르게 줄이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