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5년 내 A380 정리 계획 밝혀… 중소형 항공기 수요 대폭 늘어날 듯

[비즈니스 포커스]
대한항공의 A380 여객기.(/대한항공)
대한항공의 A380 여객기.(/대한항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여객 수요가 대폭 줄어든 시점에서 대형 항공기 시대가 차차 저물어 가고 있다. 수요는 반 토막이 났는데 고정비용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계산기를 두드린 항공사들은 이제 항공기 운영에서도 가성비를 따져야 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하늘을 나는 호텔’이라는 별칭으로 사랑받았던 에어버스의 A380도 생산 중단에 들어갔다. 이 항공기는 보잉 747과 함께 대형 항공기 시대의 막을 올린 기종이다. 2층 구조와 함께 샤워 시설·라운지·면세점까지 갖춘 초대형 항공기다. 적게는 500여 명, 많게는 800여 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다. 이러한 화려한 시설에도 불구하고 주요 항공사들은 대형 항공기 대신 중형 항공기의 운영을 확대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형 항공기가 외면받게 된 것은 비단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전 산업군에 도래한 친환경 규제, 공항 운영의 변화 등 다양한 요인이 어우러진 결과다.

‘점보 여객기’ 정리하는 글로벌 항공사들

에미레이트항공은 전 세계에서 A380을 가장 많이 운영하는 항공사다. 오는 11월 마지막으로 A380 여객기를 인도받음으로써 총 118대의 A380을 운영하게 된다.

A380의 최대 고객이었던 에미레이트항공도 지난해 코로나19의 여파로 A380 여객기 운항을 잠시 중단했다. 더 나아가 에미레이트항공이 대형 여객기를 정리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항공업계의 관측이 나오기 시작했다. 향후 2~3년간 코로나19로 인해 대형 항공기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란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에미레이트항공 외에도 루프트한자·싱가포르항공 등이 A380의 운항을 중단했다.

한국 항공사들도 이러한 전략을 따라가는 추세다. 화물 수송의 확대로 항공사 중 유일하게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대한항공의 다음 전략도 대형 항공기 정리다.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은 글로벌 항공 전문지 ‘플라이트 글로벌’과의 인터뷰에서 “A380-800은 5년 안에 대한항공을 떠나고 B747-8i도 10년 안에 그 뒤를 이을 것”이라 말했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측은 초대형 기종의 시대가 저물어 감에 따라 연료 효율성이나 환경 등을 고려해 승객 탑승 효율까지 제고하는 기단으로 꾸려가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대한항공은 A380-800과 B747-8i를 각각 10대씩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이 인터뷰에서 밝힌 방침에 따라 대한항공은 기존 보유하고 있던 대형 기단 A380-800과 B747-8i를 순차적으로 줄여 가고 중대형기 B787-9, B787-10 기종으로 이를 대체할 예정이다. 앞서 대한항공은 2019년 B787-10 20대와 B787-9 10대를 추가 도입한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가성비’만을 따진 전략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A380의 운항이 중단되면서 조종사들이 자격을 상실하는 상황도 벌어지기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실이 9월 8일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아시아나항공의 A380 조종사 145명 중 120명이 자격을 상실한 것으로 집계됐다. 8월 기준으로 기종을 바꾼 조종사 14명과 사직한 1명을 제외하고 A380 조종 자격을 유지한 조종사는 10명뿐이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인해 지난해 4월부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A380 운항을 중단했다. 항공 수요가 급감하자 A380과 같은 대형 기종 대신 A330과 같은 작은 기종들이 투입됐다. 이 과정에서 A380 조종사들이 자격 유지에 필요한 필수 비행 경험(90일 내 3회 이착륙)을 채우지 못했다.
저물어 가는 초대형 항공기 시대

긴 항속거리·연비 효율 고려해 항공기 도입

대형 항공기가 하늘을 날던 2000년대는 해외여행 수요의 증가로 전 세계 공항이 점차 혼잡해지던 시기였다. 항공사들은 복잡한 공항에서 이착륙을 위한 슬롯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항공사들의 고민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많은 승객을 한꺼번에 운반할 수 있는 대형 항공기였다.

에어버스는 대형 항공기 시장을 독점 중이던 보잉 747 항공기에 대응하기 위해 A380을 출시했다. 이에 따라 A380은 완전한 2층 객실 구조와 4개의 통로를 갖추면서 단위 좌석당 연료비와 운영비를 절감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개발됐다. 이렇게 탄생한 A380은 보잉747과 함께 2000년대 초반부터 대형 항공기 시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보잉은 비슷한 시기에 또 다른 관점에서 시장 분석에 돌입했다. 초대형 항공기의 수요가 예상보다 확보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 것이다. 동시에 운송 전략에도 변화의 조짐이 생겨났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초대형기로 최대한 많은 승객을 허브 공항으로 수송한 후 인근 서브 공항으로 환승하는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보다 환승 없이 공항에서 공항으로 바로 이동하는 ‘포인트 투 포인트(point to point)’가 향후 항공업계의 주요 전략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판단과 시장 환경에 따라 보잉은 긴 항속 거리가 특징인 중형기 보잉 787-9 드림라이너
를 개발했고 이 여객기는 현재 항공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종이 됐다. 그 후 보잉의 판단대로 초대형 항공기의 수요가 예상치를 따라가지 못하는 결과가 벌어졌다. 항공사들은 대형 항공기의 운영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든다는 판단을 내렸다. 허희영 교수는 “비단 코로나19 사태가 아니더라도 초대형 항공기의 퇴장은 항공업계에서는 이미 예상됐던 수순”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에어버스는 이미 2019년 성명을 통해 2021년 A380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최대 고객사인 에미레이트항공도 A380의 주문을 대폭 줄이면서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이다.

탄소 규제 또한 항공 산업에 불어닥친 변화다. 2016년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합의한 ‘국제항공 탄소상쇄감축제도(CORSIA)’에 따라 앞으로 항공사들은 항공기 배기가스 배출량을 측정하고 감축해야만 한다. 항공업계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3%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항공사들은 연비 효율이 좋은 항공기를 택하거나 탄소 중립 항공유를 도입하는 등 ‘친환경 항공사’로서의 전환을 지속 중이다. 최근 강화되고 있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연비 효율이 좋은 여객기를 운영해야만 한다.

다만 항공사들이 ‘메가 캐리어’를 완전히 포기한다는 것은 섣부른 추측으로 보인다. 한국 항공사들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이 남은 상황에서 운영하는 여객기의 규모도 합병 심사에 중요한 요인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또한 미주나 유럽 노선은 여전히 성수기에 좌석을 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대형 여객기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형 여객기가 추구하는 ‘규모의 경제’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명지 기자 m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