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기회를 찾아내는 통섭의 지혜…인공지능(AI)의 핵심
[경영 전략]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일상의 휴대품들이 모두 빨려 들어갔다. 시계와 달력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수첩·지도·계산기·카메라도 마찬가지다. TV와 DVD도 스마트폰에 들어가 버렸다.스마트폰이 사용자가 세상과 통하는 ‘접점(user interface)’을 장악하고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 쌓이면서 삶의 중심이 될수록 다른 기기들은 스마트폰에 맞물려야 쓸모가 있다. 삶의 곳곳에서 생긴 스마트폰에 얽힌 기억들이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들과 얽히면서 사용자 경험이 더욱 강화된다.
사람이 편하게 갖고 다니며 쓸 수 있는 기기는 몇 개 되지 않고 사용할 시간도 빤하니 ‘선택’이 필요한데, 그래서도 여러 기능을 제공하는 ‘복합 기기’의 유혹이 시작된다. 다른 용도로 쓰던 제품이나 기술이 합해지는 ‘융합’은 이런 필요에서 비롯됐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기계적으로 처리하던 기능이 소프트웨어로 바뀌면서 기기들은 작고 가벼워졌을 뿐만 아니라 쉽게 기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됐다(스마트폰의 터치 스크린 기능과 시스템 업데이트를 과거 채널 돌리던 구형 TV를 10년 버티다 바꾸던 시절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이들 기기들이 공유된 운영체제(OS)를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면서 융합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한때 ‘통방 융합’이라고 불리던 미디어와 통신 분야의 변화가 대표적인 예다.
융합이 전개되면 사업자는 전혀 다른 분야의 제품과 기술에 순식간에 사용자를 잃는 현상이 발생한다. 수첩과 다이어리를 만드는 사업자와 이를 파는 문구점이 컴퓨터 회사인 애플 때문에 문을 닫고 대형마트가 아마존 때문에 설 자리를 잃고 있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누가 다른 사업자들의 영역을 흡수해 주도권을 잡을까. 이는 사용자, 특히 돈을 쓰는 사용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카메라에 통신 기능을 붙여도 되는데 이동전화에 카메라 기능을 넣은 것은 전화기가 카메라보다 사용자에게 더 필요하고 자주 쓰기 때문이다(사람의 손이 10개이거나 캥거루처럼 몸에 주머니가 있다면 스마트폰과 카메라를 같이 써도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네트워크와 플랫폼다양한 사업자와 사용자가 서로 맞물린 사업 생태계에서 그 관계를 이어 주는 참가자는 주도권을 갖게 된다. 이 생태계가 디지털 기술, 특히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연결되면 그 네트워크는 빠르게 확장된다.
더 많은 사용자들이 모여 더 많은 가치가 만들어지는 네트워크 효과와 서로 다른 사업들이 맞물려 가치를 만드는 교차 네트워크 효과가 뚜렷하게 발생하고 그 중심에서 참가자들을 이어 주는 참가자는 더욱 강력한 주도권을 갖게 된다. 이것이 플랫폼 사업자의 개념이다.
네트워크가 빠르게 형성, 확장되고 그 효과가 클수록 한 번 주도권을 잡으면 그 지위는 따라잡기 어려워지는 ‘쏠림 현상’이 발생한다.
확보한 네트워크에서 얻은 다양한 정보를 사업에 활용하면 플랫폼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온라인 서점이던 아마존이 더 빠르게 세상을 움켜쥐고 있는 이유다.
누가 네트워크의 중심에서 관계를 이어 주고 주도권을 잡느냐는 참가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네이버나 카카오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수많은 사업자들을 주도할 수 있는 것도 이들을 중심으로 연결될 때 더 많은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참가자들이 판단한 결과다.
사용자를 그러모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똑똑한 사업자는 시장에 사업의 미래를 설득해 돈을 끌어들이고 그 돈으로 사용자와 사업자들을 모은다.
이른바 ‘보조금(subsidy)’의 개념인데, 정보화로 세계가 순식간에 연결되니 쏠림 현상은 순식간에 훨씬 넓은 범위에서 벌어진다.
슈퍼맨이 자기 별에서 가져온 다이아몬드로 접속할 때마다 1억원씩 주는 금융회사를 만들면 그 회사에는 순식간에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모여드는 초강력 플랫폼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방송·통신·온라인 거래 등 무궁무진한 사업을 펴(힘은 안 쓰고 돈으로) 세상을 지배할지 모르겠다.
지금의 카카오를 만든 무료 메신저도 나름의 보조금을 사용한 것이고 쿠팡의 누적 적자 4조원은 2000만 사용자에게 2만원씩(당일 배송 등 적자를 동반한 서비스로) 보조금을 사용한 셈이다. 옛날 장마당에서 약장수가 벌인 마술쇼도 일종의 보조금이지만 그 효과는 정보통신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카카오나 쿠팡에 비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사용자들과 관련 사업자들의 선택을 뺏기면 플랫폼의 주도권은 순식간에 무너진다. 네트워크 경제에서의 ‘플랫폼 흡수(envelopment)’라고 하는데 쏠림 현상은 가혹하게도 주도권을 가져간 경쟁 플랫폼 쪽으로 작동한다.
동네마다 있던 시장들도 나름의 플랫폼이었지만 대형마트로 대체됐고 아마존이나 쿠팡 같은 온라인 사업자는 유통 전반을 빨아들이고 있다. 모바일 결제의 보급은 이런 추세를 더욱 빠르게 진전시켰다.
한 번 자리 잡은 플랫폼 사업자는 확보한 사용자와 관련 사업자들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한 번 연결되면 빠져나가기 어렵게 만드는 ‘묶어 놓기(lock-in)’ 전략이 대표적이다.
세상은 냉정해 돈이 되고 편하면 어떻게든 떠난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연결된 세상에서 비교 검색은 너무나 쉽고 멤버십과 결제 정보를 바꿔 주는 대행 서비스도 많다. 어느 날 거대 기업이 된 플랫폼 사업자들도 사실은 언제든 입지를 뺏기고 이름만 남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통섭이 없는 AI는 멍텅구리과거에는 다른 분야에 속하던 제품과 기술이 사업가치를 만들며 같이 진화하는 세상에서는 이런 다양한 분야에 걸친 변화를 이해하고 기회와 위협을 읽어 내는 ‘통섭’의 능력이 필요하다.
한 분야를 잘 알기도 어려운 세상에 매우 어려운 일인데 책만 봐서 될 일이 아니어서 여러 분야에 대한 실험적 시도가 요구된다. 여러 각도에서 세상일들을 다시 생각해 보는 여유도 중요하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기기 업체인 S사는 초기 버전의 태블릿을 출시하면서 데이터 낮은 사양을 선택해 안정된 프로세서와 디스플레이에도 불구하고 경쟁사에 뒤처지고 말았다.
새벽에 출근해 TV 예능물이나 영화는 고사하고 신문도 제대로 안 보는 엔지니어들이 당시 한창이던 영상물 다운로드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태블릿은 ‘사무용 기기’였을 뿐이다.
미디어 사업은 TV 리모컨 시절부터 사용자의 선택이 초단위로 바뀌는 분야다. 볼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 콘텐츠 사용자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는 속마음을 읽어 내야 한다.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는 사용자 정보와 시청 패턴 등을 근거로 나름의 추론으로 ‘콘텐츠 추천’을 하는데, 아직은 ‘나도 몰랐던 숨은 취향’을 찾아주지는 못한다. 삶의 곳곳에서 이런 참신한 발견을 돕는 인공지능(AI)이 있다면 아마존이나 쿠팡은 꼭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 쇼핑으로 연결할 것이다.
AI는 주어진 정보를 해석하는 도구일 뿐 새로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알파고는 바둑으로 이세돌 기사를 이겼지만 그런 기획을 하는 것은 사람이다. 먼 산 바라보며 생각한다고 야단맞는 회사에선 통섭의 지혜는 절대 불가능하니 힘없는 직원들만 쥐어짜며 들들 볶다 망할 것이다. 빨리 그만두시라.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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