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에 주택 담 보대출 대상 감소…형편 어려워져 신용 대출 급증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8월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출처: 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8월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출처: 한국은행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인상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집값이 안정되고 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금리 인상 직전인 올해 8월 23일을 전후해 6주간의 집값 상승률을 보면 금리 인상 직전 3주간 전국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1.36%였다. 반면 금리 인상 직후 3주간의 상승률은 1.45%로 오히려 상승폭을 키우고 있어 정부의 당초 의도와는 거꾸로 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규제에 주택 담보 대출 대상↓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한국은 주택 담보 대출 규제가 이미 폭넓게 적용돼 있어 금리 인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주택 담보 대출 대상 주택이 생각보다 적기 때문이다.

규제 지역에 집을 사려는 다주택자에게는 주택 담보 대출 자체가 금지돼 있다. 1가구 1주택자라고 하더라도 15억원이 넘는 집을 살 때는 대출이 나오지 않는다. 15억원 이하의 집도 9억원이 넘으면 대출 한도의 일부밖에 나오지 않는다. 9억원 이하의 집도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에서 집을 사려고 하면 담보물의 40% 정도밖에 대출이 나오지 않는다. 조정 지역은 50%에 불과하다.

둘째, 금리 인상 효과는 집값의 상승 기대감에 비해 상당히 낮은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앞으로 금리를 네 차례 더 올린다면 기존 금리에 비해 1.0%포인트가 오르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1억원을 빌렸다면 1년에 대출 이자를 100만원 더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5월 ‘전국 평균 아파트’라는 집을 샀다고 가정해 보자. 4년 4개월이 지난 2021년 9월 이 집은 얼마나 올랐을까.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이 기간의 아파트 매매가 상승률은 32.2%다.

전세를 끼고 사면 집값의 24.4%만 있으면 아파트를 살 수 있어 현 정부 출범 직전에 ‘전국 평균 아파트’에 1억원을 투자했다면 4년 4개월 동안 1억3201만원의 세전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는 매년 3000만원의 수익을 거둔 셈인데, 금리 인상으로 연간 100만원의 이자 부담이 늘어난다고 해도 기대 수익의 3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수준이다.

셋째, 가계 대출에서 주택 담보 대출의 규모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가계 대출에서 주택 담보 대출의 비율이 가장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의 대출 증가는 주택 담보 대출보다 신용 대출의 증가에 기인한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올해 6월 기준 한국의 가계 대출 총액은 1705조원에 달한다. 1년 전 대비 10.3% 증가한 규모다.

가계 부채가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집을 사기 위해 주택 담보 대출을 많이 받아서일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가계 대출이 10.3% 늘어난 지난 1년간 주택 담보 대출은 8.6%밖에 늘지 않았다. 오히려 신용 대출이라고 할 수 있는 나머지 가계 대출이 12.5% 늘었다.

결국 가계 대출이 늘어나는 것은 주택 담보 대출이 늘어나는 것보다 신용 대출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서인데, 이런 현상은 지난 1년뿐만 아니라 현 정부 출범 이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현 정부 출범 이후 가계 대출 잔액 규모는 29.9% 증가했는데, 그중 주택 담보 대출은 27.8%에 그친 반면 신용 대출이라고 할 수 있는 나머지 가계 대출은 32.6% 늘었다.

이에 따라 길게는 현 정부 출범(56.5%) 때나 짧게는 지난 1년 전(56.47%)에 비해 가계 대출에서 주택 담보 대출이 차지하는 비율(55.61%)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반대로 표현하면 은행에 안전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주택 담보 대출은 줄어들고 위험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신용 대출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 통계를 보면 올해 7월 기준 주택 담보 대출의 연체율은 0.11%에 그친 반면 가계 신용 대출의 연체율은 0.33%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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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10.3%, 현 정부 출범 후 29.9% 늘어난 가계 대출의 증가 속도는 우려할 만한 수준일까. 과거 증가 속도에 비해 빠르다는 점에서는 분명 좋은 조짐은 아니다.

하지만 같은 기간의 통화량(M₂) 증가가 10.9%와 38.2%인 점을 감안하면 위험한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고 화폐 가치가 떨어진 것에 비하면 가계 대출 증가세는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더욱이 주택 담보 대출의 경우 지난 1년간 대출 잔액이 8.6% 증가에 그쳤다. 담보물의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집값 상승률은 이보다 훨씬 높아 전국 주택 매매가 평균은 13.9%, 전국 아파트 매매가 평균은 17.7%나 올랐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의 평균 집값이 1억원이었는데 평균 주택 담보 대출은 5000만원이라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평균 주택 담보 대출 비율(LTV)은 50%다.

그런데 1년 후 이 나라의 평균 주택 담보 대출은 6000만원이 되고 평균 집값은 2억원이 됐다면 대출 증가율이 전년 대비 20% 늘어 위험하다고 판단해야 할까. 그렇지 않다. 평균 LTV가 30%로 줄어 은행은 오히려 안전도가 높아졌다고 판단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가계 대출 증가세 문제는 신용 대출이 늘어난 것에 기인한다. 주택 담보 대출이 막혀 신용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는 이들도 늘어났지만 종업원의 급여를 줄 돈이 모자라 대출을 받아 해결하거나 더 나아가 마이너스 대출로 생활비를 충당하려는 사람도 늘어나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값을 잡는 데 큰 효과가 없는 금리 인상이 과연 적절한 정책인지 의구심이 든다.

금리 인상의 영향권에 있는 사람은 다주택자가 아닌 주택 구입 자금이 부족해 대출을 끼고 내 집을 마련한 실수요자와 운영 자금이 부족한 자영업자, 생활 자금이 부족한 저소득자들이다. 급격한 금리 인상은 경제적 약자의 고통만 키울 뿐이다. 누구를 위한 금리 인상인지 크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아기곰 ‘아기곰의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