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원 회사채 발행에 1.18조 수요 몰려…신용 등급 상향 조정 기대감

[마켓 인사이트]
서울 중구 동호로 CJ제일제당센터 전경. 출처: 한국경제신문
서울 중구 동호로 CJ제일제당센터 전경. 출처: 한국경제신문
CJ제일제당이 CJ그룹 계열사 최초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중소 협력사를 위한 CJ제일제당의 사회적 채권에 연기금과 자산 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의 관심이 쏟아지면서 조 단위의 역대급 투자 수요를 이끌어 냈다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불어난 재무 부담도 빠르게 완화되는 추세여서 향후 신용 등급 상향 조정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회사채 수요 예측에 1.18조원 ‘뭉칫돈’

CJ제일제당은 올해 9월 총 20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 예측(사전 청약)을 진행했다. 수요 예측 전 시장의 분위기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 등 신용 평가사는 CJ제일제당의 회사채 신용 등급을 ‘AA’로 부여한 상태였다. 특별히 신용 등급 상향 조정을 기대할 만한 이슈도 없었다.

더욱이 지난 8월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인상하면서 올해 상반기 불붙었던 회사채 투자 열기도 한풀 꺾인 상황이었다.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어 시장 금리가 오르면 회사채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회사채 발행 조건이 비우호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시장의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1조1800억원의 투자 희망 자금이 몰렸다. 연기금과 보험사, 자산 운용사들이 앞다퉈 CJ제일제당의 회사채를 사들이려고 했다. 결국 CJ제일제당은 기관투자가의 수요를 고려해 3700억원으로 회사채를 증액 발행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CJ제일제당이 일부 회사채를 ESG 채권으로 발행한 것이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수요를 이끌어 내는 데 한몫했다고 보고 있다. CJ제일제당은 회사채 중 일부를 ESG 채권의 일종인 사회적 채권으로 발행했다. 기업이 조달한 자금을 사회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는 용도로 사용하면 일반 회사채가 아니라 사회적 채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CJ제일제당은 이번 회사채 발행으로 조달하는 자금 중 일부를 중소 협력사 대상 금융 지원에 사용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동반성장펀드 조성과 대금 지급 주기 단축 등에 쓰인다. 이처럼 명확한 자금 사용처에 따라 사회적 채권으로 인정받았고 ESG 투자를 전략적으로 확대하려는 기관투자가들의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 사회적 채권은 CJ제일제당의 첫 ESG 채권일 동시에 CJ그룹 전체로도 최초의 ESG 채권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CJ제일제당은 올해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ESG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기관투자가들이 최근 ESG 경영 성과를 투자 대상 결정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어 CJ제일제당의 회사채 발행이 흥행에 성공했다”며 “올해 들어 친환경 사업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도 기관투자가들의 호평을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CJ제일제당은 중소 협력사 대상 금융 지원에 사용되는 자금을 뺀 나머지 조달 자금은 기업 어음을 상환하는 데 활용해 조달 구조도 장기화하게 됐다.
CJ제일제당, 그룹 첫 ESG 채권 발행 성공
대내외 변수가 주력 사업 '쥐락펴락'

CJ제일제당은 내수 시장에서 명실공히 확고한 선도적 입지를 구축했다. 특히 설탕·밀가루·식용유·조미료·장·육가공·냉동식품 부문에서 경쟁력이 두드러지고 있다. 소재 식품은 성숙기에 접어들었지만 국내 시장이 과점 구조여서 안정적으로 매출을 내고 있다. 곡물 가격의 변동은 판가에 잘 반영하고 있다. 그 덕분에 이익 창출 능력도 나쁘지 않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의 산업군이 어려움을 겪을 때도 내식 수요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기도 했다.

지난해 CJ제일제당의 매출 대비 이자·세금 차감 전 이익(EBIT)은 5.6%다. 올해 상반기에는 6.8%로 더 뛰었다. 2018년에는 4.5%, 2019년에는 4.0%였다.

바이오 부문도 고수익군 비중 확대에 힘입어 2015년 이후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물론 생물 자원 부문은 아직 CJ제일제당에 고민거리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베트남·중국 등에서 사료와 축산업을 하는 생물 자원 부문은 해외가 주력 사업 지역이다. 다른 부문에 비해 경쟁 강도가 높아 수익성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사업을 주도한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시장 성장에 따른 공급 증가와 판가 인상 지연, 가축 질병에 따른 수급 영향으로 이익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시적으로 영업 수익성이 좋아졌지만 올해 하반기 이후에는 다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베트남 내 사육 두수 확대로 돈가의 완만한 하락세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사업 부문 전망을 종합해 보면 채권 시장 참여자들은 CJ제일제당이 매출 성장세를 이어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간편식 등 국내 가공식품의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중국과 동남아시아 축산 시장의 성장성과 미국 냉동식품 업체 슈완스 인수 효과도 앞으로 사업 전망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란 의견도 많다.

CJ제일제당은 시장 안팎에서 꾸준히 재무 부담에 대한 우려가 나온 기업이었다. 슈완스 인수와 2018년 매각한 CJ헬스케어 매각 차익에 대한 법인세 납부, 운전 자금 부담, 진천 식품 공장 투자 등이 맞물리면서 순차입금이 2019년 6월 말 기준으로는 7조2000억원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 이후 CJ제일제당이 재무 부담 완화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가양동 부지를 매각하고 영등포 제분 공장 유동화를 통해 차입금을 상당히 줄였다.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적극 실행한 데다 지난해엔 영업 실적이 좋아지고 설비 투자까지 줄면서 순차입금이 감소했다.

올해 6월 CJ대한통운을 제외한 연결 기준 조정 순차입금은 6조원으로 슈완스 인수 직후였던 6조9000억원에 비해 줄었다.

단, 이 같은 재무 구조 개선에도 신용도 상향 가능성은 아직 미지수다. 식품·바이오 등 주력 사업에 영향을 미치는 대내외 변수가 여전해서다. CJ제일제당은 2010년 이후 줄곧 ‘AA’ 신용 등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민호 한국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신용 등급 상향을 노리려면 식품과 바이오 부문의 시장점유율이 더 높아지고 수익성 개선을 좀 더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