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회사채 시장에서도 흥행 성공…수요 예측에 목표치 3배 몰려

[마켓 인사이트]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소비자들이 줄을 선 모습. 출처: 한국경제신문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소비자들이 줄을 선 모습. 출처: 한국경제신문
신세계가 얼어붙은 회사채 발행 시장에서 대규모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실적 부진을 이겨내고 올해 들어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친환경 사업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어 위축된 투자 환경 속에서도 자산 운용사와 연기금 등의 큰 호응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면세점 사업 부문의 불확실성은 여전해 신용도 개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금리 상승기 따른 조달 환경 악화에도 ‘선방’

신세계의 회사채 발행 소식이 전해지자 시장 안팎에선 우려의 목소리부터 나왔다. 신세계가 계획한 회사채 발행 시점은 올해 10월 초다. 회사채 발행 시장이 급격하게 냉각될 조짐을 보이는 시점이었다. 미국 국채 금리가 치솟고 있었고 한국은행의 추가 기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맞물려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던 시기였다.

한국은행은 주택 시장 과열 등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8월 기준 금리를 연 0.75%로 0.25%포인트 올리며 금리 인상기의 시작을 알렸다.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회사채 투자 측면에선 부정적인 이슈다. 통상 시장 금리가 오르면 회사채 가격은 하락한다. 기관투자가는 회사채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고 자금 조달이 시급한 기업엔 조달 환경이 악화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올해 9월 이후 당초 예상보다 기관투자가의 투자 수요를 확보하지 못해 회사채 발행 흥행에 실패한 기업들이 나타났다.

신세계에는 고민스러운 조달 환경이었다. 회사채 발행 흥행에 실패하면 단순히 자금 조달 계획에 수정이 생기는 것 이상의 타격이 있다. 시장 평판이 단기간 내 악화되고 추후 자금 조달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효과적인 자금 사용처와 적절한 만기 분산으로 기관투자가에 투자 매력을 제시했다. 일부 회사채는 최근 기관투자가가 적극적으로 투자를 희망하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채권으로 구성해 투자 매력을 높였다.

조달 자금 중 일부를 도심 연수원 친환경 건축물 건설에 쓰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회사채 중 일부를 녹색 채권으로 발행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에 기여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전략은 성공했다. 신세계가 진행한 회사채 수요 예측(사전 청약)에 총 5800억원의 투자 희망 수요가 몰렸다. 당초 예상했던 목표치의 세 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신세계는 결국 기관투자가의 투자 수요를 감안해 기존 2000억원에서 2400억원으로 회사채를 증액 발행했다. ESG 채권이라는 장점 외에도 신세계의 회사채 신용 등급이 ‘AA’로 비교적 우량하다는 것과 코로나19 장기화에도 실적 반등 가능성이 보이고 있는 점이 우호적인 투자 심리 형성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소비심리 회복에 코로나19 쇼크 이겨낸 신세계
영업 전략 수정으로 빠른 실적 회복세

신세계의 핵심 사업은 백화점이다. 신세계는 올해 6월 기준 한국 주요 지역에서 12개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다. 롯데쇼핑·현대백화점 등과 함께 백화점업계에서 과점적인 시장 지위를 지니고 있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데다 강남점·센텀시티점 등 주력 점포의 우수한 입지 여건, 안정적인 고가품 고객 기반 덕분에 사업 경쟁력도 우수한 편이다. 이마트와 영업 관계도 긴밀해 복합 쇼핑몰 동시 입점, 포인트·상품권 공유 등으로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탄탄대로만 달린 것은 아니다. 과거 신세계의 신용 등급은 최고 단계인 ‘AAA’의 바로 아래인 ‘AA+’였다. 금융회사나 공기업이 아닌 일반 기업이 오를 수 있는 사실상 최고 수준이었다.

단, 2016년 들어서면서 이 신용도에 적신호가 켜졌다. 한국 신용 평가사가 신세계의 투자 부담 확대를 우려하며 부정적 신용 등급 전망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신용 평가사는 투자 성과가 조기에 나타나지 않거나 적극적인 유동성 확충 방안 실행이 없으면 재무 안정성이 빠르게 악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 내수 부진이 이어지던 상황에서 백화점 업체 간 경쟁이 거세지고 온라인 쇼핑과 아울렛 등 다양한 대체 유통 채널이 급성장하면서 신세계의 매출과 이익 창출 능력이 전반적으로 둔화된 상태였다.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신용 평가사들은 2016년 말 신세계의 신용 등급을 ‘AA’로 한 단계 떨어뜨렸다. 현금 창출 능력에 비해 높은 채무 부담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이후 신세계는 실적을 회복하며 재무 상태를 다잡는데 집중했다. 이를 통해 2016~2019년 매출 외형과 영업 수익성 모두 개선됐다. 기존 백화점 증축과 신규 출점으로 총매출이 증대됐고 사업 확대를 통해 면세점과 의류·화장품 도소매 부문의 이익 창출 능력이 높아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라는 복병을 만났다. 지난해 면세점업·호텔업 부문의 이자·세금 차감 전 이익(EBIT)은 적자 전환됐다. 백화점업·도소매업 부문의 EBIT도 전년 대비 위축됐다. 신세계의 사업·재무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빠르게 확산됐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신세계는 코로나19에 맞춰 영업 전략을 수정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늘면서 민간 소비 심리도 회복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억눌렸던 소비 수요가 폭발하면서 명품 등 고가품 수요가 크게 늘었다. 중국인 대리 구매상을 대상으로 하는 면세점 매출도 증가세를 보였다.

주력 사업인 백화점업과 면세점업 부문의 영업 실적이 개선되면서 올해 상반기 신세계의 연결 기준 총매출 대비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지표는 12.0%를 기록했다. 지난해 상반기엔 8.0%, 지난해 전체로는 9.6%였다. 실적 역시 회복세를 보였다. 올해 상반기 신세계의 백화점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3.6% 늘었고 면세점 부문 역시 적자에서 벗어났다.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지만 신세계의 신용도 개선을 장담하기에는 아직 이른 시점이다.

신세계는 지난해 백화점업·면세점업 부문을 중심으로 영업 현금 흐름 창출 능력이 약화됐다. 여기에 대전 신세계 관련 대규모 설비 투자를 집행했다. 올해 이후에는 연간 예상 투자액이 감소할 전망이지만 코로나19 재확산 가능성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한태일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면세점 부문의 실적 변동성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며 “올해 공항 면세점의 임차료 감면액은 지난해를 웃돌 것으로 보이지만 이런 영향을 빼면 실질 손익은 여전히 적자인 상황이다. 임차료 감면 정책의 기한 연장 여부와 면세 수요의 회복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파악해야 할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