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앞다퉈 줄줄이 금리 인상…Fed 금리 인상 시기에 시선 쏠려

[글로벌 현장]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상 시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상 시기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연합뉴스)
미국 뉴저지 주의 대형 슈퍼마켓인 숍라이트에선 1~2개월 전까지 ‘폴란드 스프링’ 생수(16.9온스) 40개짜리가 3박스 기준 9달러에 판매됐다. 가격을 낮게 책정한 일종의 ‘미끼 상품’이었다. 이 슈퍼마켓의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지만 생수를 찾아 이곳을 찾는 쇼핑객이 줄을 이었다.

여전히 할인 상품이란 점이 같지만 가격은 많이 뛰었다. 지금은 같은 물량을 사려면 11달러를 줘야 한다. 이 슈퍼마켓 직원은 “물가가 다 올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그래도 인근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이어서 여전히 잘 팔린다”고 말했다.

미국 내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이후 대규모 통화량 확대다. 미 정부가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6조 달러 넘는 돈을 풀면서 생필품은 물론 중고차·주택 등 대부분의 물가가 뛰고 있다. 물류난까지 겹치자 유통 비용도 높아졌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인 미국의 물가 급등세는 글로벌 경기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기준금리 인상을 압박할 수 있는 데다 경기 역시 지난 2분기에 정점을 찍고 서서히 하강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찾아오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급등하는 미·유럽 물가…글로벌 ‘S의 공포’ 커졌다 [글로벌 현장]

생수·중고차·기름값…안 뛰는 게 없다
미 중앙은행(Fed)이 주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근원 물가는 지난 8월 3.6%(작년 동기 대비) 급등했다. 1991년 5월 이후 30여 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료품을 포함한 일반 PCE 물가는 4.3% 뛴 것으로 집계됐다.

Fed가 설정한 PCE 물가 목표는 2.0%다. 고용 회복과 함께 2%를 살짝 넘는 물가가 일정 기간 유지되면 통화 정책을 바꿀 수 있다고 공언해 왔다. 또 이 목표를 향한 실질적인 진전이 확인되면 테이퍼링(채권 매입 축소)에 나설 것이라고 말해 왔다. Fed가 올 11월부터 테이퍼링에 착수할 것을 강력 시사한 배경이다. 물가와 고용 목표가 상당 부분 달성됐다고 본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에너지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80달러를 돌파했다. 올 들어서만 60% 넘게 뛰었다.

미국·유럽연합(EU)·중국 등 주요국이 추진하는 탄소 중립 정책이 작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탄소 중립 정책은 역설적으로 중국·인도 등 화석 연료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 심각한 타격을 줬다. 전력난과 가격 폭등을 불러 왔다.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대부분 국가에서 발전 비율이 높지 않고 에너지 효율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미국 내 휘발유의 평균 소매 가격은 갤런(3.78L)당 3달러를 넘어섰다. 지난 1년간 약 1달러 상승했다. 석탄 가격은 올 들어 4배 정도 급등했다. 천연가스 가격은 6개월 만에 두 배로 올랐다. 전기 가격은 7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가격 전망도 암울하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내년 초 유가가 배럴당 80~90달러 선에서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JP모간은 2025년에 유가가 배럴당 19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건비 상승세도 가파르다. 미국의 9월 시간당 임금은 전달 대비 평균 0.6%, 작년 동기보다 4.6% 각각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3개월 연속 4%를 넘겼다. 임금 상승세는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힘을 실어 주는 요인이다.

영국의 경제 분석 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5.1%까지 뛸 것”이라고 예측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은행 총재는 “팬데믹이 일으킨 공급망 위기가 더 길어질 수 있다”며 “통화 정책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급등하는 미·유럽 물가…글로벌 ‘S의 공포’ 커졌다 [글로벌 현장]

스태그플레이션 공포 커지는 지구촌
물가 급등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팬데믹 이후 주요국이 경쟁적으로 돈을 풀었기 때문이다.

에너지 부족 사태가 길어지고 있는 점도 고민거리다.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은 극심한 전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호주와의 갈등 이후 석탄 수입량이 줄자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사재기에 나서고 있다.

신흥국 중 브라질의 물가 상승세는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 12개월 물가 상승률이 10.25%로 집계됐다. 2016년 2월(10.36%) 이후 5년 6개월여 만의 최고치다. 브라질 중앙은행은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종전 5.8%에서 8.5%로 높이기로 했다”며 물가 관리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물가 상승률도 약 3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부 노동자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영국과 유럽 중앙은행은 물가 급등세가 예상보다 오래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휴 필 영국 중앙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물가 상승의 폭과 기간이 더 오래 지속될 것이 확실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38개 회원국의 지난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작년 동기 대비 4.3% 올랐다. 에너지 가격 상승률(18.0%)은 2008년 9월 이후 약 13년 만에 가장 높았다.

경기마저 꺾일 조짐을 보이자 주요국을 중심으로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커지고 있다. 핀란드 노르디아은행의 안드레아스 라센 분석가는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내년 미국 성장률이 1.5%까지 뚝 떨어질 것”이라며 “에너지 가격이 추가로 40% 뛰면 미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선진국의 재정 긴축 여파가 신흥국을 강타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2013년 Fed가 양적 완화 프로그램을 축소하자 신흥 시장을 지탱하던 자본이 일제히 빠져나갔던 적이 있다.

일부 선진국과 신흥국은 기준금리를 잇따라 올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물가를 잡기 위해서지만 미국에 앞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하고 있다.

뉴질랜드 중앙은행은 최근 기준금리를 종전의 연 0.25%에서 0.50%로 인상했다. 2분기 물가 상승률이 3.3%로, 정책 목표(1~3%)를 벗어났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기준금리 인상은 2014년 3월 이후 처음이다.
폴란드 중앙은행은 연 0.1%에서 0.5%로 높였다. 시장 예측보다 인상 폭이 컸다. 세계 경제가 처한 난맥상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는 해석이 나왔다.

아이슬란드는 연 1.25%에서 1.50%로 인상했다. 이 국가의 기준금리는 연초만 해도 연 0.75%였지만 이제 두 배가 됐다. 아이슬란드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4월 4.6%였다.

현재 연 0.1%인 영국의 기준금리도 조만간 오를 것이란 관측이다. 영국 중앙은행은 오는 12월 회의에서 금리 인상을 결정해 내년 말 연 0.75%까지 금리를 올릴 것이란 게 대체적인 견해다.

중요한 것은 Fed의 금리 인상 시기다. 각국에 미치는 영향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Fed는 지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인상 예고 시점을 당초 2023년에서 내년 말로 앞당겼다. 테이퍼링 완료 시점을 내년 중반께로 보고 있는 만큼 그 이후 금리 인상 준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급등하는 미·유럽 물가…글로벌 ‘S의 공포’ 커졌다 [글로벌 현장]
다만 일각에선 물가 급등세가 올해 말 정점을 찍고 서서히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표적인 기관이 국제통화기금(IMF)이다. 선진국의 올해 4분기 물가 상승률이 3.6%까지 오른 뒤 내년 중반에 2% 선으로 내려갈 것이라고 봤다. 신흥국 물가는 같은 기간 6.8%까지 올랐다가 내년 4% 언저리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IMF는 “글로벌 공급망과 원자재 가격 변동이 관건”이라며 “불확실성이 상당하다”고 적시했다.

뉴욕(미국)=조재길 한국경제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