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에도 입주 기업 12% 증가…임대료부터 관리비까지 무료로 지원

[스페셜 리포트] ‘혁신 성지’ 판교밸리에서 본 미래
스타트업캠퍼스 전경. 현재 총 70개 스타트업이 입주하며 유니콘을 꿈꾸고 있다. /사진=이승재 기자
스타트업캠퍼스 전경. 현재 총 70개 스타트업이 입주하며 유니콘을 꿈꾸고 있다. /사진=이승재 기자
10월 18일 경기도 판교테크노벨리의 ‘스타트업캠퍼스’ 3층. 초등학생 자녀를 둔 임지혜 마키 대표의 사무 공간이 자리해 있다. 마키는 설립 2년 차에 접어든 스타트업으로, 현재 ‘깍지모모’라는 이름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도보 1km 이내의 동내에서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이웃’들을 매칭해 주는 플랫폼이다. 과거 정보기술(IT) 업체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한 경력이 있는 임 대표는 출산 후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면서 겪었던 불편했던 경험을 창업 아이템으로 삼아 도전장을 내밀었다.

판교가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된 배경은 계속해 새로 생겨나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이곳에 몰리기 때문이다. 뛰어난 경력과 능력을 가진 창업자들이 계속해 판교에 터를 잡으면서 어느덧 판교는 IT 기업뿐만 아니라 혁신 스타트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경기도에 따르면 현재 판교테크노밸리에 입주한 스타트업 수는 252개에 달한다. 전년(225개) 대비 약 12% 증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확산세 속에서도 판교를 기반으로 창업에 도전하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 같은 성과를 만들어 낸 주된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대기업 못지않은 시설 눈길경기도는 판교를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2011년부터 산하 기관인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을 앞세워 다양한 방안들을 내놓았다. 핵심은 스타트업 육성이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 기업들이 자연히 몰리도록 한 환경을 구축함으로써 글로벌 IT 산업의 중심지가 된 실리콘밸리를 롤모델로 삼은 것이다.

이를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으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들을 판교로 유인했다. 곳곳에 이들이 저렴한 임대료를 내고 업무 공간으로 활용할 ‘창업 보육 공간’을 조성하며 스타트업들이 오롯이 성장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 것이다.

현재 판교테크노밸리에는 정부와 공공 기관 등이 운영하는 여러 스타트업 입주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 지역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임대료가 싼 것이 특징이다.

그중에서도 마키가 입주해 있는 스타트업캠퍼스는 판교를 대표하는 창업 보육 공간이다. 전체 판교테크노밸리 스타트업의 약 3분에 1(70개)이 이곳에서 ‘넥스트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조원 이상의 스타트업)’을 꿈꾸고 있다. 임지혜 마키 대표는 “원래 다른 곳에에서 사무실을 쓰다가 올해 5월 스타트업캠퍼스에 입주했는데, 월세뿐만 아니라 관리비까지 모두 무료여서 비용적인 부담을 크게 덜고 사업 확장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매년 한 번씩 직원 수에 따른 수수료가 부과되는데 이 또한 최대 150만원을 넘지 않는다. 서울 지역의 한 달치 관리비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1년에 한 번만 내면 되는 셈이다.

그렇다고 공간이 낙후됐거나 협소한 것도 아니다. 10월 18일 방문한 스타트업캠퍼스 내부는 대기업의 사무실 못지않은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사무 공간은 깔끔하고 널찍했으며 세련된 인테리어로 조성된 휴게 공간과 미팅 룸도 곳곳에 마련돼 있었다.예비 창업가도 입주 가능해스타트업캠퍼스는 훌륭한 사업 아이템만 있다면 누구에게나 입주 기회가 열려 있다. 자격은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어느 정도 성장 궤도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매출이 발생한 스타트업, 투자 유치에 성공한 스타트업(투자 액수 무관)뿐만 아니라 이제 막 아이템을 확정하고 사업을 시작한 이들(예비 창업자 포함)에게까지 공간을 빌릴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 현재 입주 스타트업 70개 가운데 무려 30여 개가 여기에 속한다.

단 계속해 머무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곳을 운영하는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GBSA)은 매년 입주 스타트업의 성장 가능성과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사무 공간 임대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임대 연장이 거부되는 스타트업도 상당수인데, 이들의 빈자리는 성장 가능성이 높은 새로운 스타트업들로 다시 채워진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든 오세요”…유니콘 키우는 판교 스타트업캠퍼스
김민유 GBSA 창업지원본부 차장은 “다소 가혹할 수도 있지만 이런 시스템 덕분에 이곳에 입주한 스타트업들은 이미 정부로부터 어느 정도 실력을 검증받았다는 ‘후광 효과’를 자연스럽게 받고 있다”면서 “이를 통해 투자 유치나 타 기업과의 협업을 보다 원활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글로벌 시장 진출을 꾀하는 스타트업을 위한 무료 통·번역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고 전문가와 성공한 스타트업 대표를 초빙해 모의 기업 홍보(IR)와 성장 노하우 등을 전수하는 강연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무료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스타트업캠퍼스 외에도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기업지원허브 등 판교 내 정부와 공공 기관이 운영하는 여러 창업 보육 공간들이 비슷한 방식의 공간을 운영하며 이른바 ‘판교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많은 스타트업을 거쳐 중소·중견 규모로 성장한 기업들도 판교테크노밸리로 사무실을 이전하는 경우를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강남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과 수많은 혁신 기업들과의 교류를 위한 목적도 있지만, 다양한 정부 혜택 역시 이들이 판교를 거점으로 선택하는 이유로 지목된다.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은 판교로 자리를 옮긴 기업들을 대상으로도 다양한 지원책을 제공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임대 보증금 지원 사업’을 들 수 있다. 2019년 코스닥 상장사이자 재활 전문 헬스케어 기업인 네오펙트에 입사한 이민호(가명) 씨는 이런 혜택을 제공받은 수혜자 중 한 명이다.

타 지역에서 근무하던 그는 판교에 있는 네오펙트로 이직하게 되면서 매일 2시간 이상 걸리는 고단한 출퇴근길을 이어 갔다. 판교 인근으로 거주지를 알아봤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문제였다. 이런 와중에 그는 정부 차원에서 판교테크노밸리 입주 기업들을 대상으로 임대 보증금을 지원해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여기에 지원해 새로운 거주지에 대한 임대 보증금 1000만원을 무이자(최장 3년 후 보증금 반환 조건)로 지원받을 수 있었다.

연도현 GBSA 클러스터육성팀장은 “판교테크노밸리에서 근무하는 기업 임직원들의 근무 환경과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이런 지원책을 마련했다”며 “적극적인 지원책에 힘입어 판교테크노밸리에 입주하는 기업들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