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보호를 위한 기업 정보 공개…‘그린 워싱' 방지 위한 ESG 공시 강화 움직임

[ESG 리뷰]
해외 ESG 정보 공시 전쟁은 시작됐다
공시(disclosure)는 기업의 제반 정보를 공개적으로 게시하고 보고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은 내부적으로 취득·생산·보유·가공하고 있는 정보들이 있고 그 정보의 공개에 대해 기업은 늘 조심스럽다. 정확히 말하면 가능하면 공개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기업의 정보는 수익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되고 정보가 기밀성을 가지고 가치가 높을수록 이익 창출의 기회가 확대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보가 누출되면 기업의 사업 기회가 축소되고 평판 리스크나 소송에 휩싸일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정부나 규제 당국은 기업에 요구하는 사적 정보의 범위와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정책 실행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필수 항목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정보기술(IT), 금융 산업, 의료 산업 등은 고객을 비롯한 이해관계인의 일체의 정보를 프라이버시와 재산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정보 공개와 공적 사용에 대해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기업 내 다양하고 폭넓은 정보를 국가가 요구하기 위해서는 입법 목적에 부합하는 타당한 근거와 정교한 설명이 필요한 이유다.

EU도 미국도 ESG 정보 공시 강화 움직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정보의 공개·공시·보고에 대해서도 의회와 정부는 기존의 일반 기업 정보 규제와 같은 방침일까.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의 ESG 정보 공시 요구를 보면 그간의 입법 방향과는 반대로 오히려 기업에 가능한 한 많은 정보를 디테일하게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ESG 활동은 외부에 수치로 공표되지 않는 비재무 성과여서 계량화가 어렵고 탄소 배출량이나 인력 다양성 비율 등은 모두 제조 공정이나 인사 관리 등과 맞물려 민감한 정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EU 및 미국 의회와 정부는 예외없이 민감 정보를 외부에 가감없이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EU는 2018년 3월 ‘지속 가능 금융 행동 계획(Action Plan : Financing Sustainable Growth) 10대 계획을 발표했다. 그중 두 가지 계획인 ‘기관투자가와 자산 운용사의 지속 가능성 의무(sustainability duties) 규정’과 ‘지속 가능성 공시 및 회계 규정 강화’가 EU 택소노미, CSRD, SFDR 등이 정비되는 주요 근거가 됐다.

2021년 4월 EU는 비재무 정보 보고 지침(NFRD : Non-Financial Reporting Directive)’을 개정해 ‘기업 지속 가능성 보고 지침(CSRD : Corporate Sustainability Reporting Directive)’을 발효했다. 기업의 보고 내용은 지속 가능성과 관련한 △비즈니스 모델과 전략 △목표와 진전 △경영진의 역할 △정책 △실사 과정, 부정적 영향 및 방지책 △주요 위험 △공시에 적합한 지표 등이다.

EU는 2021년 3월부터 시행된 ‘지속 가능 금융 공시 규정(SFDR : 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으로 EU 역내 금융회사가 투자 상품과 관련한 지속 가능성 정보의 공시를 의무화하도록 시행했다. EU는 CSRD와 SFDR을 통해 기업 혹은 금융회사가 자사의 지속 가능성 정보 혹은 투자 상품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게 해 그린 워싱을 방지하고 금융회사의 자금이 ESG와 부합돼 투명하게 ESG 투자에 유입되도록 강하게 유도하고 있다.

2020년 7월 도입된 ‘EU 분류 체계 규정(EU Taxonomy Regulation)’과 2021년 3월 EU 의회가 채택한 ‘기업 실사 지침안(European Parliament Resolution on Corporate Due Diligence and Corporate Accountability)’은 CSRD와 SFDR과 함께 상호 보완하고 효력을 강화하면서 현재 EU ESG 정보 공개의 축을 이루고 있다.

한편 미국의 ESG 공시 법안을 보면 우선 주 단위에서는 ‘기후 기업 책임법(CCAA : Climate Corporate Accountability Act)’이 독보적이다. 이 법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사업을 하고 연간 총수익 10억 달러 이상 수익을 올린 기업에 모든 온실가스 배출량(Scope 1, 2, 3)을 공개하고 이러한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과학 기반 목표를 설정하도록 요구하는 미국 최초의 법률이다. 기업의 ESG 정보 공개에 관한 주 단위의 입법이지만 캘리포니아 주의 위상과 법률의 포괄성에 비춰 보면 향후 다른 주 법에도 유사 법률이 생길 것이다. 또한 캘리포니아 주에 소재하고 있는 미국 기업들이 많아 본사 소재지와 관계없이 상당히 많은 기업이 그 대상이 되면서 사실상 연방법과 같은 효과를 거둘 것이다.

연방 정부 단위 입법 행위로서는 2021년 3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기후 공시 및 ESG 투자 관련 위법 행위를 점검하는 태스크포스를 발족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1년 5월 ‘기후 관련 금융 위험에 관한 행정 명령(Executive Order on Climate-Related Financial Risk)’을 발표했다. 이런 개별적인 조치를 넘어 ‘기업 지배 구조 개선 및 투자자 보호에 관한 법률(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 and Investor Protection Act)’이 2021년 6월 하원을 통과한 것은 미국 ESG 공시 법제화에 큰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이 법률은 ‘기후 위험 공시법(CRDA : Climate Risk Disclosure Act)’ 등 11개의 세부 주제로 이뤄져 있고 그중 ‘ESG 공시 단순화법(ESG Disclosure Simplification Act)’이 가장 주목할 ESG 공시 법안이다. EDSA는 미국의 상장 기업에 ESG 공시 항목·지표(metrics)와 비즈니스 전략 간의 연관성 등에 대해 매년 SEC에 자사의 ESG 정보를 상세하게 공개하도록 하게 돼 있다. 현재 상원 통과 가능성은 낮지만 바이든 정부의 향후 정책에 비춰 보면 ESG 정보 공개 요구에 대한 촉발제가 될 것이다.

EU와 미국의 법제 경과를 보면 EU는 금융회사가 지속 가능 정보 공개로 ESG를 투자 측면에서 촉진하는 반면 미국은 SEC와 행정명령 등을 통해 ESG 자체의 실현을 위한 정보 공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런데 양국의 ESG 정보 공시 의무화에 우려가 없을 수 없다. 물론 투자자 등 이해관계인들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ESG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규제 당국에 강한 요구를 하고 있고 정책 당국도 이에 부응하며 새로운 입법을 추진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하지만 EU와 미국의 ESG 정보 공개에 관한 추진 경과를 보면 기업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데이터 정리가 필요하고 더욱이 단순히 정보 공개뿐만 아니라 매트릭스와 함께 ESG 활동 계획이나 조치까지 함께 보고하게 돼 있어 기업의 시스템이 아예 ESG 중심으로 전환돼야 할 정도다.

‘그린 워싱’ 방지,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 공개 필수

ESG 투자 열풍과 사회적 관심에 따라 그린 워싱 방지를 위해 이해관계인들에게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 공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정보 공개 규제 법률들이 기업의 활동을 질식시켜서는 안 된다. 정보 공개는 기업이 수행했거나 수행할 것이 확실한 경영 활동을 공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EU와 미국의 입법 동향은 ESG를 명분으로 기업 내 정보를 과거 실적과 미래 계획까지 모두 공개하도록 해 기업의 위험 노출도를 상당히 높이고 있는 측면도 있다.

더욱이 EU와 미국이 경쟁적으로 글로벌 스탠더드를 선점하기 위해 ESG 정보 공시 법규를 제정하고 있어 그 와중에 제3국의 기업들에 대한 부작용이 크게 우려된다. 마차가 말을 끄는 모양새가 되지 않으려면 기업에 정보 공시를 통한 과도한 제재나 경영 강제보다 ESG를 선행시키고 독려할 수 있는 입법이 필요하다. EU와 미국이 ESG 항목과 지표를 신설하고 각종 ESG 자문위원회등을 만들어 기업들이 해야 할 ESG 활동을 공시 제도로 촉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기업도 아직은 ESG를 내재화하고 인프라를 구축하기에도 숨이 차다. 현재와 같은 입법 속도라면 기업이 공개 가능 정보와 공개 불가능 정보를 선별해 자체적으로 선별력을 갖출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지금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는 EU와 미국의 ESG 공시 전쟁 속에서 경영 정보를 보호하면서 규제를 피해 갈 수 있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문성후 한국ESG학회 부회장·미국 뉴욕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