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클로, 명품 디자이너 협업으로 재도약 발판…삼성전자는 ‘아저씨 폰’ 이미지 탈출

[스페셜 리포트]
11월 12일 서울 주요 도심에 있는 유니클로 매장 곳곳에서 오픈 전부터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부쩍 쌀쌀해진 날씨 속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 모여 장사진을 이루게 된 배경은 유니클로가 이날 출시를 예고한 ‘플러스 제이(+J)’ 의류를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J는 유니클로가 독일 출신의 유명 디자이너 질 샌더와 ‘협업’해 만든 컬렉션 제품이다.

매장의 문이 열리자마자 유니클로 내부에 제품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고 준비한 제품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유니클로에 따르면 현재 +J의 겨울 아우터 제품은 거의 모든 재고가 소진됐다. 패션업계에서는 “무너져 가던 유니클로가 협업을 앞세워 재반등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J가 출시된 11월 12일 서울 시내 한 유니클로 매장에 오픈전부터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J가 출시된 11월 12일 서울 시내 한 유니클로 매장에 오픈전부터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업계를 막론하고 ‘컬래버레이션(협업) 제품’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유니클로처럼 패션 기업들이 활발하게 선보였던 협업은 어느덧 유통·식품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에까지 번지며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이종·동종업계 구분 없이 다양한 기업들이 손을 맞잡고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제품을 선보이며 브랜드 인지도 제고와 매출 증대를 꾀하고 있다. 이런 방식이 효과를 보이자 급기야 최근 들어서는 ‘기술의 진보’에만 주력하던 전자업계에까지 활발한 협업 제품 출시가 이어지고 있다

‘협업’이라는 트렌드를 만들어 낸 것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다. 이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지갑을 여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고가의 명품도 큰 고민 없이 척척 구매한다. 또 한 제품에 금방 질리고 끊임없이 ‘신상 제품’을 사는 것도 특징이다. MZ세대를 두고 이른바 ‘소비의 중심 축’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배경이다.

이런 MZ세대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 기업들이 꺼내든 전략이 ‘협업’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최근의 흐름을 보면 MZ세대를 중심으로 소비 성향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만큼 기업들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내놓은 신제품의 수명 주기가 짧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존에 선보인 평범한 제품도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협업이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낼 수 있는 최고의 전략으로 떠올랐다.”

이를테면 뚜렷한 특징이 없는 기존의 자사 제품에 타사의 브랜드 로고나 디자인 철학을 조금씩 가미하는 것만으로도 신상품을 출시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이렇게 선보인 상품이 MZ세대에게 화제를 모으면 이들이 애용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제품 사진이 올라가면서 커다란 ‘바이럴 마케팅’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 기업들이 MZ세대를 사로잡을 수 있는 협업 제품 출시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들을 겨냥한 협업이 성공하면 그 효과가 얼마나 큰지는 이를 통해 성공 사례를 쓴 기업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유니클로가 대표적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확산으로 패션업계가 직격탄을 맞았지만 유니클로만은 예외인 모습이다. 협업을 앞세워 그동안 겪었던 위기는 물론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마저 극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가성비 앞세운 협업으로 돌파구 마련한국 시장에서 유니클로의 상황은 그야말로 ‘악화일로’의 연속이었다. 유니클로는 2019년께부터 고조되기 시작한 일본 불매 운동으로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한국 내 매장 수는 점차 줄었다. 180여 개에 달했던 매장은 현재 130여 개만 남았다. 자연히 실적도 적자(2020년 기준)로 돌아섰다.

위기를 극복한 계기는 ‘협업’이었다. 유니클로는 2009년 당시 한국에서 처음 질 샌더 디자이너와의 협업 제품을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지난해 말 다시 +J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반등의 첫 단추를 끼웠다.

10년 만에 출시된 +J의 론칭 소식에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던 유니클로의 매장이 인파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제품은 순식간에 완판됐다. 그 무엇보다 약 1년 넘게 한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금기’처럼 여겨졌던 자사 제품 구매가 이를 계기를 어느 정도 허물어 낸 점에서 +J 제품의 흥행이 갖는 의미는 더욱 컸다.

+J의 매력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값에 명품 브랜드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디자이너 질 샌더가 자신의 이름을 따 만든 명품 브랜드 ‘질 샌더’는 일반적인 겨울 외투 제품이더라도 수백만원이 넘는다. 이런 그가 디자인한 외투 등을 유니클로는 10~30만원대에 선보여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소비자들이 몰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올해도 협업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질 샌더 디자이너와 추가로 겨울 신제품을 선보였고 이에 앞서 지난 10월에는 아우터 한 벌에 300만원이 넘는 ‘화이트마운티니어링’과 함께 만든 제품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을 줄 세우기도 했다.
유니클로가 이번에 선보인 +J 겨울 아우터.   사진=유니클로 제공
유니클로가 이번에 선보인 +J 겨울 아우터. 사진=유니클로 제공
성공적인 협업을 통해 올해 유니클로의 한국 내 실적은 흑자 전환이 유력해 보인다. 여전히 불매 운동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다른 일본 기업들과 사뭇 대조된다.

식품업계는 전 업종에 걸쳐 ‘협업’ 바람이 가장 거세게 부는 분야로 지목된다. 하루가 멀다고 이색적이고 재미있는 협업 상품이 쏟아지고 있다. 협업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말까지 등장할 정도다.

식품업계가 협업에 열을 올리는 주된 목적은 MZ세대 사이에서 브랜드가 잊히는 것을 막는 데 있다. 한국의 주요 식품 기업들은 대부분 업력이 50년이 넘는다. 오래전 출시된 제품들이 꾸준하게 인기를 끌며 수십년 넘도록 ‘실적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다. 문제는 흘러가는 세월과 함께 브랜드도 점점 나이를 먹는다는 점이다.이색 협업으로 MZ세대 인지도 제고 MZ세대와 같은 젊은층에게 이들이 수십년 전부터 선보인 제품들의 인지도는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내놓은 해법이 바로 협업이다.

이는 현재 업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협업 제품을 선보이는 기업들의 면면에서 잘 나타난다. 빙그레와 오뚜기가 그 주인공인데 두 기업 모두 5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또 수많은 스테디셀러 제품들을 보유 중이기도 한데 이들의 최근 행보를 보면 거침이 없다. 두 회사 모두 전혀 생각지 못한 기업들과의 협업을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화제를 모으며 이른바 ‘협업 명가’라는 별명까지 얻고 있다.

먼저 빙그레는 메로나·비비빅·붕어싸만코 등 대표 제품들을 활용해 다양한 이종 기업들과 협업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메로나는 하이트진로의 참이슬과 함께 ‘메로나에 이슬’이라는 소주를 선보이며 품절 대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 휠라와 같은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가방과 모자 등을 내놓하 MZ세대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빙그레 캔디바와 휠라가 협업한 ‘휠라X빙그레 캔디바 콜라보 컬렉션’ 백팩.    사진=빙그레 제공
빙그레 캔디바와 휠라가 협업한 ‘휠라X빙그레 캔디바 콜라보 컬렉션’ 백팩. 사진=빙그레 제공
빙그레 관계자는 “빙그레는 유독 오래된 브랜드들을 많이 갖고 있는데 이들이 갖고 있는 아이덴티티를 새롭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맛에 변화를 주는 것도 식상한 일이 됐다. 따라서 이종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재미있고 신선한 제품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MZ세대에게 브랜드를 알리기로 방향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오뚜기도 주력 상품인 진라면으로 보드게임을 만드는가 하면 자사 스테디셀러인 ‘열라면’과 ‘진짬뽕’을 조합한 ‘열라짬뽕’을 출시하는 등 이색 제품 판매에 나섰다.

“제품이 얼마나 판매되는지보다 MZ세대들에게 오뚜기가 갖고 있는 브랜드들을 알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재미있는 협업 상품을 소개하는데 이런 점들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오뚜기 관계자는 말했다.

얼마 전에는 이런 두 기업이 함께 협업 제품을 내놓아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빙그레의 스낵 제품인 꽃게랑을 오뚜기의 라면으로, 오뚜기의 라면 제품인 참깨라면을 빙그레의 스낵으로 출시한 것이다.
오뚜기는 보드게임 전문기업 아스모디와 협업해 '진라면 보드게임'도 출시했다. 오뚜기 라면 브랜드 5종(진라면, 진짬뽕, 진짜장, 채황, 오동통면)을 기반으로 만들었으며, 실제 진라면 봉지면과 패키지가 비슷하다는 특징을 가졌다.    사진=오뚜기 제공
오뚜기는 보드게임 전문기업 아스모디와 협업해 '진라면 보드게임'도 출시했다. 오뚜기 라면 브랜드 5종(진라면, 진짬뽕, 진짜장, 채황, 오동통면)을 기반으로 만들었으며, 실제 진라면 봉지면과 패키지가 비슷하다는 특징을 가졌다. 사진=오뚜기 제공
두 기업의 협업 행보 또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이들이 선보인 이색 협업 제품은 SNS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이 됐다. 브랜드를 알리겠다는 협업의 목적을 이룬 셈이다.

해들 거듭할수록 점포 수가 꾸준히 증가하며 경쟁이 치열해지는 편의점업계에서도 협업 제품이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로 거듭났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체들이 자사 플랫폼에서만 시청할 수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 확보에 주력하는 것과 비슷하다.

특히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CU는 경쟁 업체들이 고전하는 와중에도 가파른 매출 상승세를 기록 중인데 여기에는 협업 제품이 크게 기여했다는 분석이다.협업이 탄생시킨 곰표 맥주 돌풍CU의 협업 성공은 MZ세대에게 생소할 수 있는 ‘오리지널 브랜드를 재해석’한 것이 주효했다. 밀가루로 유명한 대한제분의 곰표 맥주를 비롯해 구두약 업체인 말표와 협업한 흑맥주 등 기발한 네이밍을 앞세워 MZ세대에게 호기심과 재미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특히 그중에서 곰표 맥주는 올해 들어 전통의 강호들을 꺾고 국산 및 수입 맥주를 통틀어 매출 1위(CU 편의점 기준)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편의점 맥주 시장에서 대형 제조사 제품들이 1위에 오르지 못한 것은 올해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곰표 맥주는 여전히 식지 않는 인기를 누리며 누적 판매량 2500만 개를 돌파했다. CU 관계자는 “후속작으로 선보인 말표흑맥주 그리고 백양 맥주 등도 인기를 끌며 전년 대비 CU의 수제 맥주 판매량이 3배나 급증했다”고 말했다.
곰표, 말표 맥주 등 ‘오리지널 브랜드를 재해석'한 제품들이 히트를 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CU에 협업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사진=BGF리테일 제공
곰표, 말표 맥주 등 ‘오리지널 브랜드를 재해석'한 제품들이 히트를 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CU에 협업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사진=BGF리테일 제공
곰표 맥주의 성공 등에 따라 CU는 협업하자는 기업들의 ‘러브콜’이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도 누리고 있다. CU 매장에 브랜드가 노출되면 MZ세대에게 인기를 끈다는 ‘소문’이 퍼졌다.

현재 은행·보험·제약·게임·해외 관광청까지 다양한 업종에서 MZ세대를 타깃으로 한 협업 상품 개발 문의가 계속해 들어오고 있고 차별화된 이색 상품 출시를 논의 중이다.

협업이 MZ세대에게 브랜드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사례들이 늘어나면서 오로지 제품의 혁신에만 주력해 왔던 전자 기업들마저 협업에 눈을 돌리고 나섰다. 전자업계에서는 갤럭시 시리즈를 앞세운 삼성전자의 행보가 눈에 띈다.
삼성전자가 톰 브라운과 협업해 한정판으로 선보인  갤럭시Z폴드3 톰브라운 에디션.
삼성전자가 톰 브라운과 협업해 한정판으로 선보인 갤럭시Z폴드3 톰브라운 에디션.
삼성전자의 오랜 고민 중 하나는 바로 애플의 아이폰과 비교되는 갤럭시의 이미지였다. 아이폰이 MZ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는 받면 갤럭시는 중·장년층에게 높은 선호도를 보이며 일명 ‘아저씨 폰’으로까지 불리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이런 이미지를 벗겨 내기 위해 메종키츠네·톰브라운 등과의 협업을 통해 스마트폰·이어폰·워치 등에서 한정판 제품을 선보이며 단숨에 갤럭시를 ‘핫한’ 브랜드로 떠오르게 만들었다.
유니클로부터 삼성전자까지...컬래버레이션으로 MZ세대에 스며든 ‘협업의 장인들’
삼성전자 관계자는 “MZ세대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은 명품 패션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갤럭시가 갖고 있는 이미지를 제고하면서 해당 브랜드의 충성 고객들까지 끌어들이는 시너지를 내는 것이 협업의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전략은 적중했다. 삼성전자가 톰브라운과 협업해 지난 8월 출시한 '갤럭시Z폴드3 톰브라운' 에디션은 약 400만원대의 가격에 한정판으로 발매했다. 삼성전자는 구매 응모를 통해 당첨된 이들에게만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 제품의 판매를 진행했는데 수천명의 소비자가 응모에 몰리면서 홈페이지가 한때 먹통이 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현재 MZ세대들이 자주 이용하는 ‘크림’과 같은 한정판 거래 사이트에서 700만원 이상의 리셀 가격을 형성할 만큼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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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살 찌푸리게 하는 협업은 오히려 악영향
실제 우유팩과 유사해 논란이 됐던 바디워시 제품. 사진=한국경제신문
실제 우유팩과 유사해 논란이 됐던 바디워시 제품. 사진=한국경제신문
‘협업’이 인기를 끌면서 이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지나치게 재미를 중시한 협업 제품 출시에 집중하다 보니 기대했던 효과 대신 기업 이미지에 오히려 악영향만 미친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유 팩에 든 보디워시, 딱풀 모양의 캔디, 구두약 모양의 초콜릿, 유성매직을 본떠 만든 음료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 제품들은 출시 초반 화제를 모으며 반짝 인기를 누렸지만 이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생활용품과 이를 본뜬 식품이 서로 구별되지 않는 만큼 글을 읽을 수 없는 어린아이나 노약자들에게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런 지적이 빗발치자 결국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기도 했다.

생활 화학 제품을 식품으로 오인해 섭취할 우려가 있는 제품들의 경우 구체적인 금지 품목을 명시하는 하위 규정을 마련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나름 야심차게 만든 해당 제품들은 결국 빛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게 됐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 같은 제품들은 브랜드의 신뢰에도 타격을 줄 수도 있다”면서 “협업은 잘못할 경우에는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