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 등 코로나19 백신 기술 공유 동의 안 해
치료제 특허 면제는 WTO 특허제도 유지 위한 포석

[경제 돋보기]
코로나19 알약 치료제 특허 면제의 이면 [정인교의 경제 돋보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월 5일 글로벌 제약사 화이자가 개발한 경구용 치료제 팍스로비드(Paxlovid)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치료에 효능이 있고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는 대로 알약으로 코로나19 감염자 치료에 나설 것이고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터널의 끝이 보인다고 강조했다.

알약 형태의 치료제는 주사제에 비해 복용과 보관이 쉽고 비용이 싸다는 점에서 코로나19 극복의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화이자에 앞서 지난 10월 제약사 머크(MSD)가 개발한 몰누피라비르(Molnupiravir)라는 코로나19 치료용 알약은 FDA에서 시판 승인을 받았다. 머크나 화이자 모두 미국 제약사이고 코로나19 감염자의 입원 및 사망 위험 측면에서 화이자 치료제 팍스로비드의 효과가 머크의 몰누피라비르보다 훨씬 더 높으면서 가격도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월 머크는 로열티 면제를 105개 개도국에 허용했다. 이번에 화이자도 세계보건기구(WHO)를 통해 세계 중저 개발국 95개국(세계 인구의 53% 거주)에 대해 코로나19 치료제의 제네릭(복제약) 제조를 위한 자발적 라이선스를 허용하기로 했다. 백신 접종 속도가 느리고 팬데믹 위험성이 상존하고 있는 개도국들은 라이선스 생산으로 낮은 비용에 다량의 치료제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라이선스 생산이 허용된 국가는 대부분 아프리카 또는 아시아에 있는 반면 심각한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했던 브라질·중국·러시아·아르헨티나·말레이시아·태국 등은 해당되지 않는다. 브라질은 요건을 갖춘 제약사가 제네릭을 생산해 수출할 수 있지만 국내 시판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국경없는 의사회 등 비정부 단체(NGO)들은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화이자의 조치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치료제 복제약 생산에는 너그러운 제약사들이 코로나19 백신 기술 공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화이자를 포함한 메신저 방식(mRNA)의 백신을 개발한 제약사들은 세계무역기구(WTO)와 WHO 등의 요구에도 백신 특허 면제 논의보다 백신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수급이 더 중요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수도 프리토리아 소재 WHO 아프리카 지부는 제약 회사에 mRNA 백신 지침과 기술을 온라인으로 공유하도록 초대했지만 어떤 백신 기업도 참여하지 않았다.

백신과 달리 치료제에 대해 제약사들이 관대한 것은 복합적인 이슈가 작용하고 있다. 먼저 현재 WTO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백신 특허 면제에 대한 대응 조치로 제약사들이 선제적으로 치료약 특허의 무상 공여를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둘째, 기술적인 측면이 작용하고 있다. 알약으로 만들 수 있다면 제약 레시피만 파악하면 웬만한 제약 기업은 복제약을 만들 수 있다. 셋째, 현재 WTO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치료제 개발 제약사들이 WTO 지식재산권보호협정(TRIPS)을 통해 특허 보호를 받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일 수 있다.

넷째, 알약 치료제 특허 공유는 글로벌 제약사들이 현재의 WTO TRIPS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지를 시사한다. 저개발국에 대해 특허 면제를 허용하면서도 아르헨티나·터키·태국 등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 국가를 포함하지 않은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 국가에 대해서는 의약품 특허에 대한 강제 실시권과 유연성(flexibility) 등 현재의 WTO 규범에 따를 것을 주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브라질 등에 대해 수출용 치료제 생산에는 무상 특허를 허용하되 국내 내수용 판매를 금지했다는 점은 현재의 WTO 규범상의 규정을 적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mRNA 기반 백신의 특수성이다. 이는 알약 형태의 일반적인 제약과는 차원이 다른 고난도 바이오 기술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매우 엄격한 조건하에 생산이 가능하다. 공개된 특허만으로는 mRNA 백신을 만들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을 명분으로 남아공과 인도가 특허 외에 노하우 전수를 요구하는 배경이다. 이는 영업 기밀을 보호하도록 한 WTO 규정을 변경하지 않는 한 가능하지 않다. 종합하면 글로벌 제약사들은 WTO 특허 제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코로나19 치료제 알약에 대한 특허를 면제한 것으로 봐야 한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