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억제책에도 부채 총액 증가 불가피…자산 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 열어두고 대응해야

[머니 인사이트]
사진=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1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사진=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1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은행 제공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한국의 가계 부채는 1845조원을 기록했다. 올해 3분기에만 가계 부채가 37조원 증가했는데 지난 2분기와 지난해 3분기 45조원 정도 늘어난 데 비해서는 증가 폭이 둔화됐다. 하지만 여전히 가계 부채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10%에 달하는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고 최근 금융 당국은 은행권의 대출을 중단하는 등 가계 부채 억제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개월 만에 ‘제로 금리 시대’ 종료

한국은행은 11월 기준 금리를 0.75%에서 1.00%로 인상하면서 1년 8개월 만에 ‘제로 금리 시대’가 종료됐다. 지난 8월에 이어 3개월 만에 기준 금리를 인상했고 내년에도 추가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역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가계 부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한국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빠르게 금리 인상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확대된 대규모 유동성이 자산 시장에 유입되면서 금융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은 이른바 ‘영끌’과 ‘빚투’를 통해 부동산과 주식 투자를 늘려 왔고 실물 경제의 회복 강도에 비해 자산 가격 상승 폭이 크게 나타나면서 각종 부작용에 대한 우려감이 확대됐다.

결국 최근의 가계 부채 통제는 양적 규제(대출 억제)와 가격 규제(금리 인상)가 동시에 진행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금융 당국은 가계 부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선제적이고 강력한 조치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지난 10월 ‘가계 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내년 7월과 내후년 7월로 계획돼 있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단계적 도입 시기를 6개월에서 1년 앞당겨 조기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내년 초부터 총 대출액이 2억원을 초과하는 개인은 대출 취급의 문턱이 한층 더 높아지게 된다.

금융 당국은 현재 10% 수준인 가계 부채 증가율을 2022년 4~5% 수준으로 낮추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대출을 강제로 억제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과제인 데다 의도하지 않는 풍선 효과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최근 가계 부채 통계를 보면 주택 관련 대출은 그간 정부의 각종 노력에도 불구하고 증가세가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기준 강화, 15억원 이상 주택에 대한 주택 담보 대출 전면 금지 등 강한 대출 규제 정책을 지속 도입했지만 올해 들어 9월까지 금융권의 주택 담보 대출이 100조원 이상 증가하면서 지난해 80조원 대비 증가 폭이 오히려 확대됐다. 이는 주택 매매와 전세 관련 자금 수요가 꾸준한 데다 분양 물량이 증가함에 따라 중도금 대출의 취급 규모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세 자금 대출은 한도가 높고 정부가 보증하는 상품인 데다 실수요자의 주거 안정과 관련돼 있어 공급 규모가 지속 확대되고 있다. 집단 중도금 대출과 잔금 대출 역시 주택 분양에 필수적인 요소로, 신규 주택 공급이 늘어날수록 증가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최근 주택 담보 대출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는 전세 자금 대출과 집단 대출에 대해서는 추가적으로 규제를 강화하기 어렵고 만약 무리한 억제책을 강행한다면 주택 시장의 불안 등 부작용이 크게 나타날 우려가 있어 현실적 대처가 쉽지 않다.

가계 부채, 금융 시장 복병으로 떠올라
2022년 가계 부채 2000조원 시대에 대비해야
가계 부채 분석과 관련해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규제 회피를 위한 풍선 효과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하반기 이후 금융 당국은 은행권에 대해 가계 신용 대출 취급을 억제할 것을 주문해 왔다. 주택 대출 규제의 반사 효과와 주식 시장으로의 대규모 자금 유입, 공모주 청약 열풍의 이면에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대표되는 개인 신용 대출의 급증이 동반됐기 때문이다. 규제가 본격화하면서 은행권의 신용 대출 증가 폭은 7월 이후 눈에 띄게 둔화됐다. 상반기 월평균 19조원씩 증가하던 은행 신용 대출 규모는 7~8월 5조원대로 급감했다. 하지만 문제는 은행권에서 신용 대출을 받는 것이 어려워진 개인들이 은행이 아닌 2금융권(카드사·보험사·여신전문회사 등)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 3분기 중 은행권의 신용 대출은 4조6000억원 증가한 반면 2금융권의 신용 대출 증가 폭은 11조6000억원에 달해 은행의 두 배를 넘어섰다.

대출 규제의 풍선 효과는 부동산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서울과 경기 지역 오피스텔 청약 경쟁률이 몇 백 대 1을 기록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아파트에 비해 청약 요건이 까다롭지 않고 분양권 전매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지만 LTV가 70%로 월등히 높기 때문에 대출 규제의 사각지대로 꼽힌다.

이렇게 보면 정부가 목표로 하고 있는 4~5%의 가계 부채 증가율을 내년에 달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설사 정부의 억제책들이 성공적으로 작동해 올해 분기 중 30조~40조원씩 증가하던 가계 부채 규모가 내년 20조원대로 둔화한다고 해도 현재 1845조원을 기록 중인 가계 부채 총액은 1년 후인 2022년 말쯤에는 2000조원에 달하게 된다. 지난해(2020년) 한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1933조원임을 감안하면 한국의 가계 부채는 GDP 대비 100% 수준까지 상승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스위스·덴마크·캐나다 등과 함께 가계 부채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계 부채 2000조원 시대에 대비한 연착륙 방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금융 시장 참가자들에게 중요한 부분은 가계 부채 통제를 위한 조치들이 본격화되면 그에 따른 파급 영향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1차적으로 금리 인상을 동반한 대출 억제는 금융 시장 전반, 특히 주식 시장 내 유동성 공급을 저하할 수 있는 요인이다. 2020~2021년 상반기 대규모 개인 자금이 주식 시장에 유입된 이면에는 저금리를 활용한 레버리지(대출) 효과가 크게 작용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2022년 이후의 자금 차입 여건은 과거와 달리 상당히 타이트해질 수밖에 없다.

은행권의 대출 규제 강화와 함께 금융 당국은 제2금융권에 대해서도 가계 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한 상태다. 은행에 비해 느슨하던 DSR 적용 기준을 강화하고 카드사의 장기 대출(카드론)을 DSR 산정 기준에 포함하는 등 가계 대출의 풍선 효과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가 예고돼 있다. 또한 증권사가 개인 투자자에게 공급할 수 있는 신용 한도 역시 소진되고 있어 무리한 ‘빚투’가 과거와 같이 쉽지도 않은 데다 위험성 또한 높아지고 있는 상태다.

둘째 부작용은 신용 여건의 악화 가능성이다. 금리가 상승하고 신용 공급이 축소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대출의 부실 우려가 확대될 수 있다. 물론 실물 경기가 회복 기조를 보이고는 있지만 연속적 기준 금리 인상으로 대출 금리 상승 속도가 가파른 데다 은행권뿐만 아니라 제2금융권에 대한 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신용도가 낮고 재무 건전성이 취약한 차주들은 부정적 신용 환경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앞서 살펴봤듯이 대출 규제의 지속적 풍선 효과로 인해 가계 부채의 건전성이 후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제2금융권 신용 대출은 담보가 없고 중저신용자 비율이 높아 금리 민감도와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만일 부동산 혹은 주식 시장이 조정 국면에 진입한다면 자산 가격 하락과 대출의 부실화는 부정적 상호 작용을 통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하게 된다. 신용 위험의 시그널은 항상 가장 취약한 연결 고리에서 먼저 나타난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계 부채가 주는 또 다른 부담은 탄력적 통화 정책 시행을 어렵게 한다는 점이다. 최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한국은행은 내년 1분기 추가적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하며 통화 정책 정상화의 고삐를 죄고 있다. 하지만 부채 부담이 높은 상태에서 가파른 금리 상승은 가계의 소비 여력을 축소시키고 최근 ‘위드 코로나’와 함께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내수 경기 회복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2022년에는 코로나19 국면에서 중소 상공인을 대상으로 시행되던 각종 금융 지원 조치가 종료될 것으로 보여 재정 여건이 취약한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부정적 여파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기준 금리 인상 시기를 마냥 뒤로 미룰 수도 없다. 금융 불균형 정도가 현재보다 더 심화하면 궁극적으로는 경제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최근 대내외 경기 여건 개선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재확산 조짐 등이 나타나고 있는데, 외부 환경 변화에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주요국 중앙은행과 달리 한국은행은 가계 부채라는 추가적 과제로 인해 통화 정책 운용에 제약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즉 조기 긴축 기조가 경기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고 외부 충격이 발생한다면 정책 기조의 빠른 전환이 쉽지 않다.

결국 가계 부채 이슈는 2022년 지속적으로 금융 시장 내 복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고 주식 시장을 포함한 자산 시장의 가격 변동성 확대 가능성을 충분히 열어 두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