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게임 회사 고에이테크모홀딩스 에리카와 회장·사장…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절친이기도
[글로벌 현장] 퀴즈. ‘삼국지’, ‘대항해 시대’, ‘진삼국무쌍’ 등 게임을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전설의 명작을 개발한 사람은 누구일까.1번, 전설적인 게임 프로그래머. 2번, 공부보다 밴드 활동에 더 열심이었던 경영학도. 3번,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절친인 전문 투자가. 4번, 염료 도매 회사 사장.
정답은 1번을 제외한 모두다. 이 게임들은 고에이테크모홀딩스라는 일본 게임 회사가 개발했다. 게임 팬들에게는 ‘고에이(KOEI)’라는 영어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고에이는 에리카와 게이코 회장과 에리카와 요이치 사장 부부가 공동으로 경영한다.
손정의 회장이 인정한 전문 투자가
고에이는 남편인 에리카와 요이치 사장이 부친에게 물려받은 도치기현의 염료 도매 회사의 이름이었다. 요이치 사장은 일본의 사학 명문인 게이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문과생이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보다 밴드 활동에 더 열심이었다. 부인인 게이코 회장은 다마미술대 디자인과를 졸업했다.
게이코 회장은 일본 최고 부자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과 40년지기 절친이기도 하다. 손 회장을 ‘손짱’이라고 부르는 몇 안되는 인물이다. 작년에는 소프트뱅크그룹의 사외이사로 영입됐다.
게이코 회장이 1200억 엔(약 1조3000억원)의 자금을 굴리는 전문 투자가이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판매되는 투자신탁 5300여 개 가운데 순자산 잔액이 1200억 엔 이상인 것은 약 100개에 불과하다. 게이코 회장은 일본에서 상위 1.8% 규모의 초대형 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인 셈이다.
지난해 고에이의 순익 296억 엔 가운데 게이코 회장이 투자로 벌어들인 이익은 82억 엔에 달한다. 지난 수년간 고에이 순익의 3분의 1 정도가 투자 이익에서 나왔다. 일찌감치 GAFA(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는 물론 테슬라에 거액을 투자했을 정도로 선구안이 뛰어난 투자가다.
문과 출신 남편과 미대 출신 부인이 만나 어떻게 세계적인 게임 회사를 만들었을까. 1970년대 말 에리카와 부부가 가업을 물려받았을 때 염료 사업은 이미 중국에 밀려난 사양 산업이었다. 게이코 회장도 지난 11월 16일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망할 줄 알았지만 부친의 한이 될까봐 물려받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게이코 회장이 요이치 사장의 서른 살 생일 선물로 마련한 컴퓨터다. 요이치 사장은 어릴 때부터 자기만의 게임을 혼자 만들어 노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대학 시절에도 고다쓰(일본식 난방 기구)를 뒤집어 물건들을 늘어놓고 경영하는 게임을 만들곤 했다. 밴드 활동에 미쳐 공부는 뒷전이었지만 수학 하나만큼은 잘했다.
그 덕분에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으로 배웠고 곧 가업을 위한 재고 관리 프로그램, 투자를 좋아하는 게이코 회장을 위한 경영 게임 등을 만들었다. 하지만 역시 며칠 밤을 새워 가며 몰두한 것은 자신이 가지고 놀 게임이었다. 역사 시뮬레이션 게임에 손을 댄 것은 요이치 사장이 원래 역사책 읽기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1981년 요이치 사장이 개발한 일본 전국시대 배경의 ‘카와나카지마합전’은 세계 최초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기록된다. 고에이를 세계적인 게임 회사로 성장하게 만든 ‘신장의 야망’, ‘삼국지’ 시리즈의 모태이기도 했다.
요이치 사장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를 사업으로 키운 것은 게이코 회장이었다. 게이코 회장은 방송국과 백화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도매 거래의 원리, 재고 관리 등 경영의 기초를 꿰고 있었다.
손정의 회장을 알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당시 소프트뱅크는 소프트웨어 도매 사업이 주력이었다. 손 회장과의 첫 만남은 악연이었다. 손 회장이 도매가 마진율을 17%까지 후려쳤기 때문이다. 게이코 회장은 마진율을 55% 보장해 주지 않으면 거래를 못한다고 버텼고 결국은 손 회장이 두 손을 들었다. 이렇게 교류가 시작된 지 40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절친이 됐다.
게이코 회장은 “나보다 나이가 어려 귀여운 면도 있다”며 “이상한 일을 벌이거나 능글맞은 짓을 해도 곧바로 알아차린다”고 말했다.
별명은 ‘참치’…70살에도 팔팔한 현역
부부는 올해로 일흔이 됐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요이치 사장은 지금도 직접 게임 개발을 진두지휘한다. 게이코 회장은 투자뿐만 아니라 게임 그래픽, 인사, 사옥 디자인까지 하지 않는 영역이 없다. 게이코 회장의 별명은 ‘마구로(참치)’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붙은 별명이다.
고에이는 게임 캐릭터 모델링, 특히 여성 캐릭터 제작은 경쟁사조차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인정받는다. 캐릭터를 워낙 잘 만드니까 ‘원피스’ 같은 유명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는 게임의 제작도 자주 의뢰받는다. 이러한 컬래버레이션(협업) 사업이 고에이 주 수익원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미대 출신인 게이코 회장이 캐릭터 후보 디자인 한 장 한 장을 직접 다 챙기기 때문이라고 고에이 측은 설명했다.
고에이는 우량 종목만 상장하는 도쿄 증시 1부 시장 상장사다. 시가 총액(약 8000억 엔) 기준으로 반다이남코에 이어 일본 2위 게임 회사다. 매출 650억 엔, 당기순이익 250억 엔을 꾸준히 올리는 알짜 회사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서는 매년 사상 최대 규모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올리고 있다. 올해도 매출 650억 엔, 영업이익 245억 엔, 당기순이익 265억 엔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10년 전까지 고에이는 약점도 많은 게임 회사였다. 게임 시장의 주류가 모바일과 온라인 게임으로 넘어갔는데 고에이는 PC와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용 콘솔 게임(패키지 게임)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았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비율이 절대적인 것도 약점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에이는 2009년 4월 ‘캡틴 츠바사’, ‘테크모축구’ 등 액션 게임에 강점을 가진 테크모를 합병한다. 현재 회사 이름이 고에이테크모홀딩스가 된 배경이다.
온라인과 모바일 게임도 집중적으로 늘렸다. 2018년 2분기 20억 엔 수준이었던 온라인 모바일 게임 매출이 올해 2~3분기에 90억 엔씩으로 3년 새 4.5배 늘었다. 올 회계연도 상반기 고에이의 게임 부문 매출 352억 엔 가운데 온라인 모바일 게임 부문의 매출은 178억 엔으로 170억 엔인 PC와 콘솔 게임 매출과 절반씩이었다.
고에이는 매년 실적이 최고치를 기록하는 이유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의 ‘집콕 수요’ 덕분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회사의 약점이었던 액션 게임과 슈팅 게임, 온라인 모바일 게임을 강화한 결과라는 것이다. 글로벌화와 수익 다변화가 결실을 거두고 있기 때문에 실적과 주가 향상도 이제부터라고 회사 측은 자신했다.
고에이는 게임 캐릭터들을 지식재산권을 활용해 글로벌화와 다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삼국지’의 유비·관우·장비나 초선 같은 여성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액션 게임을 개발하고 다른 콘텐츠 회사와 협력해 고에이 게임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나 음악·식품·출판 사업을 벌인다.
중국과 한국 게임 회사에 라이선스를 팔기도 한다. 올해 초에는 한국과 대만의 스마트폰 게임 회사가 고에이의 ‘삼국지’ 캐릭터를 활용해 ‘삼국지 폐도 전략판’을 선보였다. 라이선스 로열티는 고스란히 고에이의 순익이 된다.
그 결과 고에이의 수익은 신규 게임 수익, 시리즈 게임의 수익, 콘텐츠 제작사와의 컬래버레이션 사업 수익, 지식재산권으로 벌어들이는 로열티 수입 등 4층 구조가 됐다. 탄탄한 사업 모델을 바탕으로 요이치 사장은 “2023년까지 매출 900억 엔, 영업이익 300억 엔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도쿄(일본)=정영효 한국경제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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