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화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복수의 협정으로 구성 전망

[경제 돋보기]
급변하는 아시아·태평양 통상 질서 [강문성의 경제 돋보기]
조금씩 조금씩 베일이 벗겨지고 있다. 출범 이후 대중 견제 전략에 변죽만 울리던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11월 중순부터 좀 더 가시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고 노동·인권·환경 등 새로운 이슈를 통상 문제와 연계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0월 27일 온라인으로 개최된 동아시아 정상회의에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economic framework)’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구체적인 협의체를 언급한 순간이다. 그 이후 11월 중순 지나 레이몬도 상무부 장관과 캐슬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일본·말레이시아·싱가포르·한국을 차례로 순방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정부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아직 정부가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공급망, 디지털 통상, 반도체 등 다양한 영역을 중심으로 2022년 초 협상을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는 미 의회와 연구소 등 국내 전문가들로부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 리더십 회복과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통상 정책 이행을 촉구받아 왔다. 심지어 일본과 호주로부터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좀 더 적극적으로 관여할 것을 요청받았다. 내년 중간 선거를 앞두고 미 의회로부터 ‘무역증진권한(TPA)’을 받기 어려운 미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가 기존의 전통적인 무역 협정과는 다를 것이고 복수의 협정을 포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포괄적인 자유무역협정(FTA)의 형태가 아니라 공급망, 디지털 통상, 반도체 등 부문별 접근 방법(sectoral approach)을 통해 복수의 협정을 구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 행정부는 이러한 경제 프레임워크의 추진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전문가는 없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통상 질서 상황이 매우 급변하고 있고 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발효된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CPTPP)’에 올해 들어 영국이 가입 신청서를 제출하고 협상 단계로 전환한 이후 중국과 대만이 순차적으로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최근에는 태국 역시 가입 신청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과 대만의 가입 신청서 제출과 영국의 협상 개시로 판이 점점 커지는 형국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 중심 전략(Pivot to Asia)’의 핵심 정책 과제인 ‘환태평양 경제동반자 협정(TPP)’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 탈퇴 선언되면서 오바마 행정부의 구상과 노력은 물거품이 돼 버렸다. 그 이후 일본·캐나다·호주 등의 주도 아래 협상을 마무리하고 2018년 12월 발효한 것이 CPTPP다.

중국이 의도하는 바는 동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의 무역 규범 설립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동시에 미국과 동맹국의 중국 견제 의도를 사전에 무력화하는 것이다. 대만의 기습적인 가입 신청서 제출로 양안 관계가 급속히 악화해 CPTPP를 둘러싼 국제 정치 역학 관계가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과의 긴밀한 협조 아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함과 동시에 중국의 CPTPP 가입 신청으로 중국의 눈치 볼 것 없이 CPTPP 가입을 신청할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를 동시에 추진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강문성 고려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