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패러다임 대전환…시공간 제약 없이 일하는 방식이 대세 될 가능성 높아

[경영 전략]
성큼 다가온 ‘하이브리드 워크’ 시대 [김민경의 경영 전략]
중견기업 마케팅팀에 근무하는 김 모 과장은 오늘도 빽빽한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집에서 50분 거리의 사무실로 출근한다. 촘촘히 배치된 책상이 가득한 사무실에 도착하면 이미 진이 다 빠졌지만 정신을 차리고 9시부터 업무를 시작해 본다. 후배 직원에게 업무를 지시하고 위에 보고할 자료를 준비하며 오전을 보낸다. 점심시간이 되면 ‘오늘은 또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면서 밖으로 나가보지만 가는 식당마다 근처 직장인들이 줄을 길게 서 있다. 간신히 들어간 식당에서 재빨리 식사를 마치고 동료들과 커피 한잔에 가벼운 수다를 떨다 사무실로 들어온다. 오후에는 회의에 참여하고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보니 저녁 8시가 됐다. 내일은 꼭 정시 퇴근하고 운동하러 가겠다는 마음을 먹으며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길에 오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기 전 직장인의 하루를 묘사했다면 이런 내용이지 않았을까.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한 지 2년을 보내며 완전히 변화된 세상을 살고 있는 2021년 12월에는 직장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바꿔 쓴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일어나자마자 동네 한 바퀴를 부지런히 뛰고 온 김 모 과장. 거실 한쪽에 마련한 책상으로 출근한다. 업무용 메신저에 로그인하고 화상으로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늘 해야 할 일과 협조 사항을 알린다. 점심시간에 간단하게 밥을 차려 먹고 산책 겸 얼른 동네 카페에 가서 원두를 갈아온다. 오후에는 몇 건의 화상 회의에 참여했다. 복잡한 내용을 논의하는 상황에서는 화면 너머의 상대에 집중하느라 대면 회의를 할 때보다 몇 배로 피곤한 것 같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다른 직원들의 요청 사항이나 질문에 대답한다. 한 공간에 있는 게 아니다 보니 가급적 최대한 빨리 소통해야 한다는 부담이 생겼다.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보니 어느덧 저녁 7시. 그래도 로그아웃이 곧 퇴근이다 보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갑작스럽게 시작된 재택근무는 삶의 질을 높여 줬다. 출퇴근 시간이 줄면서 아침과 저녁에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게다가 어떤 업무는 사무실보다 훨씬 집중하기도 좋다. 하지만 집이 곧 일터가 되면서 일과 나머지 삶의 분리가 더 어려워진 것 같다. 동료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시간도 가끔 그립다.1970년대부터 등장한 재택근무 개념이처럼 코로나19 사태는 ‘일터’와 ‘일하는 방식’에 대한 패러다임을 순식간에 바꿔 놓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재택근무는 어제오늘 나온 개념이 아니다. 원격으로 일한다는 뜻의 ‘텔레 워크(tele work)’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서나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는 말은 이미 1970년대에 나왔다.

2000년대에는 임대료가 비싼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리모트 워크(remote work)’가 등장했다. 리모트 워크는 재택근무보다 넓은 의미로, 다양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근무 형태를 말한다.

2010년 한국에서는 저출산과 고령화, 저탄소 녹생 성장, 일자리 부족 등 국가적 현안을 해결하려는 일환으로 정부가 나서 스마트 워크 활성화에 집중했다. ‘스마트 워크(smart work)’는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근무 형태다. 그리고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을 거치면서 ‘하이브리드 워크(hybrid work)’가 일의 새로운 미래로 급격히 떠오르고 있다.

‘하이브리드’가 서로 다른 것의 결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듯이 하이브리드 워크는 시간과 공간 모두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선택해 탄력적으로 일하는 것을 말한다.

업무 시간이 동일하게 정해져 있고 일하는 공간을 선택할 수 있으면 원격 근무다. 반대로 사무실 근무가 원칙이되 업무 시간을 탄력적으로 쓰는 것은 유연 근무라고 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하이브리드 워크는 원격 근무와 유연 근무의 장점을 합쳤다고 생각하면 쉽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집·사무실 등)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이브리드 워크에 대한 경영진과 구성원들의 생각은 어떨까. 올해 초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가 전 세계에 걸쳐 다양한 산업에 있는 기업의 임원급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가 있다.
구체적인 비전 갖고 준비해야이를 살펴보면 10명 중 9명은 팬데믹 이후 하이브리드 워크 모델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무의 성격상 반드시 정해진 사무실에서 근무해야 하는 인원이 아니라면 21~80%의 시간은 사무실에서, 나머지는 원격 수행을 예상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99%의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도록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같은 시기 인적 자본 컨설팅 기업 리이매진워크(Reimagine Work)는 기업과 정부 소속 정규직 5000여 명을 대상으로 ‘희망하는 근무 형태’에 대해 조사했는데,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30%만이 하이브리드 워크를 원했다면 팬데믹 이후에는 하이브리드 워크를 지속하겠다는 응답이 52%로 늘어났다.

경영진과 구성원 모두 하이브리드 워크를 자연스러운 변화의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하이브리드 워크에 대한 높은 인식과 달리 시행을 위한 구체화된 비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앞서 제시한 맥킨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68%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하이브리드 워크를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 슬론 경영대학원 기업경영연구실에서 생활용품 기업 P&G의 면도기 브랜드 질레트와 함께 개발한 ‘하이브리드 워크 프레임워크’를 각 조직 상황에 맞게 적용해 볼 수 있어 간단히 소개한다.

첫째, 성과 달성을 위해 필수적인 핵심 지표를 파악하는 것이다. 질레트에서는 협업, 창의성, 민첩성, 직원 만족도, 지속적인 팀 신뢰 등의 요소를 꼽았다. 이러한 지표는 조직 또는 팀마다 전혀 다를 수 있으므로 상황에 맞게 지표와 우선순위를 정하면 된다.

둘째, 각 지표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사무실 근무 일수를 정한다. 예를 들어 질레트에서는 주5일 근무를 기준으로 할 때 ‘협업’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사무실 근무 일수를 5일이라고 정했다. ‘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사무실 근무 일수는 1일로 설정했다.

셋째, 제품의 생애 주기, 즉 아이디어-발견-출시 준비-출시까지의 4단계마다 핵심 지표의 가치를 매긴다. 점수는 1부터 6까지 줄 수 있고 가장 높은 가치라면 6을 매기는 식이다. 가령 질레트 팀이 제품의 생애 주기 중 ‘아이디어’ 단계에서 ‘협업’의 가치를 2점, ‘창의성’의 가치를 6점으로 매겼다고 해 보자. 질레트에서는 총 6개의 핵심 지표에 대해 가치 점수를 매겼고 총합은 21이 나왔다.

넷째, 각각의 핵심 지표별 사무실 근무 일수에 가치 점수를 곱한다. ‘협업’이라는 지표를 다시 보자. 사무실 근무 일수 5에 가치 점수 2를 곱하면 10이 나온다. ‘창의성’에 대해서는 사무실 근무 일수 1에 가치 점수 6을 곱해 6이 나왔다. 그러면 10과 6을 더하고 여기에 나머지 지표들에 대해 계산한 결과까지 생각해 총합을 낸다. 질레트의 총합은 65가 나왔다.
성큼 다가온 ‘하이브리드 워크’ 시대 [김민경의 경영 전략]
다섯째, 총합 65를 지표별 가치 점수의 합 21로 나누면 이것이 바로 최적의 사무실 근무 일수가 된다. 즉, 질레트에서 하이브리드 워크를 위한 최적의 사무실 근무 일수는 3.1일이 되는 것이다.

사무실 근무일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계획도 필요하다. 질레트에서는 최적의 근무 일수 3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아이디어를 냈다. 하루는 팀원들이 함께 브레인스토밍하고 협업하고 있다.

또 다른 하루는 다른 팀이나 다른 업무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중요한 이슈를 검토하고 의사 결정을 한다. 그리고 남은 하루는 직원들이 부서를 초월해 더 넓은 관계를 만들고 대화를 하는 날로 쓰는 것이다.

전략과 계획을 잘 세웠다고 하더라도 하이브리드 워크는 단기간에 안착시키기는 어려운 일이다. 시공간을 초월해 직원들이 끊김없이 몰입할 수 있는 인프라는 기본이고 성과 평가와 보상 제도에 구멍이 없는지도 계속 들여다봐야 한다.

또한 모든 구성원이 함께 지켜야 할 ‘그라운드 룰’을 바탕으로 조직마다 세부 규칙을 정비해 나가야 한다. 정보나 기회에 소외당하고 있는 직원들은 없는지, 유대감이나 소속감은 탄탄한지 살피는 것은 리더의 몫이다.

김민경 IGM세계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