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보다 인센티브로 자발적 감축 유도…“측정 없이는 관리 없다” 평소 지론 적용

[컴퍼니]
최종현학술원 이사장인 최태원 SK회장이 6일 미국 워싱턴D.C. 인근에서 열린 '2021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사진=SK
최종현학술원 이사장인 최태원 SK회장이 6일 미국 워싱턴D.C. 인근에서 열린 '2021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사진=SK
SK그룹이 12월 2일 2022년도 임원 정기 인사를 단행한 이후 최태원 SK 회장의 친환경 관련 광폭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최 회장은 미국 워싱턴D.C.에서 12월 6일 개최된 국제포럼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rans-Pacific Dialogue)’ 환영사에서 “한달 전 SK 최고경영자(CEO)들이 함께 모여 탄소에 관한 미션을 수행하기로 했다”며 “우리의 목표는 탄소 저감으로 2030년까지 탄소 2억 톤을 감축하는 것인데, 이는 세계 감축 목표량의 1%에 해당하는 매우 공격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회장은 SK그룹이 미국에서 향후 4년간 400억 달러(약 47조원)를 투자, 미국 내 탄소 저감에 기여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최 회장은 앞서 11월 2일 최종현학술원이 도쿄대와 온라인으로 공동 개최한 ‘도쿄포럼 2021’에서도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한 민·관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SK가 개발 중인 ‘환경 보호 크레디트(EPC : Environmental Protection Credit)’ 제도를 소개한 바 있다.

최 회장은 민·관 협력 강화를 통해 민간 부문이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은 적절한 인센티브가 주어지면 친환경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노하우와 재정적인 분야의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최 회장은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업이 자발적으로 탄소 배출 저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아이디어에 기반한 ‘EPC’ 제도를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자본과 금융 시장의 EPC 참여를 장려하고 이를 통해 친환경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있도록 혜택을 제공하자는 제안이다.

EPC는 SK그룹이 이미 개발한 ‘사회 성과 인센티브(SPC : Social Progress Credit)’와 맥을 같이한다. EPC와 SPC 모두 정확한 성과 측정을 기반으로 한다. 최 회장은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는 피터 드러커의 원칙을 자주 인용하며 강조해 왔다.

2013년 1월 25일 최 회장은 세계경제포럼(WEF)의 ‘임팩트 투자’ 세션에서 처음 공식 패널로 무대에 앉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SPC’라는 개념을 설명했다. SPC는 대학생에게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에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주는 것처럼 사회적 기업도 돈 버는 일에 진을 빼지 않고 본업에 매진하도록 사회적 가치를 만든 만큼 보상하는 개념이다.

도덕적 해이 없이 제대로 보상하려면 제대로 측정해야 했다. 최 회장의 주문으로 SK는 2015년 SPC를 실제 제도로 설계해 냈다. 눈에 보이지 않던 가치가 돈으로 계량화되기 시작했다. SPC에 근거해 2020년까지 사회적 기업이 1682억원의 사회 성과를 만들고 339억원을 보상으로 가져갔다.

2019년 출범한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사회적 기업이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계량화하는 연구를 맡고 있다. SPC는 사회적 기업뿐만 아니라 2018년부터 SK그룹 전체에 적용됐다. SK는 2019년 5월 한국 기업 중 처음으로 주요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SK하이닉스·SK텔레콤의 사회적 가치 측정 결과를 공개했다. 이 해부터 계열사 CEO 평가의 50%를 사회적 가치 창출로 못박았다.

7년 만인 2020년 1월 23일 최 회장은 WEF ‘아시아 시대 이해관계인 자본주의’ 세션에 둘째 공식 패널로 앉았다. SPC 도입 후 SK의 시도와 성과,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자리였다. 함께 패널로 앉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매우 흥미롭다. 실제 기업들이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반응했다.

SK의 SPC는 2020년 1월 하버드 경영대학원이 발간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에 사례 연구로 실렸다. 2020년 학기부터 ‘자본주의 재구성’이라는 과목에 사례로 쓰이고 있다. 사례 연구를 했던 조지 세라파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SK가 하고 있는 일이 사회나 환경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를 재무제표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게 바로 모든 기업이 도달해야 하는 목표”라고 평가했다. 스탠퍼드 경영대학원도 2019년 12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더블 보텀 라인’ 경영을 사례 연구로 채택했다.

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