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 그 시작과 끝을 생각하다

[트렌드] 2021년 화제의 책
코로나19와 혐오가 만연한 한 해, 책 한 권으로 힐링하라
헤이트 : 왜 혐오의 역사는 반복될까
최인철 외 8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1만8000원


코로나19와 혐오. 2021년 한 해 한국 내 출판계에 화제가 된 키워드다. 벌써 2년째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자영업자의 분노, 취업 준비생의 좌절, 모두의 피로감을 키웠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가 불러온 불확실성을 대선 정국이 더욱 증폭시키는 모습이다. 정치 혐오가 커지면서 ‘역대급 비호감 선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표의 논리’는 상대 성(젠더)에 대한 혐오, 노조에 대한 혐오 등 온갖 혐오 정서를 자극한다. 이런 가운데 독자들은 혐오에 편승하기보다 혐오를 극복할 수 있는 공감과 힐링이 담긴 책을 찾았다.

최인철 서울대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 김민정 한국외국어대 교수,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 등 역사·사회 분야 교수 9명이 함께 쓴 책 ‘헤이트’는 인류를 고통으로 내몰았던 역사 속 이야기와 현대 사회의 혐오 문제를 진단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공감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을 서술했다.

2020년 티앤씨재단이 ‘비뚤어진 공감이 만드는 혐오 사회’를 주제로 온라인으로 진행한 공감 콘퍼런스 ‘바이어스 바이 어스(Bias, by us)’의 토론 내용 전문을 담았다. 콘퍼런스 오픈 전 설문 조사에서는 혐오를 가장 많이 접하는 공간으로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가 꼽혔고 혐오에 가장 큰 원인으로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한 적대감’과 ‘편파적 언론 보도’가 1, 2위로 나타났다.

콘퍼런스는 추석 연휴 기간 사전 신청자들만을 대상으로 했는 데도 조회 수가 1만 회가 넘어 큰 관심을 모았다. 사흘에 걸쳐 진행된 콘퍼런스의 전체 영상은 현재까지 누적 조회 수 92만 회를 기록했다. 콘퍼런스에 대한 문의와 호평이 이어지자 재단은 후속으로 콘퍼런스 연사진을 한자리에 모아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고 2021년 콘퍼런스와 토크 콘서트의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에서 심리학·법학·미디어학·철학·인류학 등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혐오’라는 하나의 주제에 초점을 맞춰 보여주는 혜안은 꽤나 흥미롭다. 저자는 혐오가 공감의 반대말이 아니라 선택적 공감의 극단적 모습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특히 ‘공감’이라는 명분 아래 특정 집단만을 옹호하며 타인을 향해서는 오히려 편향된 시선을 던지는 모순된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는 혐오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문제 해결보다 분노를 쏟아낼 희생양을 찾는 요즘 행태에 경각심을 품게 한다.

이 책은 오늘날 인터넷 매체에서 넘쳐나는 혐오 표현들의 근원에 그릇된 공감 심리가 있다고 설명한다. 마녀사냥, 홀로코스트, 이슬람 혐오, 르완다 학살 등 책이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들을 따라가다 보면 혐오의 문제가 먼 얘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는 혐오를 멈추지 못하고 극단에 달했을 때 역사는 수많은 비극을 낳았다. 그래서 책은 잘못된 이분법 대신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성숙의 필요성에 대해 여러 목소리를 전하며 끝을 맺는다.

책의 서두에 담긴 다섯 편의 추천의 글 그리고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의 생각을 담은 서문도 혐오 문제를 바라보는 이 책의 다양한 시선을 더욱 풍부하게 한다. 김 대표는 서문에서 책에 대한 소개와 함께 ‘비뚤어진 공감’이라는 화두를 꺼내들면서 본인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예전엔 공감을 사람 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해소하는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말 공감이 그렇게 좋은 쪽으로만 작용할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연예인들이나 청소년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모는 악성 댓글의 폐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도덕적 지탄을 받는 사람에게 가해지는 악플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면서 “나는 몇 년간 심한 악플의 대상이 됐다”고 고백했다.

김 대표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당연히 감내해야 할 일로 받아들였다”면서도 악성 루머를 악용하는 일부 언론과 유튜브들의 가짜 뉴스에 대해서는 반감을 보였다.

그는 “처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란 바람으로 대응하지 않았지만 침묵은 별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았다”면서 “어느 인터넷 카페에는 내가 자살할 때까지 악플을 멈추지 말고 계속하라는 독려의 글이 올라왔다고 했다. 누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악성 루머를 퍼뜨린 이들이 가정주부 등 평범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도 놀랐다. 김 대표는 “그들 역시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하고 선동당한 피해자로, 타인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있을 뿐”이라며 “그분들의 관점에서 나는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였고 본인들은 정의를 위해 싸우는 중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