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인사에서 주요 운용사 대표 대거 교체
70조 돌파한 ETF 주도권 잡기에 사활

[비즈니스 포커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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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자산 운용사의 최고경영자(CEO)들이 대거 교체됐다. 전통적 수익원이었던 공모 펀드 시장의 부진이 장기화하자 운용사들은 수십년간 경력을 쌓은 금융 투자 전문가를 전면에 내세우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상장지수펀드(ETF)의 규모가 커지면서 운용업계 인사에서 ETF 전문가들의 존재감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ETF 패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운용업계의 판도가 확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삼성 서봉균 ‘깜짝 발탁’,
한투운용 ‘원조 ETF맨’ 배재규 영입
뉴 페이스 자산 운용 CEO, ETF 시장 대격돌 예고
업계 1위인 삼성자산운용은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1962년생으로 삼성 금융 계열사 수장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심종극 삼성자산운용 대표는 1년의 임기가 남았지만 ‘젊은 리더십’을 위해 용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사령탑에는 외국계 금융사에서 잔뼈가 굵은 서봉균 삼성증권 전 전무가 발탁됐다. 회사 측은 “삼성자산운용의 ETF 시장의 지위를 공고히 하고 글로벌 운용 인프라 확장을 견인할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서 신임 대표는 1967년생으로 금융 투자업계에서만 약 30여 년간 근무한 운용 전문가다. 1990년 한양대 도시공학과를 졸업한 후 모간스탠리·씨티그룹·골드만삭스 한국 대표를 거쳐 지난해 삼성증권에 합류해 세일즈앤드트레이딩(Sales&Trading) 부문장을 맡았다.

‘ETF의 아버지’, ‘ETF의 산파’로 불리는 배재규 삼성자산운용 부사장은 21년 만에 삼성을 떠나 한국투자신탁운용 수장으로 이동한다. 1961년생인 배 내정자는 대구 출생으로 보성고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한국종합금융에서 투자 경력을 시작해 SK증권을 거쳐 2000년 삼성자산운용으로 옮겨 코스닥 팀장, 주식운용 팀장, 인덱스운용본부 부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2000년대 초반에 ETF를 한국에 도입하기 위해 직접 금융 당국을 찾아가 설득 작업에 나서기도 했고 2002년엔 한국 1호 ETF인 코덱스(KODEX)200 ETF를 선보이는 등 삼성자산운용을 ETF 시장의 최강자로 끌어올린 주역으로 평가 받는다. 배 내정자의 데뷔작인 코덱스200 ETF는 현재 한국 최대 주식형 ETF로 성장했다.

배 내정자는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 오랜 시간 고민 끝에 직접 발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이 외부 수혈로 사장급 인사를 영입한 것은 처음인데, ETF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한 파격적 인사로 풀이된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은 삼성·미래·KB에 이어 ETF 시장점유율 4위를 기록 중이다.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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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자산운용은 가장 먼저 수장을 교체하고 조직을 재정비했다. 지난 11월 6년간 이어 온 김미섭·서유석 각자 대표 체제를 마무리하고 최창훈 부회장과 이병성 부사장을 새로운 투톱으로 맞았다. 최 부회장과 이 부사장은 각각 1969년생, 1967년생으로 두 사람 모두 50대다.

이와 함께 김남기 ETF운용부문장을 ETF 부문대표로 선임하며 ETF 부문에 더 힘을 줬다. 1977년생인 김 대표는 삼성자산운용에서 ETF 운용팀장으로 일하던 삼성 공채 출신이다. 2019년 김 대표를 ETF 운용본부장으로 영입한 미래에셋운용은 2년 만에 상무를 거쳐 전무로 초고속 승진시켰다.

신한자산운용도 ‘20년 운용사 CEO’ 경험을 가진 베테랑 조재민 전 KB자산운용 대표를 영입하며 반격의 채비를 하고 있다. 신한자산운용은 내년 초 신한대체투자운용과 합병하면서 ‘전통 자산’과 ‘대체 자산’ 두 부문으로 나눠 각자대표 제도를 도입했다. 전통자산 부문에는 조 내정자를 신규 선임했고 대체자산 부문은 연임한 김희송 신한대체투자 사장에게 맡긴다.

조 내정자는 1962년생으로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취득했다. 씨티은행, 영국 스탠더드은행 등 외국계 금융사에 몸담으며 외환 딜러와 채권 매니저로 경력을 쌓았다. 1999년 마이다스에셋자산운용을 공동 창업해 사장으로 일하다 2009년 KB자산운용 사장에 영입됐다. 이후 KTB자산운용을 거쳐 KB자산운용에 재영입됐다가 2020년 퇴임했다.
KB 이현승 연임, 한화는 5년 만에 교체
그래픽=송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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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조재민·이현승 각자대표에서 이현승 단독대표 체제로 전환한 KB자산운용은 이 대표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이 대표는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하며 ETF와 타깃 데이트 펀드(TDF) 등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한편 ETF 수수료를 업계 최저 수준으로 낮추고 테마형 ETF를 선보이며 시장 지배력을 넓혀 가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6%대에 불과했던 ETF 시장점유율을 올해 들어 8%대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 ETF 시장 내 3위 자리를 굳히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모습이다.

성과를 인정받은 이 대표는 1년 더 회사를 이끌게 됐다. 이 대표는 1966년생으로 서울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서울대 행정학 석사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를 취득했다. 행정고시 32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을 시작으로 예산실·장관실 등을 거쳤다. 그는 외환 위기 시절 2년 반 동안 장관 비서실에서 네 명의 장관을 보좌한 이력도 있다. 2001년 돌연 공직을 떠나 자본 시장 세계에 발을 디뎠는데 그는 자본 시장 CEO 경력만 벌써 13년인 베테랑이다.

최근 ETF 시장에서 뒤처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한화자산운용은 지난 7월 5년 만에 한두희 대표를 새 사령탑으로 맞이했다. 한 대표는 취임 직후 TDF와 ETF 담당 조직을 개편했다. ETF 부서를 ‘팀’에서 ‘본부’로 키웠고사내 경영기획업무를 맡았던 김성훈 본부장을 선임했다.

한 대표는 1965년생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경영과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삼성그룹 재무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외환코메르쯔투신운용,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현 신한자산운용) 대안투자운용본부 본부장 등을 거쳤다. 한화그룹엔 2015년 입사했다. 한화투자증권 상품전략센터장, 상품전략실장, 트레이딩본부장, 한화생명보험 투자사업본부장 등을 지냈다. 운용업 경험도 파생 운용, 대체 투자, 상품 전략 등 다양하다.
ETF 70조원 시대
ETF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 2년 연속 50조원대를 유지했던 ETF 시장 규모는 올해 70조원을 돌파했다. 12월 27일 기준 ETF 순자산 총액은 73조602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하면 약 40% 정도 증가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뭉칫돈도 10조원 정도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이 급격히 커지자 ETF를 둘러싼 운용사들의 주도권 전쟁도 갈수록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ETF 시장의 강자로 군림해 온 삼성운용의 시장 지배력이 최근 확연히 약화하는 추세다. 삼성운용의 ETF 시장점유율은 4년여 만에 50%가 깨진 것도 모자라 40%대 점유율마저 위협받고 있다. 반면 업계 2위인 미래에셋운용 점유율은 지난해 말 25.3%에서 올해 35%로 10%포인트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만 해도 25% 이상 벌어졌던 삼성과 미래에셋운용의 점유율 격차가 10% 아래로 좁혀진 것이다. KB·한투 등도 1·2위와 격차를 좁히기 위해 맹렬히 추격 중이다.

자산 운용사 관계자는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산운용이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다른 운용사들도 ETF 전문가를 선장으로 영입하는 등 ETF 시장에 사활을 걸고 있어 시장 판도가 뒤집힐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이어 “오미크론 변이 확산, 금리 인상 등 자산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며 “리스크 분산을 위해 ETF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