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금리 인상 후반부 신흥국 중심 타격…인도 등 고위험 국가 모니터링 필요

[화제의 리포트]

이번 주 화제의 리포트는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가 펴낸 ‘1994년 긴축에서 얻은 교훈’을 선정했다. 하 애널리스트는 “현재 팽배한 긴축 공포가 금융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가파른 긴축이 이뤄졌던 1994년 경제와 금융 시장을 참고할 수 있다”며 “세계 자산 가격이 조정세를 보였지만 그 폭은 채권 시장과 일부 취약 신흥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미미했다”고 분석했다. 다만, 과거와 마찬가지로 금리 인상 후반부에 취약국 중심의 금융 불안 재연 가능성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1월2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열린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3월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사진=로이터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1월2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마친 뒤 열린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3월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했다. 사진=로이터
금융 시장이 긴축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완화적 통화 정책 기조를 이어 간 주요국의 중앙은행은 작년 하반기부터 일제히 통화 정책 정상화에 나서는 중이다. 통화 완화에 따른 이득보다 비용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금융 시장은 정책 당국이 기존에 제시한 가이드라인 이상의 긴축을 자산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산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는 등 시장의 우려는 현재 진행형이다. 긴축의 향후 경로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물가 불안에 시달리는 미국은 추가로 물가가 상승하면 연내 4차례 이상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뿐만 아니라 양적 긴축 강도까지 확대될 수 있다. 즉, 현재 진행 중인 통화 긴축의 강도가 추가로 심화될 수 있는 불확실성이 심리를 짓누른다. 경기보다 물가에 무게를 둔 통화 정책 정상화로 긴축에 따른 경기 훼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세계 경제성장률 컨센서스는 작년 말부터 줄곧 하향세를 이어 가고 있고 기업 이익을 선행하는 기업 이익 수정 비율은 하락 반전했다. 유동성 축소뿐만 아니라 경기 모멘텀 훼손까지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 급격한 긴축에 나섰던 1994년의 경험을 통해 유동성과 실물 경제 환경을 살펴본다.
급격한 긴축으로 채권 시장의 대학살로 불렸던 1994년
1990년대 이후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기는 1994~1995년과 1999~2000년, 2004~2006년, 2015~2019년으로 크게 4차례였다. 1994년 금리 인상은 나머지 금리 인상에 비해 가파르게 이뤄졌다. 1994년 2월 시작돼 1995년 3월 종료된 1차 금리 인상기는 1994년 채권 시장의 대학살(bond market massacre)로 불릴 만큼 통화 정책 정상화가 가파르게 진행됐다. 당시 Fed는 불과 1년 만에 기준금리를 3.0%에서 6.0%로 300bp(1bp=0.01%포인트) 인상했다. 금리 인상 횟수는 7차례에 불과했지만 25bp 금리 인상이 3번, 50bp 금리 인상이 1번, 75bp 인상이 1번으로 평균 금리 인상 폭이 40bp가 넘었다. 최근 Fed가 금리 변동 폭을 대체로 25bp를 유지하는 것을 감안하면 1년 동안 12번 금리를 인상한 것과 동일하다.

정책 목표 역시 물가 안정에 초점을 뒀다. 1980년대 고물가에 정책 신뢰성이 훼손됐던 Fed는 물가 불안을 사전에 차단하고자 했다. 금리 인상 직전 소비자 물가는 3% 내외에서 안정적 흐름을 이어 갔지만 Fed는 경기 회복과 동반될 물가 상승을 우려했다. 그뿐만 아니라 1990년대 초반 저축대부조합(S&L) 파산으로 신용 위축을 경험했던 만큼 레버리지 확대와 부상할 부동산 등 자산 가격 급등을 경계했다.

세계 자산 가격이 조정세를 보였지만 그 폭은 채권 시장과 일부 취약 신흥국을 제외하고 대부분 미미했다. 세계 주가지수는 1994년 1월 평균 대비 최대 4% 조정에 그쳤고 금리 인상 기간 동안 박스권 등락을 이어 갔다. 금리가 인상되기 전 상승 폭이 컸던 신흥 주가지수가 금리 인상기 동안 최대 20% 넘게 빠졌다. 하지만 인상 후반부에 반등하는 등 전체적으로 박스권 흐름을 유지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는 금리 인상 후반부에서 취약한 부문을 중심으로 문제가 발생하면서 경기 모멘텀이 둔화됐다. 멕시코 등 일부 신흥국이 자본 유출과 함께 외환 위기를 경험했고 이는 시차를 두고 동아시아의 외환 위기로 확산됐다.

1990년 초반 멕시코의 실물 경제 흐름은 양호했다. 하지만 문제는 대외 부문에 취약한 경제 구조에 있었다. 1994년 멕시코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와 함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멕시코의 전면적 시장 개방에 따라 수입 급증과 함께 경상 수지가 빠르게 악화됐다. 경제 주체들은 부족한 달러분을 외국인 자금 유치를 통해 충당했다. 1994년 대외 채무가 1400억 달러로 확대됐고 외채에 대한 원리금 상환액은 310억 달러에 달했다. 대외 건전성이 악화되던 가운데 정치·사회적 불안이 커졌고 미국 금리 인상까지 가세하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이 시작됐다. 당시 멕시코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에서도 해외 자본의 급격한 유출로 인한 금융 불안이 나타났다. 브라질에서는 자본 유출의 여파로 1994년 12월부터 1995년 3월까지 4개월간 외환 보유액의 21%인 80억 달러가 감소했다. 또한 2대 대형 은행 지급 불능 사태가 발생했다.

신흥국의 금융 불안은 세계 경기 수요 위축으로 이어졌다. 미국 역시 경기 회복세가 재차 둔화됐다. 이에 1995년 12월부터 2번의 보험성 금리 인하 등 금리를 재배치하며 경기 침체에 사전적으로 대비했고 금융 불안은 잠잠해졌다.
긴축 공포 휩싸인 금융시장, 1994년 긴축과 비교해 보니
주요국들 ‘긴축 기조’ 가시화, 1994년과 같은 점 다른 점
1994년 긴축 사례를 감안하면 금융 환경 측면에서는 위험 프리미엄 상승과 금융 시장 내 유동성 축소가 예상된다. 금융 시장 유동성 축소도 동반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중앙은행 주도로 유동성 공급이 급증했다. 반면 실물 경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점진적으로 회복돼 금융과 실물 간 불균형이 심화됐다. 실물 경제에서 요구하는 수준 이상의 과잉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자산 가격이 일제히 상승했다. 펀더멘털 개선이 동반됐지만 밸류에이션 상승 효과가 컸다. 정책 정상화와 함께 과잉 유동성 공급이 축소되는 만큼 밸류에이션 배수 조정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밸류에이션 배수 하락에도 경기 회복을 통한 펀더멘털 개선으로 자산 가격의 완만한 반등이 기대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가계 부채와 기업 부채 모두 급증했다. 선진국의 기업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97.5%로 역대 최고 수준이지만 평균을 크게 웃돌지 않는다. 경기 급랭이 초래되기 위해서는 신용 여건이 악화되며 가계 및 기업의 부채 조정이 동반돼야 한다. 금융 시스템 위기로 인한 경제 주체 파산 시 나타나는 현상이다. 1994년 가파른 금리 인상에도 원활한 자금 조달로 경제 주체의 레버리지 확대가 이어진 점을 감안하면 실물 경제의 우상향 흐름은 유효해 보인다.

기업 투자를 둘러싼 환경도 우호적이다. 금융 위기 이후 20년 넘게 공급 과잉으로 인해 과소 생산이 이뤄졌고 투자 역시 부진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제조업은 공급 과잉에서 수요 우위로 전환돼 공급 확대가 필요하게 됐다. 올해 2분기부터 코로나19 관련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민간 투자의 본격적 반등이 기대된다. 이를 통해 긴축에 따른 실물 경제의 악영향을 상쇄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과거와 마찬가지로 금리 인상 후반부에 취약국 중심의 금융 불안 재연 가능성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1994년 금리 인상뿐만 아니라 2013년 5월 테이퍼링 텐트럼, 2015년 12월 금리 인상 전후 신흥국 금융 불안이 고조됐다. 당시 신흥국의 금융 시장에서 자금이 이탈하며 금융 불안뿐만 아니라 세계 경기 둔화로 이어졌다.

1994년은 외채 차입이 문제가 됐다. 2013년은 브릭스(BRICs) 등 신흥국 경제의 부상 기대 속에 포트폴리오 투자가 공격적으로 유입됐다. 당시 신흥 시장에 유입된 주식 펀드 자금은 선진국을 웃돌았다. 이와 비교해 현재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신흥국의 주식 시장을 중심으로 자금 유입이 확인된다. 꾸준히 규모가 커지지만 선진국 대비 20%에 불과해 자금 이탈을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신흥국으로 유입된 자금의 이탈로 인한 금융 시장 교란이 나타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현재 선진국 긴축 기조가 강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흥국의 금융 시장에서 자금 이탈은 보이지 않는다. 양호한 경기 흐름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다만, 선진국 금리 인상 기조가 후반부에 접어들면 경기 모멘텀이 꺾이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시점부터 취약한 일부 신흥국에서 금융 불안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금융 불안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취약국을 선별해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분석 결과 지역별 위험도는 남미·동유럽>아시아>아프리카·중동 순이다. 고위험 국가로는 아르헨티나·터키·우크라이나·루마니아·인도 등 5개국이 선별된다. 고위험 국가 5개국 중 인도를 제외하면 세계 경제와 금융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해당국의 상황이 위기로 비화되더라도 국지적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정리=이정흔 기자 viva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