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과 현실 세계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글로벌 기업들도 로봇 개발 속속 참전

[테크 트렌드]
(라스베이거스(미국)=뉴스1) 조태형 기자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세계 최대 전자·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2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프레스 컨퍼런스에 참석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과 함께 연단에 오르고 있다. 2022.1.5/뉴스1
(라스베이거스(미국)=뉴스1) 조태형 기자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세계 최대 전자·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2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에서 열린 현대자동차 프레스 컨퍼런스에 참석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팟'과 함께 연단에 오르고 있다. 2022.1.5/뉴스1
올해 1월 초 개최된 ‘세계 가전 전시회(CES) 2022’는 로봇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를 새삼 확인하고 로봇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자리가 됐다.

농업·자동차·가전·항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로봇 기술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연구·개발(R&D) 전문 업체나 스타트업이 주도해 온 서비스 로봇 개발 대열에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참여하기 시작한 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메타버스와 접목된 로봇
미·중 갈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올해 CES는 다소 축소된 규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의 신제품과 신기술의 발전상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CES에서 표면적으로 크게 부각되지 않았지만 의미 있는 변화상을 보여준 분야는 로봇이다. 농업의 무인화를 다루는 애그테크(agriculture tech)에서부터 식당·주방의 미래를 다루는 푸드테크, 기존 기계의 자율화가 높아지는 자동차·가전·서비스·우주 항공 등 많은 분야에서 빠짐없이 로봇 기술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래 로봇은 산업용 로봇처럼 그 자체가 하나의 산업을 형성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 인공지능(AI)이나 소프트웨어처럼 다양한 산업에 반영되는 기술로서의 의미가 더 강한 분야다. 이번 CES를 통해 로봇 분야에서 진행되는 의미 있는 트렌드를 찾을 수 있다.

CES에서 가장 주목 받았던 이슈 중 하나는 로봇의 새로운 가치가 발굴된 점이다. 지금까지는 산업용 로봇, 서비스 로봇을 가리지 않고 로봇의 가치를 생산성 향상의 수단 또는 인간에게 위험한 작업의 대역이란 관점에서만 찾았다.

그런데 메타버스를 다룬 일부 기업들은 메타버스 세계에서 현실과 인간을 연결하는 접점이란 중요한 역할에서 로봇의 가치를 찾았다. 지금까지의 메타버스는 현실에서 체험하기 힘든 시청각적 경험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가상의 세계였다. 그래서 메타버스의 용도는 게임 콘텐츠와 디스플레이·스피커·조이스틱 등의 컨트롤 패널을 통해 가상 세계를 시청각적으로 경험하거나 실제 공장을 디지털 기술로 복제한 가상의 공장을 통해 공정상의 문제점을 미리 파악하고 개선하기 위한 시뮬레이션 등에 한정됐다.

그런데 이번 CES에서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구상하는 메타버스의 개념이나 쓰임새는 기존 메타버스와 달랐다. 한국 기업들이 제안한 새로운 메타버스는 복수의 실존하는 현실의 시공간이 연결된 세계다.

새로운 메타버스에서 사용자는 자신이 존재하는 현실 세계에서 당장 가지 못하는 해외·심해·우주 등 또 다른 현실 세계의 경험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시공간이다. 사용자가 경험을 체감하는 과정에서 로봇은 인간에게 시각·청각·촉각 등의 다양한 감각을 통해 또 다른 현실을 체감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수행한다.

삼성전자는 AI 아바타와 로봇을 통해 지방 사무실에 있으면서 서울 사무실의 작업에 참여하거나 가정의 가사 업무를 병행하는 메타버스를 소개했다. 지구와 우주가 연결된 현대자동차의 메타버스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종 보행 로봇 스폿(Spot)이 자동차에 타고 있는 어린이에게 화성 탐사를 체험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두 개의 현실이 연결된 메타버스의 활용이 늘어나면 사용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체감하게 하는 로봇 기술의 개발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병행해 로봇의 자율 이동 기능에 필수적인 라이다(lidar) 등 부품 기술과 로봇의 원격 조종 기술, 인간에게 촉감을 전달하는 햅틱 기술의 발달이 병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CES에도 발레오(Valeo)·에스오에스랩·카네비컴·인포웍스 등 많은 라이다 기업들이 참여했다.

농기계 업체 2개사는 로보틱스 분야의 혁신상을 2년 연속으로 수상했다. 농업용 트랙터를 만드는 존디어는 로봇화된 무인 트랙터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최고 혁신상을 수상했다.

존디어의 무인 트랙터는 사람이 조종하는 트랙터에 자율주행 기능을 추가해 정해진 지역에 가면 파종, 농약 살포, 수확 등의 작업을 스스로 수행할 수 있다. 작년에 자율주행 기능이 부각됐다면 올해는 카메라 기반의 AI로 자율 파종·농약 살포 등의 로봇 기능을 강화한 점이 돋보였다. 올해 처음 등장한 모나크 트랙터(Monarch Tractor)도 무인 트랙터 MK-5로 로봇 분야의 혁신상을 수상했다.

무인화·자율화와 같은 의미인 로봇화(robotized)라고 하면 주로 자동차·항공기 분야가 많이 거론돼 왔다. 자동차·항공기에 카메라·라이다 등 환경 인식 센서와 AI 및 기기의 물리적 제어에 필요한 액추에이터 등을 장착해 사람이 조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율주행차나 드론이 대중에게 많이 노출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농업용 트랙터뿐만 아니라 굴삭기와 같은 건설용 중장비의 로봇화도 꾸준히 진행돼 왔다. 두산인프라코어·밥캣 등 건설용 중장비 업체들도 기존 장비의 로봇화를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존디어와 같은 장비 업체들의 혁신상 수상이 늘어나는 상황은 중장비의 로봇화가 가속화되는 동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가속화되는 도구의 로봇화
올해 CES에서 큰 주목을 받았던 장면은 현대자동차그룹의 정의선 회장이 직접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종 보행 로봇 스폿을 데리고 키노트 무대에 등장한 순간이었다.

이 무대에서 현대자동차는 인간이 직접 가지 못하는 세계와 현실을 연결하는 주체가 로봇이라고 소개하고 스폿과 함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Atlas)와 가구 등 각종 설비에 부착할 수 있는 자율 이동 장치인 PnD(Plug and Drive) 모듈 기반의 다양한 자율주행 플랫폼을 공개했다.

삼성전자는 작년 CES를 통해 처음으로 서비스 로봇을 공개한데 이어 올해는 식사 준비 등 가사 업무를 돕는 로봇과 사람과 소통하는 로봇 등 보다 다양한 로봇들을 소개했다. 이처럼 올해는 다양한 업종의 글로벌 기업들이 직접 로봇의 개발에 뛰어드는 경우가 점차 늘어나는 현상도 눈에 띄었다. 과거에도 아마존·소프트뱅크 등 일부 글로벌 기업들이 로봇 개발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업종상으로는 유통·물류·정보기술(IT) 서비스 등 일부 업종에 한정됐는데 이제는 농기계·자동차·반도체·가전 등 업종상으로 다양화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CES에 등장하지 않은 중장비 업체들까지 감안하면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로봇 진형에 합류하는 추세가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진석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