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서기 대행 이색 직업 탄생시킨 오픈런 갓바타…비대면 명품 수선 서비스 만든 스타트업도

[비즈니스 포커스]
“1시간 줄 서기에 1만8000원”…커지는 명품 파생 시장
‘명품 호황’에 파생 업종도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리폼 업체, 중고 명품 숍, 명품 리셀러점은 물론 최근에는 명품 구매를 위해 줄을 대신 서 주는 대행 업체 같은 신생 업종도 생겨나고 있다. 명품 호황에 웃음짓는 럭셔리 파생 시장의 세계를 살펴본다.

월 최대 450만원? 이색 직업의 탄생

“2시간 30분 줄 서기에 4만5000원이에요.”

A 씨는 최근 ‘샤넬 오픈런(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입장하는 것)’의 위력을 실감했다. A 씨가 원하는 가방을 구하려면 새벽에 줄을 서 번호표를 받아야 하는데 그마저도 원하는 물건이 동나면 구매할 수 없다는 게 아닌가. 샤넬의 오픈런을 먼저 경험한 ‘선배’들은 “웃돈를 얹고 사든가, 줄 서기 대행을 써 보라”는 팁을 제시했다. 그런 아르바이트가 실제로 있나 싶었지만 웬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대행 업체 후기가 줄을 이었다. A 씨는 줄 서기 대행 업체를 이용하고 14만원 가까운 돈을 지불했다. 9시간 30분 동안 대신 줄을 서 준 대가였다.

최근 A 씨처럼 명품 브랜드를 사기 위해 줄 서기 대행 업체를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구매 희망자는 많은데 제품 수량이 한정돼 백화점 명품 매장들이 하루 인원수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롤렉스 매장은 하루 30팀,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 롤렉스 매장은 45팀,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월드타워점 롤렉스 매장은 약 70팀으로 제한한다.

선착순 입장에 웃지 못할 진풍경도 벌어진다. 새벽부터 눈치싸움을 하며 줄을 서거나 텐트를 치고 노숙하는 이른바 ‘오픈런’이다. “이틀 연차 내고 오픈런 뛰었는데 실패했어요”, “겨우 들어갔는데 제가 사려던 제품이 품절이래요.” 최근 SNS에는 비운의 후기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 최초로 지난해 6월 오픈런 대행 업체를 만든 김태균 오픈런 갓바타 대표도 그런 고객 중 한 명이었다. 지난해 예비 신랑이었던 김 대표는 결혼을 앞두고 예물을 사기 위해 오픈런 대열에 끼었다가 번뜩 창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1000만원짜리를 사는 데 줄까지 서야 하는 게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누가 대신해주면 얼마나 편할까. 대리인과 의뢰인 모두에게 믿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면 모두 윈-윈할 수 있겠다 싶었죠.”

그가 만든 오픈런 갓바타는 줄 서기 대행 서비스 업체다. 근로계약서까지 작성해 소속과 신원이 보장된 직원이 해당 매장 앞에서 새벽부터 줄 서기를 시작하고 오픈 30분쯤 전에 의뢰자와 자리를 바꾼 후 퇴근하는 방식이다. 의뢰자는 서비스 이용 날짜와 브랜드, 지점을 지정하고 오픈런 갓바타는 이를 직원에게 전달해 의뢰자의 줄 서기를 대행하는 것이다.

일은 간단하지만 시간당 비용은 최저임금(2022년 기준 9160원)을 훌쩍 넘어선다. 오픈런 갓바타의 평균 비용은 시간당 1만4000~1만8000원이다. 2시간 30분에 4만5000원, 23시간 30분에 33만1000원을 낸 경우도 있다. 의뢰자가 이를 중개 업체에 지불하면 일정 수수료를 떼고 줄을 선 직원에게 지급한다. 김 씨에 따르면 오픈런 갓바타 직원들의 한달 평균 수입은 170만원이다. 2021년 6월 창업 후 지금까지 최고 기록은 월 454만원이다.

프리랜서 형식으로 고용된 직원은 현재 100명 남짓이다. 창업한 지 8개월밖에 안 됐지만 회사 규모도 매출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보통 10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는 지루한 일이지만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취업 준비생들의 구직 문의도 빗발치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함께한 서포터가 100명 가까이 돼 아직은 추가 증원하지 않고 있어요. 문의 전화가 계속 쏟아져 당황스럽죠.”

김 대표는 앞으로 줄 서기 대행 사업을 다른 분야로 확장할 계획이다. 그는 “한정판 줄 서기부터 유치원 입학 접수 줄 서기, 병원 줄 서기까지 다양한 요청을 받고 있다”며 “아직은 명품 브랜드에 한정하고 있지만 다양한 분야로 확장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1시간 줄 서기에 1만8000원”…커지는 명품 파생 시장
수선 중개로 롯데벤처스 투자 유치

명품과 한배를 탄 명품 수선 시장도 연일 함박웃음이다. 50여 년 전통 명품 수선업계의 대모 격인 ‘명동사’에는 수선 문의와 의뢰가 빗발친다. 명동사 관계자는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주 정도 소요된다”고 말했다. 명동사 외에도 백화점 내부에 입점한 명품 수선집들도 호황이다. 명품 브랜드 의류는 대개 길이 수선 등을 맡겨야 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편한 백화점 입점 수선 매장을 많이 찾는다.

그런가 하면 오래된 업계에 도전장을 내민 스타트업도 있다. 2020년 5월 비대면 명품 수선 서비스를 시작한 럭셔리앤올이 그 주인공이다. 럭셔리앤올은 고객이 집에서 명품 수선을 신청하면 검증된 명품 수선사를 연결해 주는 서비스다. 현재 럭셔리앤올 플랫폼에는 250여 개의 수선 전문 업체들이 입점해 있고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에서 결제·수거·케어 후 배송까지 진행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수선은 물론 정기 케어·리폼·리셀·보관·대여까지 명품 토털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 회사의 모바일 앱에서는 의뢰한 수선 내역에 대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기존 수선 앱이나 기존 수선 업체에서 운영하는 자체 웹 서비스와는 큰 차이다.

앱에 접속해 수선을 원하는 부위의 사진을 올리면 전국 250여 개 전문 업체 중 견적 최저가, 최단시간, 최고 평점, 동일 부위 최다 수선 경험 순으로 최적화된 수선사를 매칭해 준다.

럭셔리앤올은 롯데벤처스에서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롯데벤처스와 제니스 제1호 개인투자조합이 프리 시리즈A와 후속 시리즈를 잇는 브리지 단계 투자에 참여한 것이다. 투자 당시 이 회사의 누적 방문자 수는 155만 명, 누적 가입 회원은 약 5만 명, 누적 견적 의뢰는 약 3만 건을 달성했다. 투자를 주도한 배준성 롯데벤처스 센터장은 “럭셔리앤올은 신뢰도 높은 수선사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점이 다른 서비스와 비교해 큰 차별점”이라며 “현재 일본을 비롯한 글로벌 투자사에서 해외 진출과 연계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럭셔리앤올의 승승장구는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 1월엔 롯데쇼핑의 온라인 플랫폼인 롯데온과 손잡고 명품 사후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우정범 럭셔리앤올 대표는 “주 타깃인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대상으로 한 온·오프라인 마케팅을 강화하고 롯데온과 롯데탑스 등 이커머스 업체와 협업해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명품 수요 확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명품 파생 시장 역시 성장세를 이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경민정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명품 브랜드들이 가격 인상을 수차례 단행했지만 명품 열기는 식지 않고 있다”며 “올해도 명품의 성장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