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버스 회사에 소송 제기한 장애인들
대법 “모든 버스에 즉시 설치는 비례 원칙 위배”

[법알못 판례 읽기]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등이 2021년 4월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사거리 인근에서 계단형 시내버스에 ‘비장애인만 타는 차별버스 아웃(OUT)’,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등 요구 사항이 적힌 종이를 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등이 2021년 4월 22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사거리 인근에서 계단형 시내버스에 ‘비장애인만 타는 차별버스 아웃(OUT)’,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등 요구 사항이 적힌 종이를 붙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0년 기준 휠체어를 타고 사용할 수 있는 고속버스 수는 얼마나 될까. 등록된 고속버스 2278대 중 10대로 0.44% 수준이다. 노선도 부산·강릉·전주·당진을 오가는 단 4개 노선뿐으로 전체 고속버스 노선 169개의 2.4% 수준이다.

광역버스 또한 상황은 비슷하다. 이처럼 시외·광역버스에서 극히 제한된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소송이 8년 만에 결론이 났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A 씨 등 장애인 3명이 대한민국과 서울시·경기도·버스 회사 2곳을 상대로 낸 차별 구제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22년 3월 8일 밝혔다.

이는 버스 업체가 시외·좌석형 버스에 휠체어 탑승 설비를 장착하지 않은 것은 차별 행위라는 첫 판결이다. 하지만 금액적인 문제로 소송 당사자들이 이용하는 노선 위주로 설비를 설치하라는 제한이 따라붙어 논란이 예상된다.

하급심 “버스에 휠체어 탑승 설비 제공해야”

2014년 신체 장애 등으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거나 거동이 불편한 A 씨 외 2인은 버스 회사를 운영하는 B 사와 C 사 등이 저상 버스를 도입하거나 휠체어 탑승 설비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소송을 제기했다. B 사와 C 사는 각각 시외버스와 시내버스를 운영하는 회사다.

B 사는 시외버스에, C 사는 광역급행형 등 좌석형 버스에 저상 버스나 휠체어 승강 설비 등과 같은 편의 시설을 도입하지 않았다. B 사 시외버스는 공간 부족으로 전동 휠체어를 타고 탑승이 불가능했고 접이식 휠체어 역시 화물 적재함에 접어 넣어야만 탑승할 수 있었다. B 사와 C 사뿐만 아니라 당시 모든 시외버스와 좌석형 버스에는 이런 설비가 없는 상태였다.

버스 회사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토교통부, 지방자치단체(지자체)도 피고로 지목됐다. 교통약자법이 시행된 것은 2006년이다. 이에 따라 교통 약자들의 이동 편의 증진 계획이 수립됐다.

2012년에는 2016년까지 전국 시내버스 41.5%를 저상 버스로 보급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지만 시외버스나 광역버스에 대한 저상 버스 도입 및 휠체어 승강 설비 설치 등에 관한 사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원고들은 “교통약자법을 위반한 것이며 장애인 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는 차별행위”라고 주장했다.

B 사와 C 사는 “국가와 지자체 등의 지원 등이 선행돼야 할 부분이고 승하차 시간의 문제와 경제적 부담 등을 고려하면 장애인에게 승하차 편의를 제공하지 못하는 것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하급심은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이용할 수 있는 설비 등 편의를 제공하라”며 회사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휠체어 승강 설비 설치로 제거되는 좌석 수는 약 2~4개 수준이고 승하차 시간이 오래 소요되는 것은 편의를 제공하는 데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없다는 점 등을 들었다.

단, 시외버스나 장거리 운행을 위한 저상 버스는 개발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휠체어 승강 설비를 갖춰 원고들에게 정당한 승하차 편의를 제공하라고 설명했다.

다만, 국가 등을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서는 “법원이 교통 행정 기관에 시외버스와 시내버스 중 광역급행형·좌석형 버스에 휠체어 승강 설비를 도입하기 위한 시책 추진, 재정 지원 등을 적극적 조치로 명하는 것은 법원이 할 수 있는 구제 조치의 영역을 넘어선다”며 기각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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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버스 회사 부담 커…원고 이용하는 노선 위주 설치”

원고와 버스 회사 B·C 사는 각 패소 부분에 불복해 대법원의 판단까지 받게 됐다. 대법원은 대부분 원심의 판단을 유지했지만 “버스 회사들에 ‘즉시’, ‘모든’ 버스에 휠체어 탑승 설비를 제공하도록 명한 원심 판결은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며 파기 환송을 결정했다.

하급심은 휠체어 탑승 설비를 제공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탑승 설비 제공 대상 버스와 의무 이행 시기 등을 정하지 않았다. 이 경우 판결이 확정되면 B 사와 C 사의 ‘모든’ 버스에 ‘즉시’ 휠체어 탑승 설비를 달아야 한다. 모든 버스에 휠체어 리프트를 장착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은 B 사는 229억~383억원, C사는 36억~62억원으로 계산됐다.

대법원은 “B 사는 2016년부터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C 사 역시 2014년도 약 2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며 “더욱이 버스 회사들은 국토교통부 장관 또는 시도지사가 정한 기준과 요율의 범위 내에서만 운임과 요금을 결정할 수 있어 요금 인상을 통해 휠체어 설비 제공 비용을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원고들이 탑승할 가능성이 있는 노선을 휠체어 탑승 설비 설치 대상 노선으로 하되 탑승 설비를 단계적으로 설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소송에 참여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측은 “원고들이 자주 사용하는 노선으로 제한해 판결한 것은 차별 구제 소송의 취지를 퇴색시키는 처사”라며 “장애인 전원이 소송해야 한다는 말이냐”고 비판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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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300㎡ 미만 편의점에도 ‘배리어 프리’ 시설 설치해야

바닥 면적 300㎡(약 90평) 미만의 편의점에도 장애인들의 편리한 이용과 접근을 위한 편의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0부(재판장 한성수 부장판사)는 2022년 2월 10일 장애인 A·B 씨가 편의점 운영사인 GS리테일과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 구제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원고 측은 “전국 1만4000여 개의 편의점 GS25에 장애인의 접근 이용을 위한 편의 시설을 설치하지 않아 장애인차별금지법 제18조가 금지하는 시설물 접근·이용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GS리테일은 재판에서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 3조가 바닥 면적 300㎡ 이상의 소매점을 대상으로만 편의 시설 설치 의무를 부과하고 있으므로 편의 시설 설치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해당 조항은 바닥 면적 300㎡ 이상이라는 기준을 요구함으로써 대부분의 민간 공중 이용 시설을 편의 시설 설치 의무 대상 시설에서 제외하고 있어 헌법상의 평등원칙에 위배된다”며 시행령 3조가 무효라고 판단했다.

2019년 기준 전국 편의점 4만3975개 중 바닥 면적 300㎡ 이상인 편의점은 830개(1.8%)에 불과하다. GS리테일의 직영과 가맹 편의점 중 바닥 면적 300㎡를 초과하는 편의점은 1개뿐이다.

재판부는 “이 시행령 규정이 무효인 이상 GS리테일의 편의 시설 미설치는 정당한 편의 제공 거부의 차별 행위에 해당한다”며 2009년 4월 이후 신축·증축·개축된 직영 편의점에 대해 높낮이가 없는 입구, 경사로 설치나 호출 벨 설치로 편의점 밖에서 구매가 가능하게 하는 여러 장치 등 영업 표준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GS리테일에 “가맹점 사업자들의 점포 환경 개선을 위한 비용 중 20% 이상을 부담하라”고 명령했다. 원고 측은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 제3조를 제정한 뒤 20년이 넘도록 이를 개정하지 않은 국가를 상대로도 소송을 제기했지만 재판부는 국가의 불법 행위 책임까지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개별 공무원에게 특정한 내용으로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 제3조를 개정해야 하는 작위 의무가 있다고 볼 수는 없어 국가의 불법 행위 책임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